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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Dec 18. 2019

젠더와 양성평등

젠더의 역사 독후감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1931년 뉴기니아에 살고 있는 세 부족의 남성과 여성 특징에 대해 조사했다. 첫째 마을인 아라페시 부족 사람들은 남녀 모두 여성적인 인성을 가졌다. 여성은 물론 남자들도 온순하고 협동심이 강했으며 타인의 요구를 잘 수용하는 편이었다.      


둘째 마을인 먼더거머 사람들은 이와 반대로 남녀 모두 무자비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였다. 자애롭고 모성적인 것을 무시하는 반면 강하고 독립적인 태도를 강조했다. 세 번째 부족 챔불리에서는 성(섹스)에 대한 남녀 차이가 서구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였다. 여자는 지배적이고 객관적이며 통솔권을 가진 반면 남자는 책임감이 약하고 정서적으로 의존적이었다. 남자들은 예술적이며 아름다움을 추구했으며 반대로 여자는 경영을 잘하는 존재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젠더의 역사’의 저자 메리 E. 위스너-행크스는 학계에 대부분 알려져 있는 역사가 보편적인 역사가 아닌, 남성 위주의 특수한 역사라고 말한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지역에서 젠더 구조는 일정치 않고 복잡하며 다양하게 나타난다. 저자는 가족과 경제생활로 시작해 섹슈얼리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젠더가 어떻게 이분법적인 형태를 띠고 나타났으며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미쳤는지 각종 문헌과 사례를 바탕으로 기술하고 있다.      


1. 가족 – 인류의 가장 오래된 사회조직체이며 아이가 마주하는 첫 번째 사회조직인 가족집단 안에서도 젠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가족의 구조와 기능, 개념은 문화권에 따라 상당히 다양하고, 각 문화권 안에서도 사회 집단마다 차이가 있다. 차이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통해 가족에 관한 일정한 일반화를 도출할 수 있다. 양상과 구조는 아주 다양하지만 모든 집단은 법 규정, 종교적 훈계, 금기, 교육 또는 다른 수단에 의해 강화되는 적절한 가족생활에 관한 규범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개인은 이러한 규범을 지속시키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가족에 관한 일정한 일반화를 도출할 수 있는 근거이다. 가족이 일정한 사회 양식을 따르려고 하는 경향을 통해 저자는 가족사를 결혼의 평균 연령, 평균 자녀수와 빈도, 재혼율, 상속의 형태, 이혼율 등과 같은 도표나 수치로 계량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통계자료는 가족생활이 젠더화되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아이들은 남자나 여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가족 구성원 가운데 나이 든 사람한테서 배웠으며, 지금도 배우고 있다. 아이들은 젠더 차이를 가족 안에서 처음으로 경험했다. 


가족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사회조직체이며, 아이가 무자하는 첫 번째 사회조직이다. 때문에 남성이나 여성 모두 가족 내에서 젠더에 관해 학습한 내용을 바꾸기란 무엇보다도 어렵다. 책에서는 전 지역, 문화권에 걸쳐서 가족 내에서 여성이 어떤 위치였고 어떤 생활을 해왔는지를 소개한다. 현재 가족의 구조와 기능은 과거보다 다양하지는 않지만 늘어난 이동성과 통신 수단의 발달을 고려해볼 때 더 많은 지역에서 더 광범위하게 다양성을 경험하고 있다. 가정과 친족은 단순히 유전자가 관련된 문제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결정되며, 개인과 집단에 의해 의미가 주어진다. 젠더 차이는 역사를 통해 가족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며, 가정에서의 젠더 차이는 직장이나 투표소와 같은 다른 생활 영역에서 나타난 젠더 차이보다 변화에 더 저항적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이는 경제적, 정치적 격변에도 건재했고, 지금까지도 기능하고 있다. 특히 가사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여성이 담당하고 있고, 이 구조는 남녀가 비교적 평등하다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변함이 없었다.       


