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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수저와 신 격차사회

by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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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수저와 신 격차사회


길었던 추석 연휴. 조부모가 쥐어준 용돈 봉투를 집에 가져온 아이. 당신은 부모로서 어떤 선택을 했는가. 누군가는 “대신 맡아줄게”라며 봉투를 서랍에 넣고, 또 누군가는 돈을 아이 계좌에 입금했을 터다. 한발 더 나아간 부모도 있을 게다. 상장지수펀드(ETF)를 한 주 구매하며 소위 돈이 일하는 경험을 보여줬을지도. 자녀의 격차는 이런 짧은 순간에 시작되고, 시간은 그 차이를 복리로 키운다.

과거의 ‘금수저’는 부모의 직업, 연봉, 부동산 규모 등으로 구분됐다. 지금의 출발선은 조금 다른 곳에서 갈린다. 얼마나 일찍 금융을 배우고 익혔는가가 새로운 기준이 됐다. 부모가 돈 자체를 넘겨주는 시대는 끝나고, 이제는 돈을 굴리는 법을 물려주는 ‘금융수저’의 시대가 왔다. 국세청 자료를 보면 2023년 금융소득을 올린 미성년자는 501만명에 달했다. 이 숫자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어떤 아이는 세 살도 되기 전 배당금을 받고, 어떤 아이는 스무살이 돼도 금융을 배울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는 뜻이다. 부를 축적하는 능력이 가정교육 차이에서 출발하는 시대, 우리는 소득이나 학력보다 ‘금융 문해력’ 격차가 계층을 고착시키는 새로운 불평등을 마주하고 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미래의 경제활동 능력까지 갈라지는 신 격차사회의 단면이다.

한국의 새로운 불평등 구조는 경제·사회적 요소가 누적된 결과다.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면서 집값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 부동산 급등은 노동만으로 계층 상승이 어렵다는 인식을 만들었고, 필수 지출은 소득 증가를 앞질렀다. 외환위기 이후 불안정 노동, 저금리, 연금 불신, 고령화가 겹치며 개인은 예측 가능한 소득과 미래 안전망을 동시에 잃었다. 이제 저축하는 것만으로는 자산을 지키기 어렵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수익률이 성장률을 앞서면 불평등은 확대된다”고 분석했듯, 금융을 이해하는 집은 복리의 시간을 누리고 그렇지 못한 집은 물가 상승의 비용만 감당하게 됐다. 투자를 일찍 자각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해마다 눈에 띄게 벌어진다. 투자는 부자가 되기 위한 욕망이 아니라 뒤처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수단에 가까워졌다.

금융 격차의 뿌리는 개인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이를 개인 능력의 문제로 취급해 왔다. 금융 교육을 가정 환경과 운에 맡겨 왔다. 그 결과 금융수저와 금융문맹의 간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개입해야 할 지점은 분명하다. 조기 금융 교육 확대다. 금융 불평등은 대다수 사람들이 그저 열심히 삶을 살아내느라 금융과 친숙해질 기회가 없었던 배경에서 비롯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다수가 신용·세금·투자·위험 관리를 정규 교과에서 다루지만 한국은 지금도 체험수업과 캠페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금융 교육을 초중고 교과에 편입하려는 시도는 수차례 있었다. 그러나 학교가 투기를 부추긴다는 거부감 탓에 번번이 무산됐다. 그 결과 청년들은 유튜브 등에서 잘못된 금융 지식을 접하고 무리한 투자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몰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금융수저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불평등을 줄이려면 금융을 그저 태어난 환경의 운에 맡기면 안 된다. 개인이 배우고 익혀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역량으로 바꿔야 한다. 평생 죽어라 일해도 노후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노인 빈곤의 시대, 금융 문해력은 생계와 은퇴를 모두 관통하는 최소한의 버팀목이다. 더 늦기 전에 금융을 정규 교육 안으로 넣고 사회 전체가 국민의 문해력 향상을 공동으로 도모해야 한다. 청년의 현재를 지키고, 노년층이 노후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도록 돕는 길이다.


박세환 뉴미디어팀장(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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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노후 다큐를 많이 봅니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나이 먹으니 남는게 아무것도 없고 허망하다는 말. 소득이 없으니 식사도 대충 떄우고, 건강은 계속 나빠지고.. 살기 싫다는 노인들이 정말 많습니다.


