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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Aug 31. 2019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을 읽고


사실 글쓰기 책을 별로 안 좋아한다. 별 내용이 없고, 기교에만 충실하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려면 다독 다작 다상량 3가지에 충실해야 한다고 한다. 누가 모르나. 실천을 안 해서 그렇지. 난 항상 남들과 다른 생각과 경험이 있으면 글을 길게 쓰든, 문장이 중언부언이든 상관없다고 본다. 글은 컨텐츠가 핵심이다. 문장과 전달력은 그 다음이다. 기자 시험을 준비하고, 또 기자가 된 이후로도 무수히 많은 글쓰기 책을 봤지만 모두가 똑같이 헛스러운 부분에 목숨을 걸고 있었다. 자신만의 유니크한 인생 경험을 쌓고, 그곳에서 우러난 유니크한 사고방식이 녹아있는 그런 글이 가장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생 때 이를 뼈저리게 느낀 적이 있다. 우정사업본부에서 매년 편지쓰기 공모전을 하는데 당시 스펙 쌓기에 혈안이었던 나도 참가했다. 부모님 이야기를 나름 절절하게 썼다고 생각했는데 떨어졌다. 누가 대상을 받았는지 보니까 고개가 끄덕여졌다. 남편과 사별하고 시어머니를 30여년간 모신 며느리의 글이었다. 때로는 웬수처럼, 또 때로는 모녀처럼 지내온 30여년간의 눈물과 또 정의 세월이 투박한 문장에 실려 있었다. 단문도 아니었고 주술호응도 자주 틀렸지만 펑펑 울었다. 그만큼 감동이었다. 사람의 삶이 가감없이 녹아있는 글은 좋은 글이다. 문장 테크닉은 그 다음이다.


4년전 페이스북에서 송해 선생님 관련 글을 읽고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이런 구절이 있었다.




"Mc허참이 송해 아들이 트럭에 치여 죽은것을 목격했다. 주변 목격자들 증언을 종합하면 뺑소니 트럭 운전자를 찾을 수 있었지만 포기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때서야 눈물을 터뜨리며 "트럭모는 사람을 찾아 죄를 물어면 그 가족은 무슨수로 살겠어. 악연을 잡기가 싫어요"라고 했다."


"전국노래 자랑이 우리의 평균적 모습이란게 싫었다. 그러나 2013년 5월 창녕 노래자랑에 송해가 월남 맹호부대 위문공연때 송해와 찍은 사진을 들고 나온 정기세병장 할배가 "해운대 엘레지"를 부르는데 박자가 불안하자 심사위원이 땡을 두번이나 쳤지만 송해는 그것을 무시하고 정기세씨와 그 노래를 끝까지 완창했다. 내 판단이 부끄럽고 변경되는 순간이었다. 악의 전쟁터에서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총탄에, 가족과는 생이별을 한 그였기에 아들의 죽음마저 혼자 통곡하며 트럭기사를 놓아줄 수 있을거라는 어줍잖은 상상만 할 뿐이다."


"송해는 코메디언이다. 어떤 권위와 엄숙주의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송해는 전국노래자랑 녹화전에 PD와 작가랑 군수와 저녁을 하며 그 지역에 대한 정보를 듣는다. 녹화당일 군수가 올라가 인사말도 하고 노래도 한 소절한다. 물론 이것은 편집되어 방송에는 나가지 않는다. 근데 어느 군수가 군수체면에 방정맞게 노래를 부를 수 없다 하자 송해는 싸늘하게 저녁자리를 일찍 파하고 "저사람 아직 덜 부서졌어, 군민이 없는 군수가 어디있어" 결국 그 싸구려 군수를 송해는 무데에 올리지 않았다."


"한번은 녹화들어가는 순간 군청 직원이 프라스틱 의자 몇개를 무대 제일 앞자리에 놓자 송해가 그 이유를 묻는다. "네, 이 지역 국회의원과 군수님, 군의장 자리를 만들려고요" 송해는 마이크를 돌리고 서슬퍼렇게 호통을 쳤고 당황한 공무원들은 의자를 치웠다. 대중의 입장에서 송해의 이런 행동은 위계의 해제이고 놀이의 쾌락이다. 한편 이런 것이 시민운동이고 정치운동이면 얼마나 신날까란 생각도 해본다."




중간중간 비문도 있고 단어도 몇개는 좀 어색하고, 주술 호응이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문장도 엄청 길지만 단숨에 읽었다. 송해라는 사람에 대해 몰랐던 내용이 전달되면서 마음 한편이 시렸다. 이런게 좋은 글이다. 좋은 글은 테크닉이 아니다. 컨텐츠다.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5월 책을 낸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다. 한 청와대 비서관이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고맙게도 내 이름으로 책을 받아줬다. 읽고 연심히 연습해서 좋은 기자가 되라는 뜻이리라. 사실 책을 보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글쓰기 습관과 지론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 좋았다. 오히려 그런 내용이 적어서 아쉬웠다. 또 당시에는 청와대 참모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언론사에 칼럼을 기고할 수 있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기자실이 폐쇄되고 청와대 차원의 소식지를 발행하던 시절이라 이해가 갔다. 아무튼 이 두 가지 사실을 제외하면 기존의 글쓰기 책과 크게 다를바 없는 문장론을 설파하고 있는데, 대충 정리하면 이 정도 되겠다.



1. 문장은 쉽게 써야 한다.

2. 문장은 되도록 짧게 써야 한다.

3. 중복되는 표현이나 구절, 단어 사용은 삼가자. 

4. 주어는 짧게, 수식어구는 최소화 하자.

5. 서론은 짧게 치고 나가자.

6. 예화나 예시는 적절히 쓰되 최소화 하자.

7. 뻔하고 빤한 내용의 문장은 피하자. 남들과 다른 내용을 개발해야 한다.

8. 한 문장에서 동일한 단어를 반복하지 않는다.

9. ~을 ~를 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면 흐름이 끊긴다. 간명하게 끊어줘야 한다.

10. '대구법'을 적절히 써 주자.

11. 상상력을 담은 문장을 쓰자.

12. 글을 쓸때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쓰자. 그래야 독자가 눈앞에서 보듯 글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13. 진솔한 본인만의 생각을 담자. 

14. 글을 쓰기 위해서는 취재를 해야 한다. 취재는 때로 귀찮음과 쪽팔림을 동반한다.


이런 테크닉을 담은 책이었다. 예시와 함께 풍부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 읽기 쉬웠다. 어차피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계속 쓰고 고치고 해야 실력을 늘어날 것이다.


중간중간 윤태영 작가의 고뇌와 마음이 담겨 있어 마음이 짠했다. 격식을 중시하지 않던 소탈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연설문을 그대로 읽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돌발적으로 밝혔다고 한다. 특히 겹치는 내용을 싫어해서 윤태영 작가가 골격을 잡은 연설문을 아예 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 답다고 생각했다. 비록 실수가 있더라도, 남들과 다르게 자신만의 언어로 무언가를 쓰고 생각을 전달하려는 노력이 좋은 글쓰기의 시작인 것 같다.


사실 윤태영 작가의 이번 책은 그다지 크게 볼 만한 내용은 없다. 다만 노 전대통령의 비극과 그를 가까이서 모셨던 윤 작가의 유니크한 경험, 이를 통해 느꼈던 그의 생각이야말로 좋은 컨텐츠가 아닐까 싶다. 좋은 글을 위해 나도 남들이 못하는 그런 경험과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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