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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Dec 28. 2019

장발장 부자(父子)와 조작된 진실

대통령까지 언급했는데..


소위 '현대판 장발장'이라 불리며 국민적 반향을 일으킨 MBC의 특종기사 '인천 마트 절도사건'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디어가 사람을 어떻게 비추느냐에 따라 개인은 의인으로 비화하거나 혹은 천하의 악당이자 파렴치한으로 전락한다. 아직 뭐가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언급한 장발장 부자 사건을 두고 논란이 있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해당 가족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무조건 미화했다면 책임 방기이고, 이를 검증하지 않고 대통령이 공식 회의석상에서 언급하게 만든 청와대 참모진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사실관계부터 정리해보자. 2019년 12월 10일 34세 아버지와 12세 아들이 인천의 한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 적발됐다. 그들이 훔친 것은 우유 2팩과 사과 6개, 그리고 몇 개의 마실 것, 현금으로 환산하면 1만원 내외의 먹을 것들이었다. 

     

경찰이 출동했다. 아버지는 땀을 흘리며 ‘배가 고파서’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벌써 두 끼를 굶었고, 아빠는 기초생활수급자였으며 당뇨와 갑상선 질환이 심해져 6개월째 일(택시기사)을 그만둔 상태였다고 경찰에 말했다. 이들은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고 집에는 홀어머니와 7세의 어린 아들이 있었다.


가슴 아픈 사연의 사건이었다. 훈훈한 미담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마트 주인은 처벌 대신 앞으로 이들에게 쌀과 생필품을 공급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이들을 훈방 조치했다. 아버지에게는 행정복지센터에 연락해 일자리를 찾아주기로 했으며, 아들에게는 무료급식카드를 발급하기로 했다. 경찰은 ‘요즘 세상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울먹이며 장발장 부자에게 따뜻한 국밥을 사줬다.


기적은 이어진다. 회색 옷차림의 어떤 사람이 들어와 아무 말 없이 부자에게 흰 봉투를 내놓고 나갔다. 아들이 황급히 쫓아나갔으나 이 사람은 손사래를 치며 사라졌다. 봉투에는 현금 20만원이 들어 있었다. 그 사람은 마트에서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하고 현금을 인출한 후 경찰과 이들이 있던 식당을 다시 찾아와 그것을 건네고 간 것이었다. 경찰은 이 사람에게 감사장을 수여하기 위해 수소문을 했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장발장 부자에게 국밥을 사줬다는 이재익 경위가 MBC 뉴스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부가 이런 훈훈한 미담을 놓칠리가 없다. 인천중부경찰서는 ‘현금 20만원’의 주인공(66세의 박춘식씨)을 찾아내 경찰서장 명의의 감사장을 전달하고 사진을 찍었다. 국밥을 제공한 인천중부경찰서 영종지구대 이재익(51) 경위에게는 민갑룡 경찰청장 표창이 주어졌다. 함께 출동했던 김두환(34) 순경은 이상로 인천경찰청장 표창을 받았다.


마무리는 대통령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2월 16일 수석 보좌관회의에서 장발장 부자 사건을 직접 언급했다. 국가가 챙기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를 시민들이 직접 챙긴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그는 "장발장 부자의 이야기가 많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흔쾌히 용서해 준 마트 주인, 부자를 돌려보내기 전에 국밥을 사주며 눈물을 흘린 경찰관, 이어진 시민들의 온정은 우리 사회가 희망 있는 따뜻한 사회라는 것을 보여줬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며 "정부와 지자체는 시민들의 온정에만 기대지 말고, 복지제도를 통해 제도적으로 도울 길이 있는지 적극적으로 살펴주기 바란다"고 했다. 연말을 맞아 국민들에게 훈훈함을 안겨줬다. 




