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마음자세는 현재에 집중하는 것일지도
호주머니에 왼손을 꽂아 넣고 오른손으로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검은색 가죽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허벅지 대각선으로 길게 둘러매고 오른손 손목에는 연두색 종이가방 하나가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다. 횡단보도 앞에서 잠시 서성거리던 그는 신호가 바뀌자마자 빠른 속도로 길을 건너갔다. 잠시 그 사거리에는 아무런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또 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검은색 코트를 입고 일회용 비닐우산을 오른손에 거머쥔 그는 이번에는 주위를 살피더니 보행신호를 기다리지 않고 무단횡단을 한다. 간혹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바쁜 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한다. 어느덧 그의 그림자도 시야로부터 사라져 갔다. 그 뒤쪽으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노인 한 분이 이끌리듯 걸음을 옮긴다. 강아지는 노인의 2m 정도 앞에서 목줄이 팽팽할 정도로 무언가를 찾아다니며 끊임없이 코를 킁킁거린다. 다리를 들고 곳곳에 영역표시를 하기도 한다. 어느새 길을 건너온 그 강아지는 눈앞을 휑하니 스쳐 지나가며 자신의 체취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교차로 정지선에 선 민트색 레이 한대의 운전석 파워 윈도가 내려갔다. 추운 겨울에 운전석 창문이 내려가는 이유는 대개 두 가지 경우 중 하나다. 담배꽁초를 버리거나, 침을 뱉거나. 아니나 다를까,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머리칼이 듬성듬성한 운전자가 카악 하는 소리를 내며 도로 한쪽에 걸쭉한 침을 뱉고는 사라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이곳까지 튄 것 같은 찝찝함이 느껴졌다. 운전 중에 바깥으로 손을 내밀고 담배를 피우거나, 담배꽁초를 던지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흡연자들은 대개 도로에 침도 뱉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멀찍이 검은색 롱 패딩을 걸친 갈색머리 여성이 바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보인다. 긴 머리칼을 연신 쓸어 넘기며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있다. 그 옆으로 녹색버스가 한대 지나가고 그 뒤를 이어 휠까지 올블랙으로 튜닝한 날렵한 모양의 승용차 한 대가 좌회전 신호를 받고 움직인다. 승용차가 지나간 빈자리는 하얀색 스포티지 한대가 채웠다. 그 역시 왼쪽 방향지시등을 깜빡이며 다음 신호를 기다린다.
아까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노인이 이번에는 반대편 인도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포지션이 미묘하게 바뀌어 노인이 강아지를 이끌고 달리는 모양새였다. 그럴만한 여유가 부족했는지 아니면 영역표시에 대한 욕구가 해소되어서인지 몰라도, 강아지는 그저 짤막한 네 다리를 종종거리며 주인의 뒤를 따르기만 할 뿐이었다.
카페에 앉아 사거리를 스치는 다양한 군상들을 바라보다 보면 삶의 다양한 측면들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그들의 공통점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첫 번째로 그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옷맵시나 두르고 있는 가방, 혹은 머리칼의 색깔이나 헤어스타일은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얼굴의 절반 이상은 마스크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쉼 없이 깜빡이며 무언가를 살피고 찾는 두 눈동자만 마스크 위를 동동 떠다녔다. 마스크가 얼굴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왠지 서글프게 느껴졌다.
두 번째로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쥐고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거나 직접 말을 거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가장 덜 외로워 보이는 사람들은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산책의 주도권을 두고 반려견과 실랑이라도 벌이며 교감할 수 있었으니까. 예전에 가족들이 집 안에서까지 카톡을 주고받는 장면을 보며 저건 좀 과하지 않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가까이 가서 말을 거는 것이 오히려 어색해진 느낌이다.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언택트'는 더욱 촉진되었고, 이제는 택배나 배달음식도 문 앞에 두고 문자를 남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가게에 와서 주문하는 것보다는 배달앱으로 주문하는 것이 흔해졌고, 심지어 방문포장을 하더라도 무인 주문기가 있어서 서로 간의 대화가 불필요해졌다. 이러한 변화가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를 따지기 전에, 이와 같은 변화가 인간관계의 단절로 이어질 것 같은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은 내가 '옛날'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 번째는 다들 무언가에 쫓기듯 바빠 보인다는 점이었다. 어딘가로 향하든, 아니면 어딘가로 돌아가든, 혹은 점멸되기 시작한 녹색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든, 버스를 타기 위해서든 사람들은 모두 여유롭다기보다는 조급하고 촉박해 보였다. 추운 날씨 탓이라고 하기에 너무 굳어버린 표정과, 목적한 곳만을 바라보고 종종거리는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더욱 그러했다. 무엇이 그렇게 바쁜 것일까? 아니면 그토록 바쁘지 않으면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1분 1초가 아까운 마음으로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연신 타자기에 불이 나도록 무언가를 두드리고 있는 나도 마음의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가로워야 할 토요일 오전 시간임에도 사람들은 바쁘게 어딘가를 향한다. 다리가 긴 사람도, 짧은 사람도 너도 나도 무언가에 이끌리듯 발걸음을 서두르게 된다. 시간의 공백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불안이 큰 사람이라고 한다. 그들은 과정이 오래 걸리는 것을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기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소위 멍 때리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은 불안지수가 높기로 유명하고, 만성적으로 바쁘게 살아간다. 아마도 베짱이보다는 개미에 가까울 것이다.
