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함께 여름 견뎌내기
그해 여름은 유독 더웠다. 12년 전 수습기자 시절이다. 보고할 만한 기삿거리는 왜 그리 없던지, 결국 몸으로 때우자는 마음에 택배 상하차 알바 체험에 도전했다. 경기도 한 물류센터에 도착하자마자 안성행 상차 작업에 투입됐다. 시작과 동시에 20㎏ 쌀 포대, 도자기 세트, 타이어, 과일, 물고기와 장난감, 난(蘭)까지 각양각색의 화물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불과 30분 만에 팔과 어깨, 허리에 감각이 사라졌다.
근육통보다 더 힘겨웠던 건 살인적 더위였다. 센터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찜통 그 자체였다. 숨이 턱턱 막혔다. 안경에 김이 서렸다. 중년 남성들은 하나둘 웃통을 벗었다. 밀려드는 화물에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다. 일부 작업자는 배송 트럭 사이에서 소변을 봤다. 열기가 악취와 뒤섞여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12시간 노역 끝에 녹초가 돼 귀가했다. 온몸에 땀띠가 나 있었다.
겨우 반나절 노동 끝에 깨달았다. 폭염은 공평하지 않다. 모두가 생활 속에서 탄소를 배출한다. 그 영향으로 지구의 기온은 매년 치솟는다. 그런데 피해는 주로 에어컨 바람이 닿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이들에게 향한다. 다른 누군가가 시원하게 여름을 나도록 돕는 배달, 택배, 경비, 농·어업, 건설업, 조선업 노동자들 말이다. 모든 노동은 숭고하다. 그런데 폭염은 자꾸 신성한 노동의 편을 가른다. 그 안에서 계층과 계급을 나눈다.
최근 경북 구미 건설현장서 베트남 출신 20대 이주노동자 A씨가 사망했다. 당시 기온은 37도였다. 너무 더우니 한국인 노동자들은 오후 1시에 퇴근했다. 근데 A씨를 비롯한 이주노동자들은 그보다 3시간을 더 일했다. 이렇게 폭염 피해는 약자에게로 전가된다. 온열질환 사고는 대부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안전관리가 잘 안 되고, 냉방 설비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다. 더위는 사회적 차별, 그리고 법과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며 증폭한다.
정부는 폭염 시 노동자에게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보장키로 했다. 그마저도 “영세 사업장에 부담이 된다”는 대통령 소속 규제개혁위원회의 반대에 막혔다가 인명 피해가 잇따르자 부랴부랴 조치한 것이다. 정부가 형사처벌 운운하며 사업주를 압박해도 큰 변화는 없다는 걸 모두 잘 안다. 정부가 전국의 노동현장을 다 전수조사할 순 없다. 돈을 받고 고용된 노동자가 원청이나 사업주, 감독관을 신고할 가능성도 낮다. 그저 본보기로 몇 군데 적발하고, 걸리면 운이 없다고 치고, 또 그렇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넘어갈 터다.
사실 색출과 처벌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조그마한 배려만으로 사고는 막을 수 있다. A씨는 사고 당일 현장에 처음 나왔다. 어리고 미숙한 A씨에게 누군가 물 한잔을 더 건넸다면, 초보니까 휴식 시간을 조금만 더 제공했다면 A씨는 머나먼 타국서 허망하게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맞춰야 할 공사 기한이 존재하고, 업무 할당량이 정해져 있다 해도 ‘내가 더우니 너도 더울 것’이라는 생각을 동료든, 감독관이든, 누구든 한번만 더 했더라면 어땠을까.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는 게 확실한 해법은 아니겠다. 그래도 이 살인적인 여름을 함께 견뎌낼 다른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경기도 부천의 한 아파트에선 일부 주민이 경비원에게 경비실 선풍기를 틀지 말라 요구했다고 한다. 공동 전기료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다. 나만 시원하면 된다.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다. 어느샌가 이런 이기심이 한국인의 넘치던 정과 배려심을 대체한 것 같다. 지독히도 긴 여름은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마음은 겨울보다 더 차갑다.
정말 요새 너무 덥습니다. 회사로 출근하면 그나마 시원합니다. 그런데 오후만 되면 에어컨이 잘 안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중앙냉방 방식이라 그렇습니다. 그럴때마다 건물 전체 냉난방을 담당하는 부서에 전화를 합니다. "5층 D존 16, 17번 에어컨도 쎄게 틀어주세요" 하루에도 2~3차례 전화를 해서 서로 민망하지만, 곧 다시 에어컨이 들어옵니다. 아, 에어컨 없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았을까요. 매년 여름 기온은 치솟는데 에어컨을 더 세게 트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대응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사는 자취집 전기요금이 또 걱정되는 요즘입니다.
