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출입처를 새로 배정받으면 하나 하는게 있다고 했지요? 바로 출입처의 장과 빠른 시일내에 인사하고 연락하는 겁니다.
그 이후 제가 하는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출입처의 빠꼼이 기자를 찾는 겁니다.
기자들은 빠꼼이라는 말을 많이 쓰더라고요.
그러니까 출입처 취재원들을 잘 알고, 현안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출입처와 관련한 딥하고 재미있는 기사를 많이 쓰는 그런 기자를 뜻합니다.
꼭 크고 유명한 매체라고 모든 기자가 빠꼼이인건 아닙니다.
오히려 매체와 상관없이 기자 개개인별로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반인들은 보통 매체로 기자를 쉽게 판단합니다. 하지만 실제 언론계에서 기자로 뛰다보면 매체와 기자 개인의 능력은 별개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매체를 들어간 거겠지만, 어떻게 하다보니 조금 매체력이 약한 곳에서 일하지만 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그런 기자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삼성이나 SK 다닌다고 모든 직원이 다 일을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 입사에는 운도 크게 작용하기도 하고요.
아무튼 저는 새로운 출입처를 맡게 되면 약 한달 간 타사 기사를 엄청 열심히 챙겨봅니다.
그러면 딱 눈에 띄는 바이라인이 있습니다.
똑같은 자료도 그저 그대로 쓰지 않고, 자신의 주관이나 야마를 가지고 쓰거나 단독을 많이 하거나, 아니면 재미있는 기획기사를 나름대로 발굴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묻어나는 그런 기사들입니다.
그런 기사를 쓰는 기자와 매체를 저는 따로 적어두거나 합니다.
그러다가 기회가 될때 그 기자에게 인사하고 어필하는 겁니다.
저는 선배든 후배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선배면 오히려 더 편하게 접근 가능하고요.
이런 식입니다.
"아, 선배 안녕하세요. 저 이번에 새로 배치받은 국민일보 기자인데요. 제가 너무 잘 몰라서.. 근데 타사 체크는 진짜 열심히 하거든요. 근데 선배께서 기사 너무 재밌고 쉽게 잘 써주셔서.. 공부가 넘 잘되었어요. 혹시 언제 한번 식사 가능하실까요?"
이렇게 인사하는 겁니다.
타사 후배에게 이렇게 하면 효과는 더 극대화됩니다.
아무도 이렇게 하지 않거든요. 자존심도 있고 눈치도 보이고.
그런데 저는 그런 거에 신경 전혀 안씁니다. 제가 먹고살아야 하고, 지금 당장 목숨이 위험한데 그런거 신경쓸 겨를이 없거든요.
아무도 이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단숨에 '예의바른 후배 혹은 성실하고 겸손한 선배'로 출입처 기자들 사이에서 이미지메이킹 할수 있습니다 ㅎㅎ 저의 전략입니다.
아무튼 그런 빠꼼이 기자들과 조금씩 친해지면서 출입처 적응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될 수 있습니다. 이건 정말입니다.
그들이 저를 도와주면 취재원도 더 쉽게 만날수 있고, 그들이 취재원과 나누는 대화를 듣고 '아 현안이 이거구나' 하고 배울수도 있고요.
다만 받기만 해서는 안되겠지요? 저도 열심히 노력해서 취재원과 약속을 잡고 그들을 초대하든지 뭐라도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전략적으로 그들에게 접근은 하지만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뒤통수 절대 치지 말고 동료로서 함께 성장하는 걸 보여주는 게 좋습니다.
그런 식으로 빠꼼이 기자들과 관계를 형성해야 저도 해당 출입처의 빠꼼이가 되어갈 수 있습니다.
전 가끔 일부 출입처에서 홀로 지내는 기자들을 엄청나게 많이 봤습니다.
뭐 개인적인 성격 탓일수도 있고, 혼자 잘났다고 생각하는 자존심 때문일수도 있고요.
기자들 특유의 몰려다니는 문화를 싫어하는 걸수도 있습니다.
일부 매체는 수습시절에 한정해 기자들과 다니지 말라는 얘기도 하는 곳도 있더라고요.
근데 저는 이런 방식 절대 비추입니다.
