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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보충대(1)

by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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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밝았다.

왠지 수능보는 날 같은 느낌이었다.


엄니는 그날따라 아침부터 고기를 준비하셨던 듯 하다.

빡빡 민 머리에 디룩디룩 찐 목살이

왠지 좀 슬퍼보이기도 했다.


강원도 가는 길은 왜 그리 멀고 또 험한지

무슨 글씨가 새겨진 다리를 건넜던 것 같은데

어떤 구절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하다

아마 정이 넘치는 강원도 - 류의

역설적 어구가 아니었을까.


군대 가기 전

세상의 모든 고기를 씹어먹었던 탓으로

안그래도 퉁퉁했던 뱃살과 목살이

충만히 영글어 있었다.

군대가면 빠진다고 자위하며

한 선배가 겁주던 - 짬밥에는 성욕억제제를 넣는다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정도 맞는말 인듯) - 괴소문을 감내해가며 102보충대에 입소하게 되었던 것이다.


훈련소 주변은 연인을 보내는 여자친구들과

갑자기 다정다감해진, 일부는 훌쩍이는 부모님들과

긴머리가 한없이 부러웠던, 곧 가게되어 함께 심난한

친구들과 아니면 갔다와서 짐짓 여유를 부리는 선배들과

필요도없는 깔창을 2배나 비싼 가격에 파는 상인들과

혼란을 감추고 웃거나 울거나 쓸데없는 물건을 비싸게 사는 예비 훈련병 - 전문용어로 장정이라고 한다 - 들로 북적댔다.


날씨가 참 좋았다.

봄과 여름의 중간에서 계절의 여왕다운 5월의 일곱번째 날이었다.


사실 102보충대의 땅을 밟는 순간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올게 왔다는 두려움과

날씨가 참 좋다, 라는 잡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를 빡빡밀고 앳된 얼굴로

두리번 거리는 나의 동지들이

안타깝고, 또 든든해서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몰려왔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신나군!이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봤던

그 단상앞에 서 있었다.


그 단상은 마법이었다.

연신 울음을 만들어냈다.


한 아빠가 올라와서

자식에게 위안을 했다.

별거 아닌 말이었는데도

그땐 상당히 슬프게 들렸다.


키큰 장정이 나와

어머니께 용서를 빌었다


이제 군대다녀와서는 열심히, 사람같이 살겠다고

그는 사.람. 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20년동안 과연 그는 짐승처럼 살아온걸까
나도 마찬가지였다고, 느꼈던 듯하다

갑자기 군악대가 등장한다
중대장인가가 단상위로 올라온다
"이제 헤어질 시간입니다. 모.두. 일어서!"

그때였다. 잘 참고 있던 어머니의 눈물이 폭발한것은.
모르겠다. 나도 울지 않으려 했는데 내 옆의 한 장정이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너무 서럽게 우는 것이었다.

한순간, 내 20년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꾸역꾸역 모여들어 두줄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저 장정들 속에 가기전에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감사를 드렸다.

이제 저 사람구실 하러 간다고,
꼭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다 큰 놈이 훌쩍댄다 비난하긴 이르다.
80%가까이가 102보충대를 울음바다로 만들고 있었으니까

동생과 함께 나란히 섰다.
이제 진짜 가는 모양이었다.

저기 멀리 어머니가 보였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계셨다.
아버지는 연신 손을 흔들고 계셨다.
교관이 뛰어!라 외치자 장정들은 정정당당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군인이니까.


*참고로 강원 춘천의 102보충대는 2016년 폐지됐다.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따라 창설 65년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102보충대 폐지 이후 일대 주변 음식점과 상가는 '개점휴업' 상태라고 한다. 춘천시는 직격탄을 맞은 상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숙박과 휴양, 체육시설 등이 있는 복합휴양시설 건립 유치를 건의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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