얼마전 운전을 하다 교차로에 멈춰섰는데, 한 배달 오토바이가 옆차로에 섰습니다. 37도까지 치솟았던 날이었는데 배달 기사분이 선글라스에 두건을 쓰셨더라고요. 그럼에도 참 더워보였습니다. 더운 여름, 편하게 한끼를 때우기 위해 배달을 시키는 고객을 위해 폭염에도 참 고생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 배달 기사분만일까요. 마트나 백화점 주차 요원분이나 건설현장 직원들도 땡볕에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타임스퀘어 정문 부근에는 주차장서 나가는 차량을 안내하는 요원분이 계십니다. 아이스박스를 옆에두고 시원한 물을 마셔보지만 땀이 비오듯 흐릅니다. 그렇게 폭염과 싸우며 하루하루 신성하게 노동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7월 7일 오후 5시쯤이었습니다. 경북 구미시 산동읍의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20대 베트남 국적 노동자가 숨진 채 발됐습니다. 발견 당시 A씨의 체온은 40.2℃였습니다.
미등록 외국인인 A씨는 2002년생이라고 합니다. 2022년 유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왔다가 포도 농장 등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친구의 소개로 건설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고 당일 A씨는 오후 4시까지 작업했습니다. 퇴근하려던 동료가 사라진 A씨를 찾아다니다 오후 4시40분경 공사장 지하 1층에서 A씨를 발견했습니다.
사고 당일 구미시 최고기온은 38.2℃였습니다. 여름철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가 체감하는 온도는 기온보다 높습니다.. 공사판에 그대로 내리쬐는 직사광선과 콘크리트가 내뿜는 복사열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은 너무 더워서 오후 1시쯤 작업을 마쳤지만 A씨를 비롯한 일부 이주 노동자들은 오후 4시까지 일을 더 했습니다. 그는 그러다 화장실 앞에서 쪼그려 앉은 채로 사망했습니다. 기대와 희망을 품고 머나먼 한국까지 건너온 청년은 그렇게 허망하게 갔습니다. 이 지독하고 잔인한 여름, 20대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 매정한 더위가 진절머리납니다.
직업에 귀천은 없습니다. 저는 대놓고 직업을 자랑하고 누군가를 무시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직업이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본인들이 열등감이 쩔어서 나보다 좀 덜 벌거나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을 깎아내립니다. 그러나 모든 노동은 신성합니다. 나 혹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집을 나서는 발걸음은 하나하나가 다 소중합니다. 그런데 자꾸 폭염을 포함한 자연재해는 직업의 급을 나눕니다. 또 그 안에서 약자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지상으로 내리꽂는 태양을 향해 그들을 밀어냅니다.
사실 더위에도 나서서 일하는 분들이 없으면 우리 사회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폭염에 다치거나 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법과 제도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매년 폭염 사망 노동자가 나오고, 관련 기사가 잠깐 쏟아지는데도 별로 달라진게 없습니다. 지적과 성토가 잠깐 이어졌다가 또 조용히 넘어갑니다.
베트남 노동자 사망이후 언론에서 또 한바탕 기사가 나왔습니다. 다른 폭염 희생자 사례까지 합쳐서 이들의 권익 보호와 휴식 보장이 중요하다는 식입니다. 그러다 정부는 폭염시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보장키로 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다만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산업현장을 다 감독할 수도 없고, 휴식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고 노동자들이 신고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냥 대책만 발표하고 실효적인 관리를 하기가 어려운 구조인겁니다. 그러니 법과 제도를 지적하는 건 중요하지만, 또 중요하지 않습니다. 좀더 효과적인 대책이 필요한데, 사실 기자인 저도 그 효과적인 대책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칼럼 마무리는 선의를 강조하며 끝냈습니다. 보다 실무적인 지점을 짚고 싶었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기한이 정해져있다고 해도 이렇게 미친듯이 더운데, 한푼의 인정과 배려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무리 고용된 사람이라도, 우리는 같은 사람인데. 정이 넘치던 한국인인데. 물 한잔만 더 건넸다면.. 너무 아쉽고 분통이 터집니다.
에어컨이 빵빵한 사무실에서 이글을 쓰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다양한 감정이 듭니다. 나 자신이 편하게 살면서 너무 입만 털거나 손만 터는게 아닌지. 또 현장 분위기나 현장 사정은 다르겠지요. 그래도 더워서 사람이 죽었다는 명제는 너무 잔인합니다. 우리 좀 같이 살수 없을까요. 따뜻함이 생명인 한국인 아닌가요. 폭염에 대신 고생하는 노동자에게 한번 더 배려와 공감을 표하는 건 어려울까요.
어떤 친구가 칼럼을 보고 이러더라고요. 요새 왜 현자같은 글만 쓰느냐고. 제가 현자가 아니면서도, 너무 도덕적인 얘기만 한다는 지적 아닌 지적으로 느꼈습니다. 그런데 어쩌겠어요. 저도 30대로 아직 젊지만 그래도 세태가 시시각각 각박해져간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습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선 이런 구절이 나오죠. "같이가자 같이가. 같이가면 백릿길도 십리된다"고요. 그렇게 함께 살아온 우리 민족이고, 앞으로도 함께 기대며 살아가야 하는데 너무 살기가 힘드니까 함께라는 가치가 사라져가는 것 같습니다. 너무 아쉬운데, 기자로서 저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많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