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투수 김범수의 한마디가 뜻밖의 파장을 만들었다. 그의 “K9 자주포 한 대면 될 것 같다”는 농담 섞인 발언이 공개되자, 야구 팬들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까지 반응하기 시작했다. FA 시장을 앞둔 선수의 몸값 이야기치고는 꽤 이색적인 비유였다.
김범수는 김태균이 진행하는 유튜브 콘텐츠에 출연해 자신을 “한화 이글스 겸 무소속 김범수”라고 소개하며 해당 발언을 꺼냈다. 1대에 80억 원쯤 한다고 들었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회장님께 자주포 한 대만 선물해 달라는 말은 명백히 웃음을 노린 멘트였다.
문제는 이 농담이 놓인 맥락이었다. 김범수는 한화 이글스 소속 선수이고, 그의 모기업 한화는 국내를 대표하는 방산 기업이다. 그중에서도 K9 자주포는 한화 계열사의 간판 상품이다. 농담의 소재와 현실이 겹치면서 말은 가볍게 흘러가지 않았다.
일부 팬들은 웃어넘겼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과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FA 시장에서의 몸값 기대, 대기업 이미지, 방산 무기라는 상징성이 한 문장 안에 겹쳐 있었기 때문이다. 의도와 달리 발언이 곡해될 여지도 충분했다.
김범수의 친동생이자 삼성 라이온즈 투수인 김무신은 예능적 맥락을 강조했다. 웃기려고 한 말이었을 뿐인데, 받아들이는 쪽에서 너무 무겁게 해석했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해당 콘텐츠는 진지한 인터뷰가 아닌 가벼운 토크 형식이었다.
그럼에도 이 발언이 쉽게 잊히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김범수의 농담 속에 등장한 ‘K9 자주포’라는 단어 자체가 가진 무게감 때문이다. 숫자와 가격, 그리고 무기라는 존재는 사람들의 상상을 단번에 현실로 끌어내린다.
결국 이 해프닝은 한 야구선수의 농담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무기 하나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웃자고 던진 말이었지만, 그 이름이 불러온 것은 의외로 진지한 질문들이었다. K9 자주포는 왜 이런 비유의 대상이 되었을까. 한국의 자랑 K9에 대해서 자세히 더 알아보자.
1990년대 한국 군의 화력 문제는 간단치 않았다. 북한은 장사정포 전력으로 수적으로 우위에 섰고, 한국은 그에 맞서 사거리와 연사력, 기동성을 동시에 충족하는 새로운 자주포가 필요했다. 그런 배경에서 시작된 것이 K9 자주포 프로젝트다.
개발은 1989년대 초·중반 연구검토에서 출발해, 국방과학연구소(ADD)와 삼성항공우주산업(현 한화디펜스)이 주축이 돼 1990년대 후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설계 목표는 단순했다. ‘먼 곳까지 쏘고, 빨리 쏘고, 빨리 옮기는’ 포병 플랫폼을 국내 기술로 구현하자는 것. 이 목표가 곧 K9의 설계철학이 됐다.
K9이 의미하는 바는 다층적이다. 첫째, 전술적 의미다. K9은 155mm 52구경의 강력한 포신과 자동장전, 탑재탄 수량 등으로 ‘전장에서의 화력 집중’과 ‘사격 후 신속 이동(shot-and-scoot)’ 전술을 가능케 했다. 전통적으로 포병은 화력의 왕좌였지만, 반대로 적의 관측·카운터배터리 공격에 취약했다. K9의 빠른 발사 속도와 기동성은 이 약점을 줄여주었다.
둘째, 산업·전략적 의미다. 단일 플랫폼을 설계·시험·양산해 수출할 수 있는 능력은 단순한 무기 하나를 넘어 방산생태계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K9은 그 후 한·중·러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입 의존형’이 아니라, 설계와 생산을 자국 산업에서 주도한 사례로 기록됐다.
그렇다면 ‘수치’로 K9을 들여다보자. 구경은 NATO 표준인 155mm, 포신은 52구경장이다. 이 조합은 표준 포탄으로도 장거리(통상 40km 전후, 특수탄으로 50km대) 사격을 가능케 한다. K9은 급속사격 3발을 15초 안에 발사할 수 있고, 최대 연사로는 3분간 분당 6발 수준을 기록한다.
실전 운용에서는 초기 급속발사로 화력을 집중한 뒤 즉시 위치를 이동해 보복 사격을 회피하는 ‘샷앤무브’가 핵심 전술이다. 차량에는 통상 48발 내외의 포탄을 적재하고, 자동장전장치는 승무원 부담을 줄여 연속사격 능력을 보장한다. 차체는 궤도형으로 험지 기동성이 뛰어나며, 서스펜션과 엔진 출력은 높은 기동성을 뒷받침한다.
