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길
한동안 방치되었던 기계 뭉치처럼 뼈마디가 온통 덜그럭거리는 아침이었다. 좀처럼 눈은 떠지지 않았고, 얼굴과 몸은 퉁퉁 부어 고통스러웠다. 몸 전체에 존재하는 수많은 관절의 아우성으로 말미암아 비 오는 날과 맑은 날의 기압 차이를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그런 나이가 찾아오고 만 것일까. 그제야 비로소 비가 오는 날이면 뼈마디가 쑤신다고 하시던 어른들의 말씀이 엄살이나 거짓이 아니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게 이런 느낌이었구나. 나이가 든다는 건 어쩌면,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하나둘씩 신경 쓰이기 시작하고, 때로는 그런 것들이 버거워졌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도 모른다.
차갑고 시린 바람이 거리를 맴돌고 마른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들은 불어오는 바람의 목소리를 따라 이리저리 몸을 비튼다. 정지선을 넘어선 자동차처럼, 인생은 적절히 멈춰 서야 할 지점을 지나쳐버렸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옷깃을 부여잡는 미련 섞인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게 되고, 나도 모르게 조금씩 과거의 문을 두드려보는 나를 발견한다. 그런 마음은 어쩌면 빨간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단속 카메라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운전자의 그것과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비 오는 날이면, 온갖 소리들이 빗줄기 사이의 좁은 틈을 비집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그 소리들은 좁고도 넓은 공간 속에서 이리저리 부딪히고 굴절되며 고유한 음색의 경계를 허물어트린다. 때로는 공명하고 증폭되어 평소와 다른 소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자동차 바퀴와 도로의 노면이 마찰되는 거친 쇳소리는 15년 동안 매일 담배를 두 갑씩 피워 온 골초 폐암환자의 다급한 숨소리 같았고, 비 내리는 도로가 뿜어낸 유막과 그 위를 아슬아슬하게 떠다니는 하얀 증기 사이를 가르며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만들어내는 굵고 단단한 파열음은 마치 한여름 마른 오후에 쏟아지는 시원한 소나기 소리처럼 들렸다. 빗방울이 파란 천막 지붕 위를 두드리는 소리는 비가 자신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노크소리 같았고, 그 수많은 소리들 사이에 벌어진 잠깐의 공백을 틈타 시큼 달달한 레몬글라스 차를 들이키며 깊고도 얕은 한숨을 내뱉는 갈 곳 잃은 나의 숨소리도 들렸다. 수많은 소리들이 때로는 자신의 소리로, 때로는 해석할 수 없는 소리로, 때로는 나에게만 들리는 독특한 효과음으로 귓전을 맴돌기도 하고 고막을 후벼 파기도 했다.
각자의 세상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비 오는 날 아침 들려오는 온갖 소리를 만나보는 것만으로도 여지없이 깨닫게 된다. 심지어 한 사람의 세상 속에서도 매 순간은 다르고, 매일은 특별하다. 당시의 상황이나 그날의 감정, 최근에 어떤 일들을 경험했는가에 따라 같은 상황이라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틀로 상황의 일부를 찍어내서 선별적으로 받아들인다.
오랜 시간 잠수함을 탔던 나는 소리에 굉장히 민감하고, 시끄러운 것을 증오하며,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는 것에 더 익숙하다. 그래서 비 오는 날 미처 챙겨 오지 못한 우산에 대해 고민하는 경우와 달리, 나는 그날따라 더욱 짙고 크게 들리는 여러 가지 소리들에 빠져들게 된다. 단순히 음속이 공기 중보다 물속에서 더 빠르고, 온도나 압력 차이 따위로 인해 음파의 하향 굴절이 일어난다는 식의 지식 지푸라기 같은 것들에서 벗어나, 평소에는 들을 수 없었던 그날만의 독특한 소리들이 모여 하루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소리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해준다. 한 사람의 목소리 역시 매일의 음색이 다르며, 그 날의 기분, 컨디션, 감정, 고민거리 등이 목소리에 담긴다. 불편하고 못마땅한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말해도 듣는 사람에게는 진실된 사과로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어떤 단어가 사용되었는지보다 목소리의 톤이나 높낮이, 말하는 태도 등을 통해 상대방의 진심을 해석한다. '저 사람은 여전히 자신이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구나'와 같은 식으로.
이제는 식어버린 레몬글라스 차를 한 모금 들이킨다. 차갑고, 달달하고, 끝에 쓴맛이 잠시 맴돌다 사라진다. 또 한 모금을 들이켜본다. 이리저리 굴려보기도 하고 삼킨 후 혀끝에 남아있는 맛을 느껴보기도 한다. 뭔가 조금 색다른 맛이다. 인생은 이처럼 식은 레몬글라스 차를 마시는 것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떤 때는 차갑게, 어떤 때는 달달하게, 어떤 때는 시큼하게. 그렇게 우리는 하루를 살고 한 달과 일 년을 산다.
연속된 시간 사이에는 벽걸이 달력의 날짜처럼 칸칸이 나뉜 구분선 따위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구분을 자신의 세상에도 적용했다면, 혹은 인간에게 주어진 적응능력을 십분 활용해 이미 만들어진 수많은 세상의 법칙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면, 칸칸이 나누어진 날짜들처럼 매일의 색깔을 달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 오는 날 들려오는 색다른 소리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