아무리 내가 뛰어나도 시간적 제약이 있기 때문에 단번에 만날수 있는 사람이나 들어오는 정보의 양이 제한돼 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취재하는 기자들과 친해지면 인맥의 넓이와 들어오는 정보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물론 각자가 기사로 쓰려거나 민감한 정보 등은 공유를 안하겠지만. 그래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정보들은 기자들이 서로 쉽게 나눕니다. 그러면 정보보고에 좀 활용할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기자생활은 너무 힘듭니다. 근데 이런 얘기 일반 직장인 지인이나 친구에게 나누기 쉽지는 않습니다. 서로 관심사나 이런게 다르니까요.
그런데 기자들은 서로의 고충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말이 쉽고 잘 통하고 그러니까 꾸미 등을 만들어 무리를 짓는 게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출입처에 애정이있고, 열심히 취재하는 그런 기자들을 만나면 내가 취재한 출입처 내용을 공유하며 퍼즐이 맞춰지는 경험도 합니다. 내가 취재한 부분과 다른 기자가 취재한 내용이 결합하면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경우가 꽤 되거든요. 아 그래서 그 취재원이 이렇게 행동했구나.. 하는 식이지요.
하지만 선행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출입처 기자들과 친해지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기자들 다들 얼마나 자존심 강하고 특이합니까?
다들 줏대, 자존심, 가오 이런거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까다로운 이들입니다.
특히 열심히 일하고, 취재하고, 출입처에서 이름을 날리는 기자들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조용히 평범하게 살면 이름을 날리기란 불가능하니까요.
그런 그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매우 쉬울수도 있습니다.
자존심을 내려놓으면 되거든요.
저도 기자고 타사 후배에게 고개숙이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근데 그런게 무슨 상관일까요?
출입처에서 새로운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그만큼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갈아넣어 취재원을 만나고, 기사를 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막 출입처에 온 기자입니다.
그러면 연차나 매체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노력에 어찌보면 묻어가려고 마음 먹었으면 내려놓을 건 내려놔야 합니다.
전 그래서 어디를 가든 자신이 어디 매체 소속이라거나 자신이 연차가 높다는 식으로 자기소개를 하는 그런 기자를 좀 혐오합니다.
솔직히 일주일만 같이 지내도 역량이 빤히 보이는데 그런 중요치도 않은 허울에만 갇혀있는 소위 얘기 안되는 기자이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에게는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나의 성장이 있습니다. 기자 직종은 더 그렇습니다.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가 잘 안되는 그런 기자들은 빠꼼이가 될수 없고, 다른 빠꼼이 기자들과 친해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잘 한다고 착각합니다. 자신이 출입처에서 잘 나가고, 취재원과 잘 지내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아무도 그 앞에서 진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눈치가 없고, 자존심만 남아서 현실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도태되고, 후배들한테 속으로 무시당하고 하는 겁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런 기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자기잘난 맛에 사는 것이 어떨때는 행복해 보였습니다. 이제는 아닌 거 같아요. 저는 제 자신에 대한 주제파악과 메타인지가 정말 잘 되는 기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글을 보게 되시는 언론고시생 분들, 혹은 기자 후배님들.
자존심을 버리고 매체력 이딴거 전혀 상관없이 나보다 잘하는 그런 기자를 찾아 친해지고, 배우세요.
오히려 각자 소속된 회사 내부에는 배울만한 선배가 많이 없을수도 있잖아요? 정말 그렇습니다.
그러면 언론계 전체로 넓혀서 내가 믿고 따를 수 있는 그런 빠꼼이 기자풀을 만드세요.
저는 15년간 그렇게 빠꼼이 기자들을 많이 만났고, 친해졌고, 그들에게서 취재와 인생을 배웠습니다.
그들의 치열한 삶과 가치관을 보고 들으며 저의 생각을 넓혔습니다.
그래야 이곳 언론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냥 지내고 조용히 살수도 있어요. 그런 기자들도 엄청 많고요.
근데 그럴거면 기자 왜하셨어요? 저는 그럴바엔 기자 그만둘 것 같아요.
그냥 돈 많이 주고 이런 곳 갈 수 있는 스펙들 충분히 되시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