저는 30대 후반의 나이입니다. 하지만 남일 같지가 않습니다. 지금부터 노후를 준비하지 않으면 정말 위험한 일이 닥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경제부 기자로 일할 당시, 기획재정부 등을 출입하며 재개발, 금리, 세금, 연금, 대출, 자산 등의 단어가 들어가는 기사를 무수히 쓰고 말로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제 삶의 언어로 사용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왜 한국은 경제 강국이 되었는데 시민은 금융에 약한 나라가 되었을까요. 부모 세대는 일하면 된다고 믿었습니다. 저축하면 이자가 붙었고, 집을 사면 올랐고, 국민의 노후는 국가가 어떻게든 책임질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이미 오래전에 유효기간이 끝났습니다. 지금은 노동 소득이 정체되고, 물가는 오르고, 부동산은 안전판이 아니며, 연금은 불확실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금융을 배우지 않은 채 사회에 던져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적으로 드문 모습이 되었습니다. 소득은 높은데 금융 문해력은 낮은 나라. 벌 줄은 아는데 굴릴 줄은 모르는 나라. 열심히 일했지만, 숫자를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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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학교는 우리에게 참 많은 걸 가르쳤습니다. 광합성을 알고, 원소기호를 외우고, 공식을 풀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월급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세금은 어떻게 줄 수 있는지, 신용점수 하나가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은행 상품과 투자 상품은 무엇이 다르며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이 모든 기초를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금융은 공교육이 아닌 집안의 사교육이 되었습니다. 어떤 집은 밥상에서 ETF와 금리를 대화하고, 어떤 집은 스무 살이 넘어서야 예금과 적금의 차이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세월이 흐를수록 인생의 다른 결말을 만듭니다.


교육의 빈틈은 시장이 채웠습니다. 금융 교과서가 없는 나라에서 2030 세대는 유튜브로 갔습니다. 그러나 유튜브의 금융은 두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한쪽에는 구조를 이야기하는 콘텐츠가 있고, 다른 쪽에는 투기를 부추기는 콘텐츠가 있습니다. 초심자는 구조보다 자극을 먼저 클릭하고, 원리를 이해하기보다 종목 이름부터 외웁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금융 입문 경로를 갖게 되었습니다. 기초 없이 투자부터 시작하는 나라. 배움보다 베팅이 먼저인 나라. 준비 없는 진입이 흔한 나라.


해외는 달랐습니다. 미국, 영국, 호주는 금융을 부자의 언어가 아니라 시민의 언어로 정의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금융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무지는 사회의 비용이다.” 금융을 모르는 개인이 많아질수록 국가의 복지 지출, 가계 부채, 노후 파산이 늘어나고, 결국 사회 전체가 비용을 떠안게 된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금융을 초중등 교육 과정에 포함시켰고, 시민이 금융 문해력을 갖추는 것을 공교육의 역할로 배치했습니다. 반면 우리는 그 역할을 시장에 맡겼고, 시장은 이윤을 좇았습니다. 그 결과, 시민은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기자로 일하며 두 부류의 시민을 보았습니다. 숫자를 이해하고 삶을 설계하는 사람. 그리고 숫자를 두려워하고 삶에 끌려가는 사람. 전자는 똑똑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배운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후자는 게을러서가 아니었습니다. 배울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구도 그들의 손에 금융이라는 언어를 쥐여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야 깨닫습니다. 금융은 선택의 언어가 아니라 생존의 언어라는 사실을. 이 사회가 금융을 다시 시민의 영역으로 가져오려면, 네 가지 역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예산을 이해하는 역량. 내 월급, 고정비, 변동비, 현금흐름을 설계하는 기본 능력. 둘째, 투자 역량. 수익이 아니라 구조와 원리를 이해하는 능력. 셋째, 세금 역량. 세금은 미래의 국가 구조를 읽는 힘이며, 이를 알아야 문턱에 덜 걸립니다. 넷째, 리스크 역량.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 잃지 않기 위한 기술. 이 네 가지를 공교육이 다루지 않는 한, 금융 수저 사회는 계속 재생산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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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사회는 이미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고, 금융을 이해한 시민과 그렇지 못한 시민의 격차는 이제 단순한 자산 차이를 넘어 ‘삶의 선택지 그 자체’를 갈라놓기 시작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빚과 불안 속에서 끌려가고, 아는 사람은 계획과 판단 속에서 선택합니다. 이것은 부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노동만으로 삶을 지킬 수 없는 시대에, 금융을 모른다는 것은 글을 모르는 채 책을 펴는 것과 같습니다. 숫자를 이해하지 못한 시민은 우연과 공포에 흔들리고, 숫자를 이해한 시민은 불확실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향을 설정합니다. 이제 금융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언어입니다. 언어를 모르면 대화에서 소외되듯, 금융을 모르면 삶의 중요한 장면에서 소외됩니다.


