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부자 되는 법

by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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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철 교수는 2004년 서울여대 재직 당시 국내 최초로 ‘부자학 개론’이라는 강의를 개설한 부자학 최고 권위자다. 이듬해 그는 ‘부자도 모르는 부자학 개론’이라는 책을 냈는데 부자가 되는 습관이 담겨 있다. ①일에 미치고 ②자신의 계좌 잔고를 자주 확인하며 ③TV 시청을 줄이고 ④신용카드를 긁기 전에 3번만 참으라는 식. 틈만 나면 유튜브 쇼츠를 보며 낄낄대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로 지름신이 강림하며, 일할 생각만 하면 골치가 아프고, ‘텅장’이 돼 버린 계좌를 보기조차 싫으니 부자가 되기엔 애당초 그른 것 같다.

20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에서 부를 이루는 공식은 생활습관이나 태도의 문제를 넘어 훨씬 명료해졌다. 절약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부의 경로는 딱 하나로 수렴한다. 부동산이다.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면서 어떤 타이밍에 어느 지역에 들어가느냐가 개인의 평생 자산을 결정짓는 요인이 됐다. 이제 부의 격차는 마인드 세팅이 아니라 부동산 매수 버튼을 누른 시점과 집 주소로 갈린다. 부모로부터 자산을 물려받지 못한 개인이 2026년 현재 한국에서 부자가 되는 경로는 대체로 이렇다. 성실한 학창시절과 더 성실한 대학 생활을 거쳐 취직한다. 이른바 ‘짠테크’(짠돌이+재테크)로 월급을 최대한 아껴 종잣돈을 만들고, 투자로 그 돈을 다시 불린다. 그렇게 모은 자산에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금을 더해 어떻게든 첫 부동산을 마련한다. 공부와 발품으로 몇 차례 갈아타기를 거쳐 마침내 실거주와 자산가치 모두를 충족하는 ‘베이스 캠프’ 아파트에 안착한다.

아파트 가격은 인플레이션을 훌쩍 상회해 고공행진하고, 부자는 집값을 제외한 여윳돈으로 주식이나 다른 부동산에 투자해 노후 현금 흐름을 구축한다. 부동산을 빨리 사면 노후 준비가 그만큼 빨라지고, 노년의 삶 자체가 달라지는 셈이다. 수십년에 걸친 이 숨가쁜 여정은 사실 부자가 되는 법이라기보다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평범하게 살기 위해 누구나 도전해야 하는 최소한의 생존 방식에 가까워지고 있다. 성공하면 자산가, 실패하면 뒤처지는 부동산 광풍의 시대에서 이 길을 얼마나 멀리 가느냐가 계층의 경계를 나눈다. 최종 목적지인 상급지에 도달하면 부자, 가다 멈추면 중산층, 시작조차 못 하면 서민으로 딱 갈라진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5억원을 넘겼다. 웬만한 직장인이 평생 벌어도 닿기 어려운 금액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탓에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순자산 지니계수는 0.625를 기록하며 통계 집계 이래 최고치를 찍었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뜻이다. 부동산을 포함한 실물자산 가격이 전년 대비 5% 이상 증가한 영향이다.

과거 한국에서 일반인이 부자가 되는 방법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했다. 열심히 공부해 전문직이나 안정적인 고소득 직업을 얻거나 동네 상가 하나로 시작해 건물주가 된 자영업자도 있었다. 기업에서 꾸준히 모은 월급과 퇴직금으로 노후를 준비한 직장인도 계층 이동을 꿈꿀 수 있었다. 그 길이 부동산 하나로 좁혀지면서 다른 가능성이 너무 빠르게 지워지고 있다.

예전에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해도, 조금 늦게 가도 각자의 속도로 중간쯤에는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부동산이라는 폭주 기관차에 올라타지 못하면 아예 삶의 궤적 자체가 급격히 좁아진다. 이재명정부는 투기 수요 억제를 내세우며 역대급 규제를 쏟아냈다. 그런데 정책을 주도한 관료들의 부동산 내로남불 사례가 밝혀지면서 부자가 되는 유일한 길은 결국 부동산이라는 공식만 재확인했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박세환 기자(foryou@kmib.co.kr)영상뉴미디어부 기자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826509?si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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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요즘 한국 사회에서 ‘잘 산다’는 말이 너무 쉽게 좌절로 바뀌는 순간들을 계속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살아도 삶이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예전보다 훨씬 약해졌고, 그 불안이 개인의 성향이나 태도 문제로만 정리되는 분위기가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노력의 가치가 사라졌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노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실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회가 더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부자’와 ‘평범한 삶’의 기준이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긱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조금 늦어도, 조금 돌아가도 각자의 속도로 중간쯤에 설 수 있다는 감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여유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선택 하나, 시기 하나가 삶 전체를 좌우하는 구조가 되어버린 현실에서, 개인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방식이 과연 정직한가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습니다.


이 질문을 가장 뚜렷하게 마주하게 되는 지점이 바로 부동산 문제였습니다. 예전에는 집이 삶의 기반이었고, 지금은 거의 운명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아졌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집을 샀느냐가 이후의 삶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주거는 더 이상 생활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계층을 가르는 표지가 됐습니다. 이 변화가 너무 빠르고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 늘 불편했습니다.


부동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늘 따라붙는 말이 있습니다. “결국 선택의 문제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선택이 가능한 사람과 불가능한 사람의 출발선이 이렇게 다르다면, 그 말을 쉽게 할 수 있는지 계속 묻게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 집은 기회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애초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세계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결과만 놓고 책임을 나누는 방식이 과연 공정한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하게 됐습니다.


더 답답했던 건, 이 구조가 어느새 너무 익숙해졌다는 점입니다. 집값이 오르면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이고, 뒤처지면 개인의 판단 미스로 정리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점점 이 문제를 사회의 문제로 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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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을 둘러싼 좌절과 불안이 개인의 감정으로만 남고, 분노는 각자 흩어져 소모됩니다. 저는 이 칼럼이 그 감정을 조금이라도 사회의 언어로 옮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습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구조가 얼마나 숨 가쁘고, 얼마나 사람을 조급하게 만드는지를 차분하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야만 살아남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회에서, 그 속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쓰는 동안 가장 신경 쓴 건 감정이 아니라 거리였습니다. 분노를 그대로 쏟아내면 글이 가벼워질 것 같았고, 반대로 너무 차갑게 쓰면 현실의 무게가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감정을 눌러두고, 대신 독자가 자기 삶을 떠올릴 수 있는 여백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공감이 아니라, “이게 개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남았으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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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않으면, 결국 사람들은 계속 자기 자신만을 몰아붙이게 됩니다. 저는 이 글이 조금이라도 시선을 바깥으로 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습니다. 각자가 느끼는 좌절이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일 수 있다는 인식이 넓어질수록, 비로소 다른 선택지에 대한 논의도 시작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는 분명했으면 좋겠습니다. 부자가 되는 법을 둘러싼 이야기가 다시 개인의 태도와 마음가짐으로만 돌아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성실함과 절약이 여전히 중요한 가치인 건 맞지만, 그걸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구조가 있다면 그 구조부터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세대에게 최소한 “열심히 살면 뭔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을 부끄럽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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