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dy Jul 25. 2019

"강남,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나도 거기(강남)에 살고 있어서 이렇게 말하는 건데, 모든 국민이 강남에서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는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현 주중대사) 워딩은 본래 대중이 체감하고 있는 그런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뭘 해도 안 잡히는 서울 집값의 책임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부동산 욕망에 넘기는 작업은 매우 쉽고 그럴싸하다. 투기세력과 떴다방, 갭투자로만 공을 넘기기엔 부동산 시장의 이상기류가 참 높고 드세다.


강남 집값이 오르고 주변 아파트 값이 널뛰며 종국에는 강북 집값까지 요동치는 현상은 분명 기이하다. 지방은 미분양이 폭증하는데 서울은 없어서 못 파는 거래절벽이라니. 투기꾼만 책망하기엔 교육 인프라와 문화, 직장, 삶이 응축된 서울을 향한 실수요가 가득하다. 그러니까 6/19 대책, 8/2대책까지 쏟아냈지만 집값은 더 미쳐가고, 한심한 국토부 장관은 임대주택자 등록을 하는 다주택자에게 혜택을 준다고 했다가 또 철회하고, 기획재정부는 이를 부인하는 금치산적인 행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솔직히 난 방법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정부는 말을 바꾸는거 말고 뭐라도 좀 더 실효성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라고 정부가 있는 것이고, 내가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것이니까.


답답함이야 모를리 없다지만, 부동산 정책의 최고 수장으로서 장 실장이 실언 혹은 망언을 내뱉는 모습은 딱하기 그지없다. 장 실장이 사는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 아파트는 공시지가만 20억원이 넘고,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는 30억원에 이른다. 본인은 좋은 곳에 살면서 애꿎은 국민의 욕망을 탓하는 모양새는 차암 지지율 40%대로 떨어진 이번 정권의 향방을 짐작케 한다. 청와대 출입하는 2진 바닥 기자로서 어차피 연락 어려운 높으신 분들의 눈치를 봐야하지만 팩트인 걸 도대체 어쩌라고, 하게 된다.


매월 박히는 월급을 두고 내가 몇년을 모아야 서울에 집을 살수 있을까 계산이 잘 되지 않는다. 대출을 끼든, 상속을 받았든 주변인들은 몇 억짜리 아파트를 잘도 사는데 그들의 부동산 논평을 듣고있을라치면 참 내 자신이 초라하기 이를데 없다. 어차피 집도 못살거면 얼마 안되는 월급도 펑펑 쓰게 된다. 집값은 당연히 오르니까 빚을 내서 집을 사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부부금슬이 좋아진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횡행한다. 어찌됐든 서민이나 중산층이나 부자나 부동산 없이는 살수 없는 지경이 됐다. 어떻게든 집값을 잡고, 실수요자 위주의 주택시장을 마련해야 할 정부가, 그 정부의 최고 책임자가 국민의 욕망만을 저격하는 순간 우리가 정부를 믿고 따를 이유가 사라진다. 지금 상황이 딱 그렇다.



나는 장하성 논란을 보면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떠올렸다. 그는 2012년 3월 2일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 모두가 용이 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며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썼다. 그는 올해 기준으로 53억2844만원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조 수석이 보유한 방배동 삼익아파트의 몸값은 나날이 오름새다.


본인이 잘나서, 열심히 벌어서 산 걸 누가 뭐라고 하겠나. 다만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국민을 대표하는 청와대의 초엘리트들이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워딩을 하고, 라디오에서 웃으면서 "내가 살아보니까 아는데" 따위의 MB스러운 농담을 하며 국민에게 박탈감을 안겨준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용들이 자꾸 붕어, 개구리, 가재 탓을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이 프레임 하에선 폐업한 영세 자영업자도 소득주도성장을 제대로 이해못한 적폐세력이 된다. 자영업비서관 만들면 뭐하나, 잘못을 인정못하는 그 똥고집이 그대로인걸. 대통령 지지율이 83%까지 치솟았다고 발표했던 조사기관이 49%라는 수치를 제시하자 "조작됐다" "기레기 탓이다"라고 자위하는 게 과연 도움이 될까. 정책을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 주변 의견을 묵살하는 압제로 변질될 때마다 나는 소설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떠올린다. 소록도 환자를 위한다던 명분으로 모든 걸 망쳐버린 조백헌 대령의 망령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발장 부자(父子)와 조작된 진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