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에서 살아남기

by hardy


한국은행에 출입한지 이제 한달 반 정도가 됐습니다. 이제 조금씩 적응이 된 거 같아요.


일단 한은 출입기자가 가장 바쁜 날인 금융통화위원회 데이를 잘 넘겼습니다.


금리를 6차례 연속 동결해서 사실 엄청 큰 이슈는 아니었어요. 인하하거나 인상했으면 난리가 났을텐데


그나마 다행이었네요. 휴우..


저는 한은이 내는 자료가 중요한건 잘 알겠습니다.


연구 또는 분석, 주기적으로 내는 자료에는 숫자와 수치가 가득합니다.


그 숫자에서 의미를 끄집어내서 쓰는 게 한은 출입 기자의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근데 저는 그 수치 기사는 별로 재미가 없는 것 같아요. ㅠㅠ


경상수지가 어쩌고, 외환보유액이 어쩌고.. 중요한 얘기라는 걸 알겠는데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기자로서의 회가 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경제부 소속이지만, 너무 경제부같은 기사만 고집하지 말자.


숫자만 나열하는 기사는 쓰지 말자. 내가 재밌는걸 찾아서 쓰자!!!!!! 고요.


사실 종합일간지에서 한은은 그렇게 중요한 출입처가 아닙니다.


금통위 때만 반짝 하는 정도랄까요.


하지만 저는 어느 출입처든 재밌는 기사는 넘쳐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한은에서도 재밌는 일을 발굴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해보자는 마인드로 무장하고


지난 한달반을 살아왔습니다.


그 결과... 이런 기사들을 썼습니다.


같이 공유하면서 소회나 느낀점을 좀 말씀드리려고요.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830163?type=journalists


일단 이창용 한은 총재에 대한 관심이 커서, 공부도 할겸 써 봤습니다.


한은 총재는 원래 조용히 누군지도 모르고 넘어가는 일이 많은데, 이 총재는 좀 다르잖아요. 존재감도 그렇고.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많이 내니까 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취재해봤어요.


이 총재가 교수시절 가깝게 지냈다고 했던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님께도 연락을 드려보기도 했습니다.


이 기사 준비하면서 이창용 총재와도 수차례 통화를 했습니다.


쉽지 않았네요 ㅠㅠ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831825?type=journalists


이 기사는 회사 분들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DB형 DC형 다들 잘 아는거 같지만, 또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뭐가 어떻게 다르고 DC로 바꾸면 신경써야 할 점을 연금 전문가 2분에게 들어서 썼습니다.


저도 공부가 되었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832107?type=journalists


명절이 다가왔습니다. 명절 온라인 아이템을 고민하다가


명절에는 세뱃돈으로 신권을 주고 받는 풍경을 떠올렸어요.


그 돈은 어디서 만들어져서 어느 경로를 거쳐서 가족의 손에 들어오는지 한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일단 그 과정에서 한은 지하금고를 넣고 싶었어요.


이 지하금고는 아직도 저의 큰 관심사입니다. 베일에 가려져 있거든요.


어떤식으로 보안이 되는지도 궁금하고요. 아마 취재가 쉽지는 않겠지만.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833262?type=journalists


별건 아니지만 이 기사는 제가 한은 와서 처음한 단독 기사입니다.


명절 이후 쓸만한 아이템을 찾다가 과거 지난해 추석 이후 이런 류의 지폐 기사가 의원실 발로 단독으로 나온걸 봤습니다,


그래서 한 기재위 의원실 보좌관님께 요청을 드려서 자료를 받았습니다.


야마 뽑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동전을 어차피 거의 안쓰긴 하고.. 5만원권 교환이 최고치를 찍었던 지난해 자료와 비교하면 더 그래서


일단 최대한 써보았습니다. 보좌관님 감사합니다 ㅠㅠ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833948?type=journalists


한은은 정말 기사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료도 정례적인 수치 자료밖에 없어서..


그래서 제가 지난해 한은 국정감사 국회 요청 자료를 보다가


적립금 얘기를 보게 됐고요.


친한 재정경제부 공무원분이 한은 체크 포인트를 알려주셔서 적립금 현황을 가지고 기획 기사를 써봤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834014?type=journalists


그리고 대망의 금통위.


아침 일찍 나와서 떨리는 마음으로 이창용 한은 총재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는데요.


한은 출입기자들 참 똑똑하더라고요.


날카로운 질문과 경제전망 질의가 이어졌는데 총재님도 대답을 참 잘하셨습니다.


