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사단 32연대 11중대 3소대 막사 안
등장인물 - 박세환(이등병) / 배일병 / 이름까먹은 병장 / 행보관
중대장 etc
오후 4시 30분 박세환 등장. 텅빈 3소대 안에 혼자 앉아있다.
8월이라 햇살이 간간히 코끝을 간지럽히는 중에
몰려오는 졸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쓰는 박이병.
이때, 배일병 등장.
"신참인가 보지? (웃는다) 드디어 나도 맞후임이 들어오는군하!
이름이 뭐냐? 귀엽게 생겼네."
"이병 박 세 환!"
"야야. 소리 크게 안해도돼. 지금 선임분들은 다 사격가셨거든? 한시간 후쯤에 돌아오실껴. 그때까지는 좀 편하게 해." (자상하게 웃는다)
맘속으로 이런 선임과 함께라면 군생활도 즐거울 것이라 자위하는 박 이병.
한시간동안 배일병과 박이병은 군가를 외우기도 하고 2분대 선임들의 이름도 하나씩 배우고 전투화 닦는 법을 배우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한시간 후 오후 5시.
얼굴에 갈녹검 위장을 한 무서워뵈는 선임들이 하나둘씩 돌아온다. PRI (사격연습)가 과했는지 다들 짜증나는 표정이다.
김 상병 - "야, 이새끼 뭐냐?" (박이병을 가리키며)
전 상병 - "신병이냐? 비리비리하게도 생겼네."
윤 분대장 - '오랜만에 신병인데 왜케 허약해보여? 야 너 축구잘하냐?"
박 이병 - "축구는 잘 못합니다!"
일동 - 그럼 니놈새끼는 잘하는게 뭐냐?
박 이병 - "노래를 좀 합니다"
일동 - 그럼 불러봐. 그대신 못 불르면 뒤진다.
박 이병 - 에코의 '행복한 나를'을 남자키로 바꿔 부른다.
선임들 - 야 신나는 걸 불러보라고! 아 짱나네
박 이병은 식은땀을 흘리며 막춤을 춘다. 선임들의 짜증은 더 심해진다.
윤 분대장 - 야! 배 일병. 이새끼 교육좀 똑바로 시켜. 얘 고문관 될꺼 같은데? 야! (박이병을 가리키며) 삼선일치가 뭔줄 알어?
박 이병 - 삼선일치요?
윤 분대장 - 아쭈 이새끼 봐라. 요? 요? 요?
박 이병 - (더듬으며) 삼선 일치 말씀이십니까?
윤 분대장 - 이새끼야. 선임한테 되묻냐 지금? 안되겠네!
박 이병 - (속으로) 아 나보고 어쩌라고!!!!!!!!!!!!!!!! (겉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이때 다행히도 방송이 나온다.
스피커 - 오늘 전입온 신병들은 신속히 행정반으로 내려와주시기 바랍니다.
일동 - 빨리 내려가! 딴소대 신병들보다 늦으면 알아서해라 (무서운 표정을 짓는다)
박 이병 - 예 알겠습니다 (후다닥 뛴다. 중간에 계단에서 넘어진다)
배 일병 - 야, 긴장할꺼 없어. 나랑 같이 가면돼.
행정반에서 중대장과 행정보급관이 기다리고 있다. 박 이병을 포함한 신병 한명이 주뼛주뼛 서있다. 수시로 할일없는 병장들이 전투모를 뒤집어쓰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동물이라도 보듯 박 이병의 얼굴을 구경한다.
중대장 - 박 이병. 자네는 체력이 좀 좋나?
박 이병 - 아닙니다.
중대장 - 그럼, 끈기가 좀 있나?
박 이병 - (끈기따윈 없지만) 예, 노력은 어쩌고 저쩌고
중대장 - 혹시 위로부터 행정병으로 차출된다고 해도 우리 중대에 남을꺼지?
박 이병 - (바로 뜨고야 만다) 아니요. 저는 11중대에 뼈를 묻을 예정입니다.
중대장 - 좋았어.
행보관 - 부모님은 뭐하시나? 학교는 어디다녀? 영어는 좀 하냐? 자대 오니 어떠냐? 숟가락은 있냐?
박 이병 - 아, 네.
박 이병은 음료수 (250원짜리 자판기에서 나온것)를 쪽쪽 빨며 소대로 올라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배 일병은 행정반밖에서 박 이병을 쳐다보고 있다. 박 이병은 배 일병에게 참을 수 없는 의지감을 느낀다.
중대장 - 됐어. 이제 올라가봐.
배 일병과 함께 소대로 올라간 박 이병. 소대는 어느덧 30여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름이 뭐라고?" 묻는 친절해 뵈는 선임부터 다짜고짜 욕부터 하는 선임, 장난치는 선임, 흘겨보는 선임, 째려보는 선임, 과자를 주는 선임까지 별의별 선임이 다 있었다.
중요한건 나보다는 다 선임이라는 것.
내가 2년동안 있을 곳이 이 협소한 공간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