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가라사대

by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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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신문 기자들은 주로 금요일에 쉬고, 일요일에 출근합니다. 월요일자 신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요일에는 대부분의 정부부처나 기관, 기업 등이 쉽니다. 직원들도 출근을 안 하고요. 물론 부처 중에는 월요일자 지면 엠바고로 일요일 등에 미리 자료를 내기도 합니다. 다만 아무래도 중요하거나 이런 발표는 주중에 하겠지요. 그러니 정치권이나 이런 바쁘게 돌아가는 출입처 말고는 보통 일요일엔 기사거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백지를 발제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미리 기획거리를 챙겨서 일요일에 써서 월요일자 지면에 나가거나 하게 됩니다.


이 과정이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막 재미있고 새로운 기획을 내면 좋겠지만, 매주 그럴수도 없고요. 그때마다 기자들은 연합뉴스를 비롯한 통신사 기사를 참고하게 됩니다.


연합뉴스와 뉴시스, 뉴스1 등 통신사는 보통 주말자라고 불리는 기사를 일요일 새벽에 송고합니다. 각자 출입처 관련 기획이나 단독기사들입니다. 통신사 내부에서도 이 주말자 기사가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통신사는 자사 기자들이 쓴 기사가 지면이나 방송에 실리는걸 '전재'라고 하는데요. 이 전재 횟수가 또 내부 평가에도 쓰인다고 하네요.


아무튼 연합 주말자는 타사 기자들에게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입니다. 사실 저는 연합을 맹신하는 건 좀 그렇습니다. 연합에 뭐가 뜨면 바로 반영하라! 받아라! 하는 건 좀.. 그렇잖아요. 연합 기사는 그래서 좀 계륵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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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합뉴스 선후배 기자들은 참 열심히 하십니다. 현장을 뛰다보면 정말 그게 느껴집니다.


주말자만 봐도 참 다양합니다. 어디 보고서, 의원실발 자료, 단독 인터뷰와 통계 분석 등등.. 그걸 발굴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 잘 찾아서 잘 만들어서 기사로 씁니다. 왜 연합뉴스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통신사인지 알 것도 같습니다. 동시에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시는구나 싶어서 마음도 좀 그렇습니다.


연합을 비롯한 통신사는 발표 기사도 누구보다 빨리 써야 합니다. 엠바고 시간에 맞춰서 쏴야하니 미리 써야 하는데 레퍼런스로 볼 것도 없습니다. 거기에 박스 기사까지 여러개 물리니까요. 참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현장에서 만난 연합 선후배들은 엄청 바쁘고 지쳐보였습니다.


아무튼 연합은 어떤 기사의 중요성을 판단할 때 큰 바로미터가 됩니다.


제가 단독 기사를 썼다고 칠게요. 연합이 제 기사를 받는지 마는지가 이 기사가 얘기가 되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 제 기사를 연합이 엄청 빠르게 받아썼다? 좋은 기사를 썼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단독을 올리는 날은 그래서 연합뉴스 홈페이지를 자주 들어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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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연합 기사는 모든 기자들이 안 볼수 없는 상황입니다. 연합에 또 돈을 주고 사진이나 기사를 쓰고 있는 언론사도 많고요. 저희 회사도 그렇습니다. 언론계의 도매상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연합은 단독이라는 마크를 붙이지 않습니다. 한때 붙였다가, 요새는 안 붙입니다. 사실 연합 주말자 뿐 아니라 평일에 쓰는 새로운 기사가 다 단독입니다. 사실 연합이 쓰면 모두가 따라가는 분위기라 일부 부처나 취재원은 연합에 미리 정보를 주기도 합니다.


근데 또 현장 기자 입장에선 연합이 쓰면 모두가 받고, 그렇게 가는게 좀 불만이기도 합니다. 제가 쓴 단독 기사가 어찌보면 가치가 있고 얘기가 되어 보이는데 조용합니다. 그러다 연합이 제 기사를 받으면 우후죽순 여러개의 매체에서 같은 기사가 나오는 게 좀 의아하고 그렇습니다. 연합이 쓰면 맞을 것이다, 연합이 쓰면 얘기가 된다, 연합이 쓰면 기사가 된다.. 이런 마인드가 언론계에 많습니다. 99% 맞는 얘기이지만, 좀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어릴적엔 연합이 받을 만한 기사를 쓰자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내가 취재해 쓴 기사가 연합에 실리고, 그걸 여러 매체가 받아쓰고, 방송에서도 읽히고, 포털 메인에도 걸리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그게 곧 ‘좋은 기사’의 증명처럼 느껴졌습니다. 기자라면 한 번쯤은 그런 순간을 바라보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도 그 마음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닙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복잡해졌습니다. 연합이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기사인 것도 아니고, 연합이 안 받았다고 해서 가치 없는 기사인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어떤 기사는 조용히 묻혀도 분명히 의미가 있고, 어떤 기사는 다 같이 쓰지만 막상 남는 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장에서는 여전히 연합이 하나의 기준처럼 작동합니다. 연합이 쓰면 비로소 ‘기사가 된 것’ 같고, 연합이 안 쓰면 뭔가 덜 주목받은 기사처럼 여겨집니다.


생각해보면 참 묘한 일입니다. 각자 취재하고, 각자 판단하고, 각자 책임지는 게 기자의 일일 텐데, 결국 연합이 하나의 바로미터가 되는 순간이 있으니까요. 연합이 쓰면 다들 움직이고, 연합이 안 쓰면 다들 한 번 더 망설입니다.


언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가 기준점이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 당연함 속에서도 각자의 역할은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같은 현장을 뛰어도 누군가는 더 집요하게 파고들고, 누군가는 더 좋은 질문을 던지고, 누군가는 남들이 지나친 장면에서 의미를 발견합니다. 결국 좋은 기사는 그렇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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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연합을 탓하기도 어렵습니다. 누구보다 빨리 쓰고, 누구보다 많이 쓰고, 누구보다 넓게 커버하는 곳이니까요. 그 무게를 감당하려면 얼마나 많은 품과 체력이 들어갈지 현장에서 보면 압니다. 그래서 한편으론 감탄하고, 한편으론 기대게 되고, 또 한편으론 자극도 받습니다. 왜 연합뉴스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통신사인지, 현장을 뛰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남는 생각도 하나입니다. 연합이 중요한 건 맞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 연합이 받아주면 반갑고, 안 받아주면 아쉽지만, 기자를 끝내 움직이게 하는 건 다른 누군가의 판단보다도 스스로 이건 꼭 써야 한다고 믿는 마음일 것입니다. 연합이 오늘의 기준을 보여준다면, 현장 기자들은 또 그 기준을 넘는 기사를 쓰기 위해 뛰게 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연합뉴스 홈페이지를 자주 들여다보면서도, 언젠가는 누군가가 제 기사를 보고 같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그래서 한국 언론은 오늘도 굴러갑니다. 연합뉴스가 길을 비추고, 수많은 기자들이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려 애쓰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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