2. 관념사상법률 – 대부분의 문화에는 여성과 남성에 관한 관념이 표현되어 있다. 젠더 관념이 규범과 확신으로, 또 규칙과 법률로 고착화되는 과정은 문화권마다 아주 다르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경험이 규범적이었다는 사실은 여성을 보는 방식을 왜곡시켰다. 여기에 신체에 기반을 둔 젠더 차이에 관한 관념은 유럽 국가들이 식민제국을 건설하게 되면서 인종 차이에 관한 관념과 뒤섞이게 됐다. 자연히 세계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남성/여성은 본질적인 이분법으로 이해된다. 여기에는 가정과 가정 너머의 세계, 자연/문화(여성이 좀 더 자연에 가까움)가 포함된다. 청결과 불순 관념도 마찬가지다. 여성은 생리와 임신기간, 출산 이후에 있어서 불결한 것으로 간주됐다. 또한 이는 명예와 불명예, 영광과 수치라는 이분법과 긴밀히 연관된다. 남성의 명예는 일반적으로 일정한 형태의 적극적인 행동과 관련된 반면 여성의 명예는 소극적 활동과 연관되어 왔다. 법률의 측면에서도 여성은 종속된 관계로 규정된다. 모성은 여성을 직장이란 테두리 바깥에 머물게 했으며, 가족사에만 집중해 현모양처가 되도록 촉구하는데 이용되었다. 


따라서 대다수 문화에서는 집단과 기관에서 일정한 권위가 있는 자리는 아버지인 남성에게만 열려 있었다. 중국의 전족 관습도 남성의 성적 접근을 막고 여성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정당화되는 측면이 강했다. 또한 많은 지역에서 여성은 법률이나 관습에 의해 가정의 일정 거처에 격리되거나 몸에 베일을 둘러야만 했다. 그러나 이는 절대 다수의 문화권에서 노동력의 반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세계에서 기록된 법률의 대부분이 여성에게 법적인 지위를 부여하지 않고 심지어는 일종의 재산으로 취급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는 19세기 들어 많은 국가에서 개정되었다. 이제 페미니즘이 등장하며 여성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1979년 국제연합의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권리의 평등에 대한 원칙과 인간의 존엄성 존중’에 대한 위반이라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녀의 평등을 선언한 법률은 이론적으로는 지지받고 있지만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3. 종교 – 세계의 종교들은 초자연적인 존재와 신에 대한 개념, 신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극히 다양하다. 그렇지만 이들은 모두 젠더화되어 있다. 종교들은 남성과 여성이 된다는 것의 의미와 차이점을 만들어내고, 이를 지지한다. 전통적인 종교들은 젠더라는 관점에서 일정한 유사성을 보여준다. 영혼과 의사소통하는 능력은 정식 교육이나 위계상의 지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능력으로 간주됐다. 유교에서는 하늘과 땅의 관계를 닮은 위계적이고 질서정연한 인간관계를 가장 적절하다고 봤다. 흔히 여성의 역할은 종속하고 복종하도록 기대됐다. 이는 여성이 따라야 하는 ‘삼종지도’로 성문화 됐다. 그리스도교의 경우, 수녀원 밖의 그리스도교 관리는 모두 남성이 도맡았다. 그 결과 모든 구성원이 남성인 성직자는 어떤 여성도 가진 적이 없는 권위를 지니게 됐다.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종교개혁과 비슷한 시기에 유럽의 그리스도교도들은 그들 가운데에 있는 마녀에 대해 경각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유럽을 전제로 할 때 1500년대 이래 마법과 관련해 심문받고 처형된 사람 중 80%가 여성이었다. 이슬람교의 경우에도 남자는 종교적인 의무를 사원인 모스크나 다른 공동 모임에서 공개적으로 수행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여성은 생리나 출산 때문에 불결하지 않은 한 모스크에 따로 마련된 공간에 출입할 수는 있었지만, 종교적인 의무는 집에서 이행해야 했다. 세계 대부분의 무슬림 여성은 남성의 간섭을 받지 않고 집 밖에서 일을 하거나 돌아다니기 위한 방편으로 베일을 쓰거나 온몸을 덮는 다른 형태의 옷을 입는다. 이들은 무슬림 복장을 자신들에게 힘을 주는 수단이라고 여기고 있다. 젠더와 관련을 가진 여타의 종교적 상징과 함께 베일도 개인에 따라, 정치적인 환경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4. 교육과 문화 – 이집트의 경우 여성들은 관료나 행정가, 서기라는 지위를 차지할 수 없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딸들을 교육시키는 데 비용을 지불하려고 하지 않았다. 읽기가 점차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기본 수단이 되면서 일반적으로 여성은 정식 학교교육에서 배제됐다. 여성에게는 입학에 필요한 자질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 접근성의 차이 때문에 남성들의 그림이나 시, 조각, 철학, 작곡 등의 문화 작품은 언제나 여성들의 작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았다. 동시에 남성이 만들어낸 예술과 문학의 형태와 스타일은 여성이 만들어낸 것보다 뛰어나거나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판단됐다. 르네상스 시기에도 여성들은 아마추어의 선을 넘어 전문가가 되거나 기능과의 경계선을 가로질러 예술을 창조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여성은 예술가나 음악가들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었으며, 종교적이지 않은 그 어떤 저작의 출판도 격려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기에 만들어진 교육과 문화에서의 젠더 양식은 유럽인과 함께 이들이 세운 식민지로 유입됐다. 대다수의 식민지와 비산업화된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아주 소수만이 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여성을 위한 교육 기회는 도시 엘리트의 아주 적은 부분에만 한정됐다. 


