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공무원, 무너지는 일상
[세상만사] 공무원이 부족해지면
영국 런던 남동부에 위치한 서리주. 런던 도심과 가까운 이곳은 교육과 생활 수준이 높아 영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그랬던 이 지역이 근래 치안 공백 사태를 겪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다. 주민 테리 깁스씨는 최근 한 주택에 도둑이 든 걸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은 “출동할 인력이 없다”고 답했다. 결국 경찰은 사건 발생 하루가 지나서야 현장을 찾았고, 결국 범인을 잡지 못했다. 2023년 서리 지역에서 발생한 주거침입 사건 가운데 80%가 미해결 상태로 종결됐다. 경찰 인력 부족 때문이다. 영국 언론은 매년 1만명의 경찰이 직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낮은 처우다. 영국 신입 경찰 초봉은 약 3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5600만원 정도지만, 살인적인 영국 물가를 고려하면 턱없이 적다. 일부 경찰은 식량지원 기관인 ‘푸드뱅크’에 의지하거나 퇴근 후 부업을 뛰며 생계를 이어간다. 사기 저하도 일상화됐다. 영국 노조 유니슨이 경찰 직원 5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했는데, 응답자 21%가 향후 2년 내 직장을 떠날 거라고 했다. 한 직원은 “현장에서 경찰을 향한 폭언과 폭행이 자주 벌어지는데 대응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떠나는 경찰이 늘어나니 범죄도 기승을 부린다.
한국은 사정이 더 나쁘다. 경찰뿐 아니라 공무원 사회 전반에서 비슷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임용 5년 차 미만 조기 퇴직 공무원은 2019년 6000명에서 2022년 1만3000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신입도 급증했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매년 급전직하한다. 지난해 공무원 정원은 117만명 정도인데, 이대로라면 점차 줄어들 것이다.
특히 중앙부처보다 지방의 인력 이탈이 더 뚜렷하다. 노인 복지나 장애인, 기초생활보장 업무까지 1~2명의 지역 공무원이 도맡는 사례가 빈번하다. 기초수급 신청이 몇 달째 지연되거나, 복지 사각지대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가시화되고 있다. 그 책임은 고스란히 공무원이 진다.
자연히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은 옅어지고, 인수인계도 없이 여러 업무를 떠맡으면서 동기는 무너지고, 의지는 말라간다. 민원인은 불친절한 공무원을 탓하고, 정작 공무원은 민원인의 욕설과 막말에 지쳐 하소연한다. 무개념 민원인 혹은 갑질 공무원 등 확인되지 않은 극단적인 사례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동안 행정 공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정부도 현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공무원 처우 개선 대책이 수차례 발표됐고, 이재명 대통령도 대선 공약에 담았다. 하지만 국민적 공감대는 미약하다. 공무원 증원이나 월급 증액 얘기가 나오면 시민사회는 “철밥통 배만 불린다”고 반발한다. 정치권도 표심을 의식해 소극적이다. 그래서 대책은 늘 미봉에 그치고, 공무원 사회는 더 깊은 피로와 불만 속에 빠져들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한국도 서리 지역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한국은 치안뿐 아니라 행정, 복지, 교육 등 사회 전반에서 충격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지금은 민원 지연이나 작은 불편에 그치지만, 언젠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큰 위기로 번질 게 자명하다.
공무원이 지쳐 쓰러질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건 시민의 일상이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고도 압박감에 안타까운 선택을 한 2030 공무원의 뉴스가 반복될 때마다 행정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다는 걸 여실히 느낀다.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서라도 이젠 정말 공무원이 맘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조성할지 더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박세환 뉴미디어팀장(foryou@kmib.co.kr)
며칠 전 저는 주민센터를 찾았습니다. 고령의 어르신이 기초연금을 신청하려 했는데 서류가 너무 복잡했습니다. 작은 창구 앞에는 번호표를 든 시민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습니다. 담당 공무원은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전화를 받고 서류를 확인했습니다. 얼굴에는 피곤이 묻어 있었지만 민원인에게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만 거듭했습니다.