다만 K9의 성능은 단일 숫자로 설명하기 어렵다. ‘네트워크’와의 결합이 핵심이다. 사격통제장치와 탄도계산소, 감시 레이더·자산과의 데이터링크가 맞물리면 K9은 단독 무기가 아니라 ‘포병 전력의 노드’로 기능한다. 예컨대 정찰 UAV가 표적 좌표를 전송하면, 포병 지휘통제소가 탄도계산을 한 뒤 K9에 사격명령을 내리고, K9은 자동조준·장전 후 발사한다. 그 사이 시간이 짧을수록 적의 반격 전에 기동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최근 개량형에서는 자동화·통제시스템 개선과 정밀유도탄 호환성 확보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폴란드 사례는 유럽 시장 진출의 상징적 전환이었다. 폴란드와의 계약에서는 현지 생산·기술이전·장기 운용지원이 화두였고, 이를 통해 K9이라는 플랫폼이 단순 수출품을 넘어 ‘파트너십 모델’로 확장되는 계기가 됐다. 핀란드와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의 채택은 혹독한 기후·운용 여건에서의 신뢰를 증명했다.
K9 자주포의 단가는 계약 조건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통상 대당 약 40억~60억 원 수준으로 거론된다. 여기에 탄약, 훈련, 정비 장비, 예비부품, 기술이전 비용까지 포함한 패키지 계약으로 가면 대당 환산 70억~100억 원대로 계산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K9 한 대가 왜 이렇게 비싸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첫 번째 이유는 포 그 자체의 성능이다. K9은 155mm/52구경장 포를 사용해 장거리·고정밀 사격이 가능하고, 고압 장약을 안정적으로 견디는 내구 설계가 핵심이다. 포신 재질과 가공, 열처리 기술은 단가를 크게 좌우한다. 여기에 자동 장전 보조, 고속 사격 후 즉시 위치를 바꾸는 사격 개념까지 구현돼 단순한 ‘포’가 아니라 고난도 무기체계가 된다.
두 번째는 기동성과 생존성이다. 1,000마력급 엔진과 변속기, 험지 주행을 버티는 현가장치가 결합돼 전차급 기동을 구현한다. 포병 장비는 사격 후 적의 반격을 피해야 하므로 ‘빨리 쏘고 빨리 빠지는’ 능력이 생존의 핵심이다. 이 성능을 보장하는 파워팩과 차체 구조는 비용 상승의 주범이다.
세 번째는 사격 통제와 전자장비다. K9은 디지털 사격통제체계로 목표 좌표를 받아 자동으로 포를 정렬한다. 항법장치, 통신장비, 전자전 환경에서도 작동하도록 한 보호 설계가 들어간다. 이런 전자·소프트웨어 요소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가격 비중이 크다.
네 번째는 신뢰성과 군수 지원이다. 전쟁 장비는 고장이 나면 치명적이어서, 혹독한 환경에서도 작동하도록 과잉 설계에 가깝게 만든다. 시험평가, 내구 시험, 혹한·혹서 테스트 비용이 누적된다. 수출 계약에서는 정비 교육, 장기 부품 공급, 현지 조립 라인 구축 같은 비용이 함께 묶인다.
다섯 번째는 패키지와 기술이전 효과다. K9 수출은 단순 판매가 아니라 현지 생산, 기술 이전, 탄약·훈련·업그레이드 옵션까지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당 가격’만 떼어 보면 비싸 보이지만, 장기 운용 비용과 성능 대비 효율을 보면 경쟁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국 K9이 비싼 이유는 한 대의 포가 아니라, 전장에 바로 투입되는 완성형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한화 이글스의 김범수가 K9 자주포를 빗대어 던진 농담은 팬서비스 차원의 가벼운 멘트였다는 점을 인정한다. 의도가 공격적이거나 폄하에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농담의 소재가 된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말의 결은 달라지고, 그 차이는 종종 예상보다 크게 돌아온다.
K9 자주포는 ‘비싸서 유명한 무기’가 아니라, 그만큼의 가치를 증명했기 때문에 비싼 무기다. 성능, 신뢰성, 유지·운용의 효율까지 포함해 수출국들이 실제로 선택한 결과물이자, 한국 방산이 세계 시장에서 얻어낸 성과의 집약체다. 값이 비싼 이유가 분명하고, 그 가격 자체가 성과와 신뢰의 합계라는 점에서 K9는 상징성을 넘어 실적을 가진 자산이다.
그래서 김범수의 팬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개인 선수의 가치가 그 상징성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될 수 있는지는 냉정하게 보면 의문이 남는다.
농담인 건 알지만, 한국 방산의 자랑이자 그 값어치를 스스로 입증해온 K9를 끌어다 쓰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실언에 가깝다. 웃자고 한 말일수록, 무엇을 걸고 웃는지에 대한 감각은 더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