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사라는 곳에 들어왔다.
한방에 50여명정도.
까까머리의 우리들은 서로를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앞사람 뒤통수만 봐라!"
우리 소대를 담당한 기간병은
하 일병이었다. 소리가 매우 우렁찼던 그는 연신
"예 알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시작하겠습니다!"를
연발했었다.
이런 젠장 오줌이 마려웠다.
"화장실 가도되겠습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
태어나서 14시간동안 오줌을 참아보긴 처음이었다.
2시간쯤 지났을 때는 온몸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7시간이 지나 어둑어둑해지자 발끝부터 조금씩 떨림이 시작됐다.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오줌좀 누겠다는데... 서러웠다.
밤 10시경 취침전에
화장실을 '개방'했다.
연신 들려오는 씨x 소리는 오줌에 씻겨 흘러가는 듯했다.
놀랐던건, 군대에서는 밥숟가락 하나로 모든걸 해결하는 것이었다.
돈까쓰도 쪼개먹고
빵도 쪼개먹고
김치도 떠먹었다.
처음입어보는 군복은 헐렁했다.
머리가 큰 탓에 모자는 빵처럼 구부러졌고
화장실 거울로 비춰본 나는 영락없는 바보처럼 보였다.
102보충대의 하이라이트는 부대배정이다.
이기자 부대, 칠성부대등 이른바
죽음의 부대에 배속되면
2년이 괴롭다는 괴소문이 팽배해 있었다.
동생과 함께 입대한 나는 같은부대 전입을 거부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지 않고
이제 새로운 길을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뺑뺑이가 돌려지고
나는 2사단 노도부대
동생은... 이기자 부대에 배속되고 말았다.
불침번을 서면서 한없이 울었던것 같다.
차라리 내가 이기자 부대에 배속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각자 부대의 훈련소로 배정되는 날,
동생의 손을 잡고 말했다.
"건강하게 잘 살다 만나자"고.
줄맞춰 걷고
삼선일치를 배우고
군가를 따라부르고 " 높은산 깊은골..인가 뭔가
밥을 숟가락으로 찍어먹으며
정신없이 3일이 지나갔었다.
민간인의 탈을 벗고
장정의 가면을 내려놓으며
이제 나는 훈련병으로
2사단 노도부대 신병훈련소가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