저는 아직 잘 몰라서 약간 난해하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공부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6차례 연속 동결이라 기사가 지면에 크게 들어가지는 않았네요.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834600?type=journalists


금통위 이후 3월 초 연휴가 이어졌습니다.


금통위 후속 기사를 준비하다가 한은 총재가 스프레드 얘기한게 생각났어요.


기준금리와 시장금리의 차이를 스프레드라고 하는데, 벌어지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건지 공부할겸 써봤습니다.


그런 와중에 회사 자본시장반 기자들이 주축이 되어 5회 시리즈로 진행한 증권시리즈에도 참여하게 됐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834763?type=journalists


주가 조작이나 선행 매매 적발을 위해 출범한 합동 대응단이 좀더 열심히 성과를 내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한 겁니다.


진짜 환율이 1500원을 넘나들고..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도 발제고민하다가 한은 사람들에게 전화돌리다가 총재가 긴급 회의 소집한다는 얘기를 듣고 기사를 써 봤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835083?ntype=RANKING&type=journalists


중앙은행은 당연히 환율에 신경써야 합니다.


긴급회의는 당연한 수순이었는데, 총재가 예정된 출장을 잠시 미루고 회의를 여는게


그만큼의 긴급한 국내 외환시장 상황을 보여주는 거 같아서 써봤는데요.


나름 그날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주요 신문사와 방송사가 다 제 기사를 받았답니다 ^^;;


사설에서 이러한 내용을 반영한 곳도 있었고요.


이런 기사는 경제부성 기사는 아니잖아요. 정치부 혹은 사회부 느낌인데,


경제부라고 경제부성 기사만 쓰라는 법이 있나요? 그냥 얘기되면 쓰는 겁니다.


그 와중에 이창용 총재에게도 연락을 했는데 답이 이렇게 왔습니다.


근데 그 발언이 우리 국민들의 공포심리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아 기사로 소화했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835330?ntype=RANKING&type=journalists


아울러 한은은 보고서를 다 공개하지 않습니다.


연구나 분석을 하고 외부로 내지 않는 그런 보고서가 많다고 합니다.


저는 그런 보고서가 궁금해서 한은 경제연구원 쪽에 끈질기게 취재하다가 하나 보고서를 받았습니다.


국민연금이 20년 넘게 해외투자를 하면 원화 가치를 오히려 강하게 한다는 게 야마였는데요.


보통 국민연금이 해외투자하면 단기적으로 환율이 오른다는 통념에 대해 뭔가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보고서여서 하나 소개했습니다.


보고서가 너무너무너무 어려웠는데, 쉽게 쓰는게 더 어려웠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835532?ntype=RANKING&type=journalists


그래도 재밌었습니다.





저는 연차나 선후배 상관없이 본인이 어떻게든 기사를 발굴하려는 노력도 없이 남의 기사를 평가절하하고, 무조건 얘기 안된다고 반복하는 그런 기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만의 기사를 써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팩트를 찾기 위해 노력해 본 적이 없는 기자들입니다. 별건 아니더라도 남들이 모르는 새로운 팩트를 찾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이 소요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걸 알면 함부로 다른 기자나 선후배를 재단할 수 없습니다. 말이 어려워집니다.


자신만의 기사를 써온 기자들은 누군가 발제를 하면 같이 논의하고 기사의 논리를 채우고, 키워주려고 합니다. 노력을 키우고 응원하며 함께 커 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기자를 잘 보지 못했습니다. 별로 없는 유니콘 같은 존재입니다. 그냥 욕하고 찍어누르고 쫑코주면서 아는 척하기는 매우 쉽습니다.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척 하는건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함께 커가려는 노력은 매우 어렵습니다.


사실 저는 대한민국을 뒤흔들만한 그런 큰 단독기사를 써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 회사를 그만둘지는 모르겠지만, 그떄까지 그런 큰 기사를 쓰지 못할 거 같기도 합니다.


반면에 저는 제가 맡은 출입처 내에서 그래도 남이 쓰지 않는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해 왔고 그런 측면에선 소기의 성과를 거둬왔다고 생각합니다.


보도자료 뿐 아니라 사람을 사귀기 위해 노력했고, 그 안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찾아 어떻게든 기사로 만들기 위해 짱구를 굴려왔습니다. 어떻게 해야 새로운 기사를 쓸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해 왔습니다. 15년 가까이 기자생활 했지만 여전히 마찬가지이고요.


연차가 올라가면서 슬슬 저도 관리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계속 현장에서 제가 재밌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직함이나 이런걸로 으스대고, 대우받고 싶은 그런 마음 추호도 없고요. 열심히는 하되 좀더 효율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인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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