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형광빛이 맴도는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유영하는 함선 위에는 가냘픈 달빛만이 다소 싸늘한 새벽 바다를 촉촉하게 비추고 있었다. 유리막처럼 반짝거리는 고요 속에 잠긴 바다를 가르며 가만히 발걸음을 재촉하는 단 하나의 포말. 그렇게 조용한 새벽 바다를 말없이 거닐다 보면 판타지스러운 느낌에 젖어들고 만다. 사람들은 말이 없고, 눈은 뜨고 있지만 여전히 꿈나라를 지척에 두고 있다. 새벽 당직은 늘 그렇게 몽롱한 가운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의 정신상태를 누군가 알아차린다면 경을 칠 노릇이지만, 다행스럽게도 눈만 잘 뜨고 앞을 바라보고 있으면 정신쯤은 안드로메다에 저당 잡혀있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속고 속이는 게임일 뿐이니까.
녹색의 바다는 2주의 항해 기간 중 하루나 이틀 정도 만날 수 있었다. 언제나 새벽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일출을 바라봐야만 했던 모닝 와치 당직자들은 새벽 3시 반이면 눈을 떠야 했다. 부스스한 머리로 급히 커피믹스를 부욱 찢어 종이컵에 털어 넣고 휘휘 돌려 저은 후 어렴풋한 커피 향을 친구 삼아 입에 달린 하품을 바닥에 질질 끌고 함교로 올라가곤 했다. 천 톤을 겨우 넘는 작은 배여서 그야말로 계단을 두 번 정도 오르면 바로 함교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참으로 그 장소로 올라가는 발걸음은 무겁고 또 무거웠다. 수면부족과 만성피로는 출동 내내 눈밑의 다크서클처럼 붙어 다녔다.
붉게 충혈된 눈, 덥수룩한 수염, 떡진 머리. 옆에서 무어라 지껄이긴 하는 것 같은데 귓전을 맴돌다 메아리처럼 사라져 버리기 일쑤였다. 말하는 내용을 받아 적기 위해 팬을 쥔 오른손은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수첩에 쓰인 글자들이 썩 의미 있어 보이진 않는다. 나 홀로 세상 무너질 걱정에 빠진 채 심각한 이야기들을 내뱉는 사람을 옆에 두고 나는 영혼 없는 인형처럼 눈만 끔뻑거릴 때가 많았다. 서로 간의 온도차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었다.
항해 중 일과에 대해서는 여러 관점이 존재했다. 나는 항해를 나왔을 때는 항해당직이 곧 정규 일과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24시간을 3직으로 나눠 각자 8시간씩 매일 항해당직을 서야 했기 때문이었고 그 사이에 각자가 해야 할 고유한 업무들을 처리하기에도 충분히 시간은 부족했으니까. 그 정도로도 이미 넘실거리는 바다 위, 끊임없이 삐그덕거리는 철판 위의 생활처럼 가혹한 환경에서는 힘에 부치는 일과였다. 하지만 생각은 다르고, 나보다 힘 있는 누군가는 당직은 당직대로 서고, 표준 일과는 또 표준 일과대로 집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 당연하지만 혹독한 오너의 지침 아래, 나를 비롯한 승조원들 중 일부는 매일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 밤 12시, 또는 새벽 1시까지 쉴틈 없는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구토가 치밀 정도로 피곤한 하루를 보내면서도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산더미였고, 도무지 그 일들은 처리되기보다 점점 더 쌓여만 가기 일쑤였다.
그 당시에는 정말이지, 느려 터진 위성통신으로 출동 중에도 공문을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사람들을 지옥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중세시대 타자기로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듯이, 천천히, 아주 처언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공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한숨인지 분노인지 모를 것이 터져 나올 때가 많았다. 결재 대기 중인 공문의 목록만 3~4페이지는 기본이었고, 한 일주일 정도 공문처리를 미뤄두기라도 했으면 조금은 덜 억울할 분량이었다. 분명 당직 올라오기 전에 결재 대기함을 비워두고 왔는데, 지친 몸을 이끌고 방에 내려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기함을 열어보면 마치 5인 가족 빨래통이 마법처럼 다시 차오르듯 새로운 공문들이 비웃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 번씩이라도 열어보고 자려면 이미 새벽이 다가올게 뻔했다. 일일이 확인하자니 잠을 못 자고, 대충 결재처리만 하자니 후환이 두렵다. 그 와중에 첨부파일은 또 얼마나 용량이 큰지 클릭하고 한참을 기다려도 몹쓸 모래시계는 돌아가기만 할 뿐 사라질 줄을 몰랐다.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클릭하곤 책을 보기 시작했다. 클릭 한 번에 책 1page. 그것이 공식이었다.
가끔은 짜증도 치솟았다. 대체 왜 이렇게 몸이 피곤한 걸까? 좀 덜 피곤했으면 좋겠는데 마음처럼은 따라와 주지 않고, 나중에는 성질나서 출동 중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내 상태를 좀 이해해보기 위해 써보기도 했는데, 써보고 나서는 더 이상 자책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스스로 납득하고 말았던 것...
