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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

꿈은 그저 꿈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

by 작가 전우형

"꿈이 뭐니?"

"꿈? 꿈이 뭐예요?"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를 묻는 거란다."

"커서 되고 싶은 게 꿈이에요?"

"그렇지."

"저는 꼭 되고 싶은 게 있어요. 그건 바로..."




꿈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어린 시절 우리는 "꿈이 뭐야?"라는 질문을 흔히 받곤 했다. 분명 그 질문에 상투적이든 아니면 진심 어린 그것이든, 무어라 대답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돌이켜보면, 그때의 질문에 어떤 응답을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어릴 때 가졌던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보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주어진 일을 해내기에도 벅찼던 시간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살아왔던 시간들. 꿈을 이루는 건 거기에 들어갈 비용을 지불하기에 충분한, 선택받은 사람들의 전유물이라 여기며 어릴 적 꿈은 뇌리에서 사라져 갔다. 꿈이 밥 먹여주는 것은 아니니까. 생계를 위해서는 오래된 꿈 따위 포기해야 해. 움직일 수 없는 인생의 법칙처럼 여겨지던 공식이 있었다. '원래'라는 건 어차피 그때그때 바뀌어버리니까.


계획대로 흘러가는 인생은 없다고 한다. 아니, 인간이 세운 계획의 실체가 그리 완벽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파악하고 계산했다고 자신하더라도 사소한 바람에도 뿌리부터 흔들리는, 늑대의 입김에도 무너져내리는 볓짚처럼 엉성한 계획들. 하지만 그 알량한 계획조차도 없었다면 이만큼도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걸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계획을 세운다. 뒤틀릴 것을 알면서도. 그러나 원대한 계획이었든, 사소한 목표였든 간에 그 안에서 어릴 적 꿈은 어느새 배제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제와 오랜 꿈을 다시 꺼내어본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만 더할 뿐이다. 그래서 나이 들어 꿈 이야기를 하면 철없어 보인다며 말을 아낀다.


어른들은 종종 꿈꾸는 것을 스스로 포기한다. 주어진 현실을 버텨내는 것도 힘에 부친다. 꿈꾸던 삶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적막한 괴리감은 차라리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이 편할 정도로 크다. 그것을 고스란히 느끼며 살아갔다가는 현재가 보잘것 없어질 뿐 아니라 지난날들에 대한 후회가 우유 거품처럼 몽글몽글 부풀어 오른다. 가벼운 신세한탄이 무거워지지 않기 위해. 결국 어른들이 꿈을 잊어버리는 건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꿈은 이미 현실의 테두리를 벗어나 있다. 우리는 원래 어떤 꿈이든 제약 없이 상상하고 추구할 수 있었다. 꿈을 커스터마이징 하는데 존재하는 단 하나의 장벽은 스스로 만들어둔 한계다. 한계는 경험을 통해 학습되고 다듬어져 꿈 앞에 '실현 가능한'이라는 수식어를 만들어낸다. '실현 가능한 꿈' 참 재미있는 말이다. 꿈의 실현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신적 존재는 과연 누구일까?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도 없다. 수많은 예측들 중 운 좋게도 얻어걸렸을 뿐.




스티븐 킹은 소설 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 깊숙이 깃들어있는 어두운 감정들을 표면으로 끄집어낼 수 있게 되었죠. 백지 위에 분노, 증오, 좌절 따위의 감정들을 모두 쏟아낸 거예요. 스티븐 킹에게 소설 쓰기는 일종의 심리치료이자 어두운 그림자를 쫓아버리는 퇴마의식이기도 했어요. 게다가 책을 팔아 어마어마한 부를 누리게 되었으니 작가가 된 건 스티븐 킹에게 여러 모로 큰 축복이었던 셈이죠. 세상의 수많은 정신병원에는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어둠에 갇혀 고통받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기욤 뮈소, '인생은 소설이다' 중>


꿈이 그리울 때 나는 노트를 펼친다. 잔뜩 무언가를 써내려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펜이 갈 곳을 잃어버린다. 그런 날 밤이면 나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명확하게 기억나는 경우는 없다. 대개 어떤 느낌이 잔상처럼 남을 뿐. 누군가와 다퉜다거나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무언가로부터 쫓겼다거나 한없이 어디론가로 떨어지는 꿈. 분명 생생하게 느껴졌던 꿈이 눈을 뜨는 순간 로딩 에러가 일어나듯 대략적인 파일명만 남고 락이 걸려버린다. 현실에서는 꿈을 로딩할 프로그램이 없는 탓이다. 꿈은 그저 꿈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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