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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번 훈련병

by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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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막사에 한꺼번에 들어왔다.

다들 넋이 나간 표정이다.

나는 101번 훈련병이었다.

100번 훈련병 김기백과

102번 훈련병 최명진 사이에서

나는 101번 훈련병이었다.


키가 땅에 붙은 하사가 들어왔다.

"이새끼들 정신 안차려! 아직도 민간인인줄 아나? 엉?"

평상에 마주보고 앉아 누구도 아무말이 없었다.

2사단 노도부대 1중대 훈련소 5주차의 밤이 그렇게 시작됐다.


조지 오웰이 묵던 스파이크(수용소)가 생각났다.

우리는 그렇게 6시에 일어나 밥을 먹고

총검술이나 제식따위를 배우고

압존법(상병보다 병장을 높이는 법)을 배웠으며

이상한 일기를 써대곤 했다.

정말 시간이 안갔다

전화한번 하려고 미친듯이 각개전투를 받다가

팔꿈치가 다 까졌고

목이 말라 피섞인 가래침도 뱉었으며

흉흉해진 분위기 속에 동기끼리 싸움도 늘어만 갔다

+ 취사조, 정화조가 있다는 것도 처음알았다

밥 만드는 취사병들을 도와주는 아해들은

한시간 먼저 일어나 짬장을 따라 취사장으로 갔다

정화조 아해들은 정체를 알수없는 까만 물을 젓고 또 저었다

수류탄을 던질때의 알수없는 긴장감과

난생처음 해보는 15km 행군에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어

연신 씨발을 읊기도 했고

수통마개를 잃어버려 하사에게 갈굼당하던 기억,

소독을 한다고 모포와 포단을 나르던 비효율적인 행태들,

군화를 닦을 때 칫솔이 끊어질때까지 문지르던

그러면서도 5주동안 정이들어

헤어질때 눈물나던 그 기억들

천상, 군인은 다 아해인가 보다

사단 본부로 차출될 기회를 놓쳤다

뽑기에 능하다는 컴퓨터의 농간이었다

우리동생은 잘 지내고 있을까

엄마아빠는 뭐하고 계실까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 중일까

날씨는 또 왜이렇게 더운것일까

나는 왜 여기서 이짓을 하고 있을까

나라는 내 고생을 알아주고 있을까


고작 공포탄을 장전했다는 이유로

손발이 떨리던 근무때

야속하게도 찬란하게 빛나던 별빛을 바라보며

떠오른 생각은 일파만파로 퍼져만 갔다

내복사이즈를 맞추려 주먹이 오갔던 동기들과

무분별한 얼차려,

빠져가는 살들속에서

하루하루 쓰는 일기는 오히려 아름다웠다

여자친구에게서 줄창 편지가 오는 동기를 시기했었고

2개씩만 주는 돈까스에 울분을 토했었고

불침번을 스며 125번 훈련병이 관물대에 숨겨놓은

초콜렛을 훔쳐먹던 기억

참 달고 눈물나게 맛있었던 것 같다

난생 처음 해보는 사격에

그 퀭한 소음에 몸서리쳤고

화생방하면서 죽음을 맛보았으며

물한모금도 나눠먹기보다 몰래 훔쳐먹는

야비해지는 법, 뻔뻔해지는 길을 몰래 배웠다

아무데서나 오줌을 눌수 있게 되었고

조교가 없는 곳에서는 개객끼라 욕지거리를 해댔으며

주마다 채워가는 훈련병 배터리에 즐거웠었고

교회에서 초코파이를

절에서 피자를

천주교에서 전화를 이용하며

종교란 참 고마운 것이었다

3주차 후임들이 2중대에서 기고있는걸 보면

"새끼들 빠져가지고"를 연발하던 우리들

음담패설 한소절에 자지러지고

건빵과 맛스타 한개에 울고웃던

그 찌질하지만 즐거웠던 시절이

아스라히 떠오른다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101번 훈련병 박세환을 기억하고는 있을까

훈련소에서 우리는 사회를 벗어내기보다

사회를 추억하며 그리움의 농도를 짙게하는

아련한 향수에 젖어들곤 했었다

별의별 인간군상을 다 만났다

온여자는 다 건드렸다는 카사노바와

착해빠진 아해들과

좀 놀았다는 아해들과

공부좀 했다는 아해들과

소심하게 혼자다니는 아해들과

권력에 찌든 아해들 (대개 소대장을 자청하곤했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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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짧은 5주안에

그 작은 40명의 인원속에서도

계급과 체계가 생겼다

나는 이도저도 아닌

그저그런 그룹이었다

그들은 어쩜 그리 적응이 빨랐을까

맘편하게 웃을수 있었을까

훈련소에서 나는

내가 군인체질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그래도 남들 다하는거니까

뒤쳐질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101번 훈련병 박세환은 그렇게 5주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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