출동 중 하루 일과는 대략 이런 식이 었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눈을 떠서 4시간 동안 아픈 다리와 허리를 부여잡고 항해당직을 서고 내려오면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대충 아침식사를 흡입하고 공문과 메일을 확인했고, 특별하거나 급해 보이는 것만 처리하는데도 이미 오전 9시가 넘어갔다. 9시 반부터는 10시에 있을 브리핑 준비를 확인해야 했고 부서장들 보고사항이 무엇이 있는지 대충이라도 들어보고 교통정리를 해주어야 했다. 10시에 오너를 모시고 회의를 시작하면 대략 30분 정도가 소요되었고, 이런저런 지시사항들을 정리하고 나면 10시 45분부터 T/W 훈련이 시작되었다. 전술평가관 역할을 하느라 상황처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오전 11시 반. 점심식사 준비를 확인해야 했고 11시 45분부터 점심 사관 식사가 시작되었다. 억지로 웃고 시간을 때우다 보면 12시 반. 이미 이때쯤 되면 미칠듯한 졸림에 저절로 눈이 감긴다. 아직 갈 길이 먼 것은 알지만 나도 모르게 30분 정도 침을 질질 흘리며 엎어져 있다 보면 야속하게도 어느새 오후 일과 시작시간이 되어버린다. 오후 일과정렬에 이어서 간부교육, 전술토의, 그리고 이런저런 회의나 위원회들에 참가하다 보면 오후 시간은 순삭 된다. 그 사이에도 틈틈이 찾아와 힘든 일을 털어놓거나 고민거리를 해결해달라는 말들을 들어주다 보면 어느덧 오후 3시 반... 젠장.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도 못했는데 또 4시간 동안 항해당직을 서러 함교에 망부석이 되어야 한다. 이 와중에 IP전화로 누군가 나를 찾는다고 연락을 받기도 한다. 받아보니 왜 메일 확인을 안 하냐는 독촉 전화다. 빨리 자료 구해서 보내라고. 듣다가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는다. 육상에서 몸도 마음도 편하게 지내는 것들이 뭐가 급하다고!! 그렇게 아픈 발바닥과 무릎을 부여잡고 다시 내려오면 이미 밤 8시다. 눈을 뜬 지 이미 16시간이 지난 것이다. 이미 피로도가 극에 달해 신경은 날카롭고 머리는 무겁고 뇌 정지 상태가 오지만 어쩌겠는가. 처리해야 할 일은 산더민데. 뭐가 그렇게 급한지. 세상이 무너질 일인지 모를 [긴급] 딱지가 붙은 메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또 몇 시간이 훌쩍 흐른다.
이제 급한 건 처리했나 싶어 잠을 들려고 하니, 책상 한쪽에 밀어둔 검토 문건들이 보인다. 저거 오늘까지는 검토해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하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뒤적거려보지만 도저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똑똑한 후배들이 알아서 잘 만들었겠지' 갑자기 평소에 믿지 않던 후배들을 마음대로 믿어버리며 대충 싸인을 휘갈긴다. 알고 보니 오탈자 투성이어서 다음 날 오너에게 박살이 나기 일쑤였지만, 그것도 한두 시간도 못 자고 없는 시간 쪼개서 겨우 만들었다고, 내가 잘 검토해줄 거라 믿고 올린 거라는 울상이 된 후배를 보며 그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녀석들 사정이야 빤하니까... 그 정도로 우린 시간도, 마음도, 체력도 여유가 없었다.
이렇게 루틴한 하루 일과조차도 숨이 차도록 버거웠다. 문제는 회복할 시간이 너무 없다는 것이었지만, 그나마 이렇게 특별한 일이라도 없는 날은 양반이었다. 대부분의 하루는 이 외에 더 골치 아픈 일들이 끼어들기 마련이었으므로. 출동 첫 주는 그래도 버틸만했다. 밤샘근무도 하루 이틀은 이 악물고 버틸만하니까. 입에서는 욕이 나오고 수시로 구역질은 나지만 그래도 쓰러질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1주일쯤 보내고 나면 정말이지 머리가 멍하고 잠을 자도 잔 것 같지도 않고, 온몸이 쇠망치로 맞은 듯 아프고 무거워진다. 그래도 며칠만 버티면 입항이라는 생각으로 참아본다. 겨우 3~4일밖에 안 되는 입항기간 중에도 훈련, 검열, 평가 등이 빠듯하게 잡혀있지만 그래도 그때는 밤에 잠이라도 잘 수 있을 테니까. 그걸로 위안을 삼았던 것이다.
사실 당시의 오너가 특히 미웠거나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당연히 해야 할 걸 다 챙기자니 숨이 턱턱 막혀버리고 말았을 뿐.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건 말건 결승점까지 달려가야 하는 것은 맞으니 할 말은 없었다. 변명할 거리조차 없다는 것이 더 짜증이 치솟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의무로 명시된 것을 하라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다만 어떤 규정들은 지나치게 강화되어 있어서 단순히 그것들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의 피를 말릴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숨이 막히는 것이 정말 숨이 차서였는지, 아니면 도무지 틈이라곤 없는 하루 일과 때문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단추를 끝까지 채워야만 한다는 일상의 강박이 생각보다 무서웠음은 분명했다.
갑자기 왜 예전의 숨 가빴던 날들이 떠올랐을까? 그렇게 몸도 마음도 함께 망가진 끝에 해군 장교 생활도 13년 만에 접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그때가 그리워지는 이유는 그 엄혹한 생활 속에서도 사소한 낭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를 위로해주었던 건 사람이 아니라 바다였다. 그것도 조용히, 묵묵히 나의 넋두리를 들어주던 새벽 바다. 그 위를 수놓던 가느다란 달빛과 새벽의 여명,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반짝임을 더했던 수많은 별들, 때때로 초록빛으로 물들였던 이질적인 정도의 황홀했던 바다의 풍경이 미칠듯한 피로감으로부터 잠깐이나마 나를 탈출시켜주곤 했다. 사람에게서 얻지 못했던 위안을 내게 주었던 바다. 오늘의 의미 없는 회상은 그 바다에 대한 기억이 갑작스럽게 기억 속 깊은 곳에서 솟아올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날의 피로감은 그립지 않지만, 그날의 바다는 지극히 아름다웠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