문제는 이 사회가 우리를 준비시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갑자기 성인이 되었고, 어느 날 월급을 받았고, 어느 순간 대출을 마주했고, 어느새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금융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의 순간마다 당황했고, 뒤늦게 검색했고, 결국 남이 만든 길을 따라가며 스스로의 삶을 미뤄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생각합니다. 늦게 배운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모른 채 남아 있는 것이야말로 진짜 문제라고. 아는 것이 곧 오만이 아니듯, 배우는 것이 곧 탐욕도 아닙니다. 금융을 안다는 것은 돈을 좇는다는 뜻이 아니라, 삶을 지키는 기술을 되찾는 일입니다. 돈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숫자 앞에서 두려움 없이 나를 지키라는 뜻입니다.


미국과 영국과 호주는 금융을 시민 교육으로 다루었고, 그 결과 시민이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키웠습니다. 반면 한국은 금융을 교과에서 지워버렸고, 그 결과 시민은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사회에 던져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금융을 부자의 언어라고 오해했고, 배움을 미루었고, 그 대가로 불안을 떠안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악순환을 끝낼 때라고 생각합니다. 금융을 모르는 시민을 방치하는 사회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모르는 시민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더 큰 비용과 불안을 치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라고 있습니다. 금융이 특정 계층의 사교육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공평하게 다룰 수 있는 상식이 되기를. 어떤 가정은 태어날 때부터 정보를 누리고, 어떤 가정은 성인이 되어서야 금융을 처음 듣는 구조가 더는 이어지지 않기를. 배움의 출발선이 달라서 인생의 결말이 갈리는 사회는 이제 멈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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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문해력 격차는 개인의 무지가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입니다. 우리는 배울 기회를 받지 못했고, 제대로 안내받지 못했으며, 보호 장치 없이 시장에 던져졌습니다. 금융을 모른다고 해서 시민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책임은 배우지 못하게 만든 구조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 금융 교육은 선택 과목이 아니라 필수 교육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예산 관리, 투자 원리, 세금 이해, 리스크 판단을 실제 삶과 연결해 가르치는 공교육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조기’와 ‘의무’입니다. 뒤늦은 학습이 아니라, 사회에 발을 내딛기 전부터 금융을 이해한 시민으로 설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정부는 또한 금융시장의 규칙을 더 공정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정보 격차가 투기와 사기를 낳고, 불평등을 고착시키는 현실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시민이 이해할 수 없는 상품이 넘쳐나는 시장은 결코 건강한 시장이 아닙니다. 금융은 이해 가능한 언어로 제공되어야 하고, 공공의 역할은 그 언어를 시민이 읽고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언론과 금융기관도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언론은 공포와 자극이 아닌 정보와 맥락을 제공해야 하며, 금융기관은 시민을 대상으로 한 최소한의 학습 장치를 제공할 책임이 있습니다. 금융은 상품 이전에 제도이며, 제도는 공공성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시장 논리에만 맡겨둔 금융은 결국 약한 시민을 먼저 무너뜨립니다. 따라서 금융 문해력은 더 이상 개인의 사교육에 맡겨둘 주제가 아닙니다. 시민 보호 장치로서 공적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금융을 이해하는 시민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덜 흔들립니다. 금융을 모르는 시민이 줄어들수록 나라는 더 단단해집니다. 이것은 부자가 늘어난다는 뜻이 아니라, 휘둘리지 않는 시민이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국가가 금융 교육을 책임지고, 사회가 금융 환경을 정비하고, 제도가 시민을 보호할 때 비로소 개인의 노력도 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시민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금융을 아는 시민은 우연이 아니라, 국가가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는 사회가 책임져야 합니다. 국가가 나서야 하고, 공교육이 바뀌고, 금융 시장이 재정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민은 비로소 삶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래야 이 사회는 더 공정하고 더 안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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