최근 한 시사프로그램이 해당 사건을 조명하면서 논란이 빚어졌다. 장발장 아버지가 훔친 마트 제품에는 소주가 포함돼 있었다. 해당 제작진에 따르면 아버지가 근무했던 택시회사의 여론은 냉랭했다. 애가 아픈데 병원비가 없다고 해서 10만원을 빌려줬는데 토토 복권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회사 관계자는 "도둑 성향이 좀 있는 사람이다.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택시회사를 옮겨다니며 미입금(하루마다 충족해야 하는 금액을 입금하지 않는 것)시키고 도망다녔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아버지가 자주가는 PC방을 찾아가 직접 만남을 가졌다. 아버지는 “친구들이 말도 안 되게 안 좋은 쪽으로만 올려놨다. 감당할 수가 없다”며 “사납금 내려고 노력을 한다. 내가 돈을 떼먹은 게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또 지난 10일 마트 절도 건에 대해서도 “그 날은 배가 고파서 그런 것보다도…”라며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다른 사연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또 “나라에서 혜택을 받고 있다. 135만원이 나온다. 어려운 건 맞는데 한번 해서 이렇게까지 유명해질 줄은 몰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후원을 받을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한 이씨는 “대학병원 검사해보고 괜찮아지면 취업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MBC의 경우가 그러했듯이 장발장 부자를 지적하는 또 다른 언론의 말만 믿고 진실을 넘겨짚을 순 없다. 다만 완전무결한 미담처럼 보였던 사안이었다. 경찰찰과 청와대까지 이에 반응해 전방위적으로 포장한 사건의 뒷맛이 찝찝한 것은 분명 문제다. 장발장 부자의 가족 현황과 연금 등 수급 상태에 대해 다시한번 확인하고 보도하는 게 맞았다. 감정에 휩쓸려 국밥 등으로 포장할 일은 분명 아니었다. 특히 청와대는 대통령이 언급하기전에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을 미리 체크하고 사전에 준비했어야 한다. 만약 장발장 부자가 PC방에 쪄들고 도벽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였다면 그 숱한 표창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경찰과 언론사가 윈윈하기 위해 사안을 포장했다는 의혹이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해당 건은 실적 위주의 경찰 내부 분위기가 낳은 폐해일 수 있다. 경찰의 ‘홍보 마인드’는 때때로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초래한다. 출동 때 카메라부터 챙기는 건 이미 예사로운 일이 됐다. 자살기도자 구조나 화재 대처 등 급박한 상황에서도 사진 촬영은 필수로 여겨진다. 홍보 실적 경쟁에 성과를 조작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최근 독거노인 이모(73)씨가 혼자 살던 충북 옥천군 단독주택에서 불이 났다. 인근 파출소에서 A경위 등 2명이 현장에 달려갔다. 이씨는 바지에 불이 붙은 것도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경찰은 노인을 집 밖으로 대피시켰다. 보일러실엔 여전히 불길이 가득했다.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촬영’이 진행됐다. A경위가 소화기로 불 끄는 모습을 다른 한 명이 찍은 것이다.   

  

서울의 지구대에 근무하는 한 경찰은 “출동 때는 항상 카메라를 챙기거나 휴대전화 배터리를 꼭 확인한다”고 했다. 특히 노인이나 어린이, 술 취한 사람이 길을 잃고 헤맨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좋은 거리’가 된다. 명절을 맞아 독거노인을 방문하거나 백혈병 환자를 위해 헌혈하는 모습 등도 포함된다. 

     

경찰이 이렇게 홍보에 목을 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상여금 지급이나 인사평가의 기준으로 쓰이는 ‘치안종합성과평가’에서 홍보 실적 평가가 가장 큰 비중을 갖기 때문이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민의당 김동철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2013∼2015년 치안종합성과평가’ 자료를 보면 지난해 경찰청 개인성과지표 중 ‘치안정책 홍보 실적 평가’ 항목이 가장 높은 비중인 7%를 차지했다. 2013·2014년에는 2%였는데 지난해 갑자기 7%로 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4대 악 근절’ 항목(7%)과 같은 비중이다. 생활안전, 피해자 보호 등 민생과 밀접한 분야는 5%에 그쳤다. 그만큼 홍보가 중요해진 셈이다.     


추위에 떠는 등산객에게 근무복을 벗어주는 사진으로 인터넷에서 유명세를 탔던 전북 지역의 여경은 2014년 특진을 했다. 서울의 한 강력계 형사는 “납치범 등 흉악범을 잡아야 특진을 하는데 사진 하나로 승진하는 게 어찌 보면 억울하다”고 했다. 


