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갇힌 채 무한의 전장을 맴도는 남자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

by 작가 전우형


기억과 경험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살아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런 상황에 놓인 한 사람의 감정 변화를 그린 영화가 있다. 바로 ‘엣지 오브 투모로우’다. 이 영화에는 화려한 액션과 SF 요소도 있지만, 내일로 넘어가는 경계선을 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오늘의 사투를 벌여야만 하는 주인공이 있다.


주인공(톰 크루즈)은 ‘알파’라 불리는 특수한 외계인을 처치하는 과정에서 하면서 우연히 그들의 능력을 획득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 능력은 발현되는 조건이 까다로웠다. 원할 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었을 때만 발휘되는 특수한 것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때까지 경험한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점이었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현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죽음과 삶을 반복하면서 무한의 오늘을 살아가게 된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주인공. 하지만 어김없이 자신이 경험한 비극적 결말이 그대로 되풀이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적의 매복에 걸려 아군이 모두 전멸하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자신이 이미 겪은 내용을 알리려고 하는 주인공. 하지만 그가 도망치기 위해 쇼를 한다며 오히려 미치광이 취급을 하고 믿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공은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죽음을 맞이하는 무한궤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달라져보기로 한다. 하지만 미래에 벌어지는 일들을 아무리 세밀하게 알고 있어도 혼자의 힘만으로 전황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다. 주인공은 곧 절망에 빠진다.



새로운 전환점 : '전장의 암캐'와의 만남


주인공은 전장에서 한 여전사의 죽음을 목격한다. 이전 전투에서 외계인의 점령지를 탈환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워 '베르덩의 천사'로 불리던, '전장의 암캐'(에밀리 블런트)였다. 다음 전투에서 우연히 그녀가 똑같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예상한 주인공은 기지를 발휘해 그녀를 구하지만, 그녀는 이 한마디만을 남긴 채 또 다른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다시 살아나면 나를 찾아와.”


다시 살아난 주인공. 언제나 눈을 떴던 그 장면이다. 이제는 새롭지도 않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내뱉은 여전사의 말이 마음에 걸린다. ‘다시 살아나면 자기를 찾아오라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 뭔가를 아는 듯한 그녀의 말이 떠오른다. 주인공은 여전사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시간을 되돌리는 외계인의 능력을 얻은 사람이 자신만이 아니었다는 것. 그녀는 그 능력을 발휘해서 베르덩에서의 기적적인 승리를 이끌었지만 그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고 지금은 그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것. 이 능력을 가진 사람은 절대 부상당해서는 안되며, 만약 부상을 당한다면 치료하지 않고 완전히 죽어야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외계인은 이 능력을 통해 이미 우리의 작전을 모두 꿰뚫고 있으며 주인공에게 빼앗긴 능력을 회수하러 올 것이라는 것 등을 알게 된다.


두 명은 머리를 맞대고 시뮬레이션 같은 실제 상황을 해결해 나가며 조금씩 더 전진해가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어떤 지점 이후로는 넘어갈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주인공은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며 더 진행하기를 포기하려고 한다. 그것은 단지 전투에 대한 피로감 뿐만은 아니었다. 그는 어느새 사랑하게 된 그 여인의 '죽음'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녀의 죽음을 바라보는 것이 도대체 몇 번째일까?’


괴로움과 절망감에 휩싸인 주인공은 극심한 심경의 변화를 느낀다. 다른 방법을 모색해보기로 한다. 다시 눈을 뜬 주인공은 여전사를 찾아가지 않고, 부대에서 탈출해 전장으로부터 벗어나 보려고도 해보지만, 집요한 외계인들은 주인공이 어디에 있든지 결국 찾아와서 죽여버리고 만다.


또다시 깨어난 주인공. 도망칠 수도 피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표정과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말과 행동이 달라지고 더 이상 타인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 노력들이 미래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무겁게 굳은 얼굴을 한 주인공은 철저히 감정을 배제한 채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홀로 전진한다. 적의 우두머리인 ‘오메가’의 위치에 도착한 주인공. 하지만 그마저도 그를 유인해 유출된 힘을 회수하려는 외계인들의 계략이었음을 깨닫고 가까스로 시간을 되돌리는데 성공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음을 다시금 깨달은 주인공. 또 다른 실마리를 찾아가며 ‘오메가’의 위치를 찾는 여정을 계속하지만 그중 사고가 발생하고 만다. 상처를 입고 쓰러진 사이 타인의 피를 수혈받게 된 것. 이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 주인공은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생명으로 최후의 전투에 임한다.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의 '마지막' 사투는 더욱 웅장하고 절실하다. 우여곡절 끝에 전투는 피날레를 맞이하고 영화는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주인공의 감정 변화로 이어지는 이 영화의 '플롯'


영화에서 드러나는 주인공의 감정 변화는 매우 드라마틱 하다. 처음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알게 되고 현재를 부정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이 지점에서 주인공의 태도는 180도 변한다. 이제는 미래 상황을 주위 사람에게 알리고, 최악의 결과를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하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이 결국 수포로 돌아가자 주인공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정해진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시점에서 ‘무력감’ ‘회의감’을 느끼며, 그가 놓지 않고 있던 타인에 대한 ‘관심’ ‘연민’ 또한 내려놓는다.


'전장의 암캐'를 만나고, 그녀와 함께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는 동안 발생하는 주인공의 심경 변화 또한 매우 두드러진다. 그녀와의 전투가 길어질수록, 몇 번째인지도 모를 만큼 '같은 상황'을 겪으면서도, 주인공은 그녀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었고,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었으며, 더 이상 그 모습을 바라보고 싶지 않은 '절실함'이었다. 동질감과 사랑, 유대감이 교차하는 묘한 감정은 또 다른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이후에 다시 그녀를 찾아가지 않기로 결심한 그의 선택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이러한 주인공의 심경 변화는 우리가 많은 사건을 겪으며 조금씩 초심이 허물어져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사고방식과 태도가 변해가는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심리적 전환점'을 맞이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많은 것이 닮아 있다. 사랑을 시작할 때의 마음은 얼마나 뜨거웠던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의 우리의 의지는 얼마나 결연했던가. 그 마음들은 결코 한 순간에 변하지 않는다. 모래성이 조금씩 허물어져가듯, 뜨거운 태양빛에 땅이 메말라가듯 우리의 마음에 핀 불꽃은 꽃이 시드는것처럼 서서히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학생들이 한 번쯤 떠올려봤을 간절한 이 바램은 축복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깝다는 것을 영화를 보며 깨달을 수 있었다. 때로는 죽어가는 누군가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싶은 '트라우마'를 계속해서 떠올리며 그 순간에 갇힌 채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흔히 들었던 이 말을 떠올려보게 된다.


어쩌면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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