탈레반이 이끄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직업여성은 일을 그만둬야 했었다. 그러나 20세기들어 세계 곳곳에서 건설된 공산주의 정부는 교육 기회의 평등을 내세웠다. 최근의 출판 통계, 학교 등록, 예술과 음악의 생산, 여러 통계 수치에 의해 측정되듯이 여성과 남성에게 주어진 기회는 더욱 평등해지고 있다. 그러나 젠더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1993년 미국 대학 시간강사 중 50%가 넘는 수가 여성인 반면, 전임 교수 중에는 11%만이 여성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영화배우들, 2000년에 영화 한 편당 2천만 달러가 넘는 출연료를 받은 이들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었다. 스포츠의 경우 젠더 불평등은 더욱 크게 나타난다. 이제 컴퓨터와 SNS로 대표되는 새로운 정보기술이 어떻게 젠더를 형성해 갈지에 관해서는 이견이 많다. 앞으로의 추세를 지켜봐야 할 터다.     

결론 – 젠더 불평등에서 벗어나자     

물론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격동의 역사 속에서 여성이 항상 차별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여성을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인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남성의 필요에 의한 눈가림에 불과했다. 21세기라고 다를 바 없다. 한국의 경우에도 행정고시, 사법고시, 외무고시, 공인회계사 시험에서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이는 공정한 시험과 절차의 문제다. 기업의 경우 여성 임원의 수는 극히 적다. 삼성을 필두로 여성 임원을 강제적으로 확충하려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은 남성에 비해 승진이 어렵다.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의 폐해다. 우리는 여성의 외모와 나이, 몸매가 개인의 능력에 우선하는 전수된 젠더 불평등의 사회에 살고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개인의 자각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해결책도 시급해 보인다. IT나 첨단기술 등 하드웨어만 발전했다고 사회의 진보를 완벽하게 논할 수는 없다. 우리의 마인드나 사고방식도 그에 맞게 변해야만 한다. 우리 자신이 소소한 일상 중에 여전히 “여자는 안돼”라든지, “여자가 저런 일을?”, “감히 여자가...”라는 생각을 무심코 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볼 일이다.      


나 같은 경우만 해도 여대 ROTC에 관한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여성은 군 전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좋은 환경만을 원하는 존재인 동시에 남성에 대한 역차별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체적 차이는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마인드부터가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젠더의 역사’를 읽고 나서 “나조차도 수천년전부터 이어내려온 편협한 사고로 세상을 보는구나” 하는 반성을 했다. 만들어진 젠더를 선천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즉시 이해와 관용은 없어진다. 이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점점 여성사에 주목하는 연구들이 나오는 목적은 결국 불평등한 남녀 간의 관계를 평등한 관계로 이끌어가고자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 억압적인 구조가 무너지는 것은 곧 남성들이 고정된 젠더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 못지않게 남성 역시 기존의 젠더 구조에서 답답함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가족을 혼자 부양해야한다는 막중한 책임감, 감정을 쉽게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범 등 남성 역시 자유롭지는 않았다.      


물론 여성에 대한 맹목적 배려는 역차별을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유교문화권 내에서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하던 한국 사회에서 다시 한번 여성을 독립적인 주체로 규정하려는 캠페인이 필요해 보인다. 한쪽만 보는 시각으로는 21세기 트렌드인 융합과 통섭은 요원한 바람일 뿐이다. 여성을 부드럽고, 조화로운 존재로 규정하기보다 있는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남녀간 서로 장점과 단점을 보완해가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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