'건강, 행복 100세 시대'라는 광고 문구를 부착한 버스가 사거리를 스치듯 지나간다. 평균수명 80세 시대를 넘어 100세 시대가 다가온다는 예측이 줄을 잇는다. '환갑', '칠순'잔치가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60살까지 살아남은 것이 축하받을만한 일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흔하고 당연해진 까닭이다. 하지만 건강과 행복은 여전히 편차가 심해 보인다. 어지간한 병은 어지간하면 살려내는 시대가 되었기에 이제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과 아프고 골골하며 오래 사는 사람으로 나뉠 뿐 모두가 일정 수명까지는 사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노후대비'라는 단어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삶의 질이 필요하다. 적정 수준의 삶의 질은 돈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연금을 붓고 보험을 든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단칸방에서 홀로 고독사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죽은 이후에도 찾아오는 사람 한 명 없어 수십일이 지난 후 아무 상관도 없는 누군가에게 우연히 발견되는 미래는 더더욱 원치 않을 것이다. 돈이 없으면 자식들로부터 버림받고 친구도 만나지 못한다. 신체노화는 막을 수 없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일할 수 있는 직장의 종류와 수도 점차 줄어든다. 결국 아직 젊고 일할 수 있을 때 노후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가?라는 문제가 남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수준은 어느 정도가 적절할 것인가? 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런 문제들을 생각해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옛말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은 돈 이외에 건강과 체력도 있을 것이다. 젊어서 잠을 줄이고 고생해가며 스트레스 속에 생활하는 것은 어찌 보면 미래에 써야 할 건강과 체력을 미리 당겨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살면 행복과 부가 찾아올지도 모르지만, 열심히만 살다가는 현재는 과중한 스트레스로 힘들고 미래에는 몸 이곳저곳이 아파서 힘들지도 모른다. 현재에 대한 이미지에서 미래를 대비하는 주춧돌의 역할은 제외시켜줄 필요가 있다.
현재를 건강하게 살면 미래에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현재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100세 시대에도 행복감 속에 노년을 맞이할 수 있다. 결국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혀야만 한다는 사고방식은 현재도 미래도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만든다. 미래에 건강하고 행복하고 싶다면 우선 현재를 그렇게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언제나 '오늘'이었다. 우리는 과거에 머물지도 않았고, 이미 미래를 살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현재가 불만족스럽게 불행하게 여겨지는 배경에는 몸과 마음의 괴리가 존재한다. 몸은 오늘을 살지만 마음이 과거에 사로잡혀 있거나 아직 도래하지도 않은 미래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힘든 요즘 같은 시대에 꼭 필요한 마음가짐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재에 집중한다는 것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언제 종식될지 걱정하고 불안해하기보다 방역수칙의 테두리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스스로의 행복을 이끌어내는 마음가짐이 엄혹한 코로나 시기를 슬기롭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마음 자산일지도 모른다.
행복을 미루는 것도 습관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되면'과 유사한 방식으로 미래의 어떤 시점에 행복을 못 박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많은 순간을 그런 방식을 통해 불행한 현재로 만들어왔다. 어른이 되면, 시험이 끝나면, 대학을 가면, 연인이 생기면, 결혼을 하면, 내 집이 생기면, 아이를 다 키우고 나면... 그때가 되면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언제든 우리에게는 일정 수준의 고민과 고통, 불만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지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미래에도 행복할 수 있고, 지금 불행한 사람은 그때가 되어도 여전히 불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