경찰서와 지구대별로 성과 경쟁이 일다보니 성과를 조작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충북 청주의 지구대는 신입 여경이 기지를 발휘해 수배자를 검거했다고 홍보했다. 택배기사로 변장한 새내기 여경이 범인 검거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거였다. 그러나 이 여경은 당시 수배자의 아파트 1층에서 대기 중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담이 승진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조작하는 작태가 왕왕 있는 셈이다.

   



미국 천재소녀로 알려진 김정윤 양. 모두 거짓 보도였다.


경찰보다 언론에 대해 할 말이 좀 더 많다. 2015년 미국 천재소녀 오보 소동을 예로 들어보자. 당시 미국 최고의 공립과학고인 토머스 제퍼슨(TJ) 과학고 12학년(한국 고교 3학년)에 다니던 김정윤 양의 스펙은 모두의 로망이었다. 미국수학능력시험(SAT) 만점, GPA(학점) 4.6에 미국 수학경시대회 수상.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주최한 ‘프라임 USA’ 리서치에서 ‘컴퓨터 연결성에 대한 수학적 접근’이란 아이디어가 저명한 대학교수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모두가 과장이나 거짓이었다. 


워싱턴 중앙일보는 김양이 하버드와 스탠퍼드 대학교에 동시합격했다고 최초보도했다. 국내 언론은 아무 의심없이 이를 받아썼고 김양은 순식간에 전국적인 스타가 됐다. 며칠 뒤 조작 의혹이 제기됐고 일부는 속좁은 사람들의 질투로 치부했다. 다만 경향신문의 취재로 하버드와 스탠퍼드대 측이 김양의 합격증이 위조된 사실을 밝히면서 사안이 마무리 됐다. 언론인 출신인 김양의 아버지가 합격증 위조를 시인하기도 했다. 가족의 기대에 맞추려는 한 소녀의 거짓말이 온 언론을 뒤흔들어 놓았다. 사실 확인에 게으른 우리 언론들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사실 관계 확인에 미흡한 건 그래도 용서할 만하다. 아예 사실을 조작하는 언론도 있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마약에 빠진 가난한 흑인소년의 사연을 탁월한 취재력과 유려한 필치로 전달한 '지미의 세계'란 제목의 기사로 1981년 최고 영예인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후 이 기사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자, 기사를 쓴 재닛 쿡을 해고하고 독자들에게 사죄했다. 


2003년 뉴욕타임스는 약 3년반동안 36건의 기사에서 취재원의 말을 꾸며내거나 다른 기사를 표절한 것으로 드러난 제이슨 블레어 기자를 해고하기도 했다. 블레어는 이라크 전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부상당한 여군인 일명 '제시카 일병' 스토리를 감동적으로 전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내용의 대부분이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 및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1989년 4월 20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1면에 ‘KY’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오키나와 산호초 군락 사진을 실었다. 무분별한 환경 파괴 현장을 그대로 드러낸 이 사진으로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그러나 매일 이곳을 드나들던 오키나와 주민들은 사진 기자가 다녀간 뒤 산호 군락이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결국 KY라는 글자를 새긴 범인은 사진 기자로 밝혀졌다.


부산지역 민영방송인 KNN도 조작 논란을 겪었다. KNN 김모 기자는 부산신항 관련 리포트에서 부산항 터미널 운영사 관계자, 부산항 터미널 관계자, 정부 관계자 등의 발언을 보도했으나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음성변조해 내보낸 조작으로 밝혀졌다. KNN은 김아무개 기자에게 정직 6개월 중징계를 내렸으나 조작 사실을 공개하지 않다가 언론이 이 사실을 보도하자 시청자 사과를 했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의도를 가지고 사실을 조작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더 나쁘다. 




사람들은 점차 줄고 있는 주류 언론의 비중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아직도 대중들은 인터넷과 유튜브 상의 정보 보다는 기성 매체를 더 신뢰하는 것 같다. 그래도 일간지가 보도한 건데, 인터넷 찌라시보다는 믿을만 하다는 판단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장발장 부자와 같이 찝찝한 사태가 계속된다면 그나마 담보하고 있는 좁쌀만한 신뢰조차 잃어버릴 듯해 무서운 생각이 든다. 의혹이 제기된만큼 정부 차원에서 해당 부자에 대해 다시 조사하고 표창을 박탈하거나 해야 한다. 조작된 진실은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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