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이 치밀어 오를 땐 따뜻한 커피가 당긴다
삶의 어떤 순간은 기다리는 승객이 없는 버스정류장처럼 순식간에 스쳐간다.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없는 버스는 정차할 이유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원하는 곳까지 빨리 가면 시간도 아낄 수 있고 좋은데,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묘한 불안감은 무엇일까. 의미도, 물음표도 없는 질문 따위가 하얀 도화지 위에 찍힌 빨간 점처럼 자꾸만 눈에 띈다. 나는 그저 두려운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해낸 것에 비해 너무 서둘러 흘러가버리는 삶의 속도가. 차창을 스치듯 무의미하게 지나쳐버린 삶의 순간들이. 어쩌면 그런 것들이 반드시 기억에 담아두었어야 할 중요한 것들은 아니었을까 하는 모종의 위기감들로 인해.
버스 안의 승객들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버스는 굉음을 울리며 2차선으로 된 작은 시골 도로를 질주한다. 험상궂은 인상의 버스기사는 연비 따위 기름과 함께 불살라버리겠다는 심정으로 무지막지한 급발진과 급정지를 반복한다. 출발할 때는 뒤로 30도, 정차할 때는 앞으로 30도. 사람들이 버스의 움직임에 맞춰 시계추처럼 기울어졌다가 돌아온다.
한적한 시골길 사이로 드문드문 세워진 정류장에는 좀처럼 승객들이 없다. 손님이 없는 것에 더 흥이 난 버스는 아무도 없는 길을 홀로 질주한다. 쉼 없이 덜컹거리는 통에 엉덩이는 얼얼함을 더해가고, 손잡이를 통해 느껴지는 진동으로 손의 감각조차 희미해지는 느낌이다. 다음 정류장이 어딘지 알려주는 안내음이 속사포처럼 연달아 나오며, 순식간에 몇몇 정류장이 그냥 지나갔고, 잠시 멍 때리는 사이에 나는 내려야 할 시기를 놓쳐버렸다.
CF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저 이번에 내려요" 하고 작게 소곤거릴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버스기사님께 급히 소리쳐야만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고,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다음 정류장에 내리는 쪽을 선택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차 버튼을 누르고 나선 다급한 마음을 차분함으로 가리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래도 버스 승객들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내릴 정류장을 놓쳤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도 한몫했다. 사람들은 분명 나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겠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더라도 내가 신경이 쓰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차라리 한 정류장 뒤에 내려 걸어가는 것이 나에게는 조금 더 감당하기 쉬운 종류의 고통이었을지도 모른다.
버스는 내가 하차 버튼을 누른 이후로도 꽤나 오랫동안 달렸고, 내가 원래 가야 했던 곳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갔다. 약간은 후회스러운 기분으로 한참을 걸었다. 광속으로 달리던 버스에게는 그저 찰나에 지나지 않았던 거리가 인간의 유약한 걸음으로는 서울과 평양 사이에 조금 못 미칠 정도는 될 것 같았다. 멀찍이 보이는 건물들이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 것은 기분 탓일까? 과연 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무형의 장막 같은 것이 내 앞을 가로막은 채 나를 희롱하고 있는 건 아닐까? 쓸데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잡생각들에 관심이 집중되는 동안 부지런한 걸음은 나를 목적한 곳에 데려다주었다. 다행스럽게도 서울과 평양 사이를 가르는 군사분계선 같은 장애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정된 기회 사이의 시간적 거리가 너무나 멀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나는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오랜 시간을 캄캄한 추위 속에서 기약 없는 시골버스를 기다려야 했기에. 그래서 나는 멀찍이 하나의 불빛이 도로 위를 질주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저 버스보다 내가 먼저 정류장에 도착해야 해!' 선착순에서 1등 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때의 속도로 논두렁 사이로 뻗은 비탈길을 빠르게 내달리던 나는 그만 공중에 부웅 뜨는 느낌과 함께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걸까. 눈을 떴을 때 나는 차가운 아스팔트의 촉감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의외로 고통은 없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도로 방향을 바라보았을 때, 이미 버스 불빛은 언덕 너머로 저물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혹시라도 내가 촐랑거리며 뛰어가다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모습을 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행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차후로 미뤄둬야겠지만, 어쨌든 인적이 드문 길이라 지나가는 행인은 없었나 보다 하고 안심하려는 찰나, 그제야 정수리에서 척추로 이어지는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강제로 망각되었던 추위도 자신의 존재감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이빨의 강도를 시험할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논두렁 끝에 걸터앉아 잠시 어지럼증을 달래고 있는데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춥고 고달플 때면 나는 늘 따뜻한 커피를 찾곤 했다. 지금도 그렇게 한잔 들이켜고 나면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다.
뒤통수를 더듬어보니 다행히 피가 흐르지는 않았다. 잠깐 기절한 것 치고는 모든 것이 멀쩡해 오히려 허탈할 정도였다. 이 정도면 액땜한 것으로 치면 되지 않을까? 넘어지던 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차피 기억하는 것보다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인생이니까 그까짓 몇 분 기억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인생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길고 거창한 이유를 찾는 것이 조금 부자연스럽긴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넘기기로 하며. 멍해진 느낌을 뒤로하고 좀 전에 넘어졌던 그 비탈길을 아주 처언천히 걷기 시작했다. 살얼음 위를 걷듯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어차피 버스는 놓쳐버렸으니 더 이상 급할 것도 없었다.
의외로 버스 정류장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좀 전에 지나간 건 버스가 아니라 건넛마을 채석장을 오가는 덤프트럭이라고 했다. 바로 그때, 저 앞으로 겨울의 어둠을 뚫고 빛무리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미 놓쳐버린 줄 알고 포기했던 그 시골버스였다.
버스에게 정류장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인 수많은 것들 중 하나에 불과하겠지만, 승객에게는 그 잠깐의 멈춤이 참 소중하다. 무언가를 기다려야만 하는 입장은 꽤나 고달픈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에게는 버스를 타야만 하는 사정이 있다. 어떤 이는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버스를 타야만 할 것이고, 또 다른 이는 연인과의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만남과 이별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저마다의 사정이기도 하다. 나 또한 어떤 이유로 버스를 타고 내렸으며,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버스는 인생노선을 달리며 수많은 정류장을 거친다. 어떤 정류장에는 긴 시간을 머물기도 하고 많은 승객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버스노선을 닮았다. 우리는 종종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서두르지만, 때때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만난다. 관계 맺음 속에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기도 하고 그들과 인생의 일정구간을 함께하기도 한다. 관계는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다. 똑같은 관계도, 영원한 관계도 없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오랜 시간 기억에 남는 인연도 있다. 하지만 만남 없는 이별은 없으며, 이별을 피해 갈 수 있는 만남도 없다. 결국 우리 모두는 어떤 정류장에 내려 자신의 고유한 목적지를 향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고독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약간은 철학적으로, 빙판길을 뛰어 내려가다가 뒤통수를 처박은 조금, 아니 많이 부끄럽고 당황스러웠을 하루를, 아무렇지 않은 척 마무리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