기다림 끝에 만난 어르신은 몇 번이나 서류를 다시 내야 했습니다. 누락된 증빙이 있으면 또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떨구셨습니다. 공무원은 연신 “죄송합니다”를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죄송함은 사실 그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업무가 밀려 있었고, 그 무게를 홀로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날 민원 창구를 떠나면서 오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불친절하거나 태만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애써도 채워지지 않는 공백, 도와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는 상황. 공무원의 비애라는 게 바로 이런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재 현장에서도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경로당 지원 업무를 맡은 직원은 하루 종일 뛰어다니며 노인 복지, 장애인 돌봄, 긴급 지원까지 처리했습니다. 그는 “제가 놓치면 결국 주민들이 피해를 봅니다. 그런데 몸이 하나라 도저히 다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피곤한 웃음이었지만 그 속에는 절망이 섞여 있었습니다.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일, 책임만 남고 수단은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공무원이 부족하다는 건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복지급여가 늦게 나오고, 아이들 안전시설 점검이 미뤄지고, 긴급지원이 지연됩니다. 작은 행정의 균열이 결국 일상의 불안을 키웁니다. 사람들은 불편을 겪을 때마다 ‘왜 이렇게 늦느냐’고 묻지만, 사실은 사람이 모자라 생긴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공무원을 철밥통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 철밥통은 이미 금이 가 있습니다. 임용 5년 차가 되기도 전에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젊은 인력은 버티지 못합니다. 남은 사람들은 두 배, 세 배의 일을 떠안습니다. 악순환입니다. 책임은 무겁고 보상은 부족합니다. 그러니 자부심도 점점 사라집니다.
제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 건 현장에서 만난 공무원들의 얼굴 때문이었습니다. 주민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묵묵히 서류를 정리하던 사람, 몸이 아파도 대체 인력이 없어 억지로 근무를 이어가던 사람. 그들의 표정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졌습니다.
지쳤다는 것, 버티기 힘들다는 것, 그러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 신문에 쓴 칼럼에서는 해외 사례를 다뤘지만 결국 같은 문제입니다. 행정의 공백은 사회 전체의 불안을 키웁니다. 쓰레기가 제때 수거되지 않으면 거리는 금세 더러워집니다. 복지 서비스가 지연되면 누군가는 생계를 잃습니다. 안전 점검이 미뤄지면 사고가 납니다. 작은 불편에서 시작해 생명과 안전까지 위협합니다.
저는 기자로서 그동안 공무원을 쉽게 비판해왔습니다. 민원인의 불만을 전할 때도, 제도의 허점을 지적할 때도 공무원의 탓으로 돌리기 쉬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봅니다. 게으름이 아니라 과부하였습니다. 무능이 아니라 과중이었습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습니다.
공무원의 부족은 곧 시민의 불행으로 이어집니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방치되는 노인, 미뤄지는 행정으로 피해를 보는 자영업자, 지연된 지원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들. 결국 그 피해는 모두 우리 몫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단순히 공무원 사회의 고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삶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물론 모든 공무원이 친절하고 성실한 것은 아닙니다. 무심한 태도나 불친절한 응대에 상처받는 시민들도 있습니다. 때로는 복잡한 절차를 설명조차 제대로 듣지 못해 분노가 쌓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판해야 할 것은 ‘개인의 태도’만이 아닙니다. 그 불친절 뒤에는 이미 지쳐버린 현실과, 사람을 소진시키는 구조적 한계가 놓여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질문을 떠올립니다. 왜 그들은 점점 떠나는가. 왜 남은 사람들은 번아웃에 빠지는가. 왜 우리는 그들의 자부심을 지켜주지 못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큰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무원은 단순한 직업인이 아닙니다. 사회를 떠받치는 기둥입니다. 그 기둥이 무너질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건 우리의 일상입니다.
작은 행정의 손길이 사라지는 순간 시민의 삶은 불안해집니다. 제때 처리되지 않는 서류, 늦어지는 지원, 점점 멀어지는 안전망. 그리고 공무원은 지쳐서 떠납니다. 남은 사람은 더 지치고, 시민은 더 불안해집니다. 악순환은 계속됩니다.
그렇기에 지금은 새로운 시선이 필요합니다. 공무원을 비효율의 상징으로 보는 오래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들을 적대의 대상이 아니라 동반자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으로 존중해야 합니다. 공무원이 있어야 우리의 일상이 유지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오늘도 그 장면을 기억합니다. 주민센터의 작은 창구, 서류 더미 사이에서 연신 “죄송합니다”를 말하던 공무원의 모습. 그는 시민을 위해 애쓰고 있었지만, 시스템은 그를 돕지 않았습니다. 그 비애를 이제는 시민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일상도 지켜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