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빛 많이 받으세요!

'빚' 말고 '빛'이요.

by 작가 전우형

암막커튼이 미처 가리지 못한 좁은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작고도 가느다란 빛줄기가 나를 꿈의 세계로부터 현실로 소환했다. 여전히 눈동자는 천근만근인 눈꺼풀로 굳게 덮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바깥세상의 명도와 채도의 오묘한 변화가 느껴졌고, 그 미묘한 감각은 이내 어떤 아쉬움을 불러일으켰다. 이제는 따뜻하고 포근한 극세사 담요 속을 떠나 다시 세상 속을 향해야 한다는 현실을 일깨워주는 것과 함께.




원래 아침형 인간이었는지, 아니면 아침형 인간으로 자라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은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면 한 사람씩 눈을 뜨기 시작한다. 도미노 블록 하나가 다음 블록을 넘어트리듯 막내가 눈을 뜨고 뒤척이면 곧 둘째가 팔다리를 있는 힘껏 사방으로 뻗으며 기지개를 켜고, 동생들이 틀어둔 TV 소리를 듣고 첫째가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와 전원도 켜지 않은 고타츠 안을 파고드는 식이다. 여전히 누워 있는 자세는 동일하지만 이번에는 식은땀을 흘리며 꿈나라를 헤매는 대신 눈을 뜨고 에이미 얼굴을 보고 있다는 것이 조금 색다를 뿐이다. 아내는 이미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부엌을 서성인 지 오래고, 꽤나 시끄러운 네 사람의 생활소음에도 꿋꿋이 혼자만의 세상을 향유하던 내가 마지막으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안방 문을 열어젖힌다. 다섯 식구가 비로소 한 자리에 모인 셈이다.


여전히 꿈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한 아침 시간이면, 흘러내리는 코피 대신 굳어버린 머리를 사르르 녹여줄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기다렸다는 듯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투명하고도 검붉은 액체가 매끄러운 곡선을 타고 쪼르르 흘러내리며 찬찬히 층을 이루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느덧 존재감을 과시할 정도로 차오른 커피는 차가운 흰색과 짙은 와인색, 흑연처럼 거칠고 어두운 검은색이 오묘하게 배합된 입구가 좁은 머그잔 내부를 찰랑찰랑할 정도로 가득 채우고 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커피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가늘고 긴 숨을 들이마시며 코끝에 머물던 오묘한 커피 향을 폐부 깊숙한 곳으로 끌어들여본다. 이내 가슴속은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고, 마음속에 머물던 응어리와 꿈의 찌꺼기 같은 것들이 긴 날숨과 함께 자아의 경계 바깥으로 배출되는 것을 느낀다.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쓸어 담듯이 내면의 세상을 청소하고 새로운 생각과 온기들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왠지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볕이 제대로 들지 않던 카페 내부에도 간혹 빛무리가 머물 때가 있다. 하루 중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래서 그 잠깐의 빛이 더욱 반갑고 소중했다. 태양빛은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얻지 않아도 되는 인간에게도 꼭 필요한 존재다. 단순히 비타민 D가 생성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사실을 넘어 정서적인 따뜻함과 '생기'를 채워줌에 있어서도. 나는 그것을 잠수함을 타면서 깨달았다.


한 번 항구를 떠나면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을 태양과 동떨어진 세상에서 지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략 연중 200일 가까운 시간을 육지를 떠나 있었고, 심해의 고요함이 적막을 더했다. 불투명한 이유들 속에 좁은 공간 내의 사람들은 점차 대화가 줄어들었고, 사소한 생활소음조차 함부로 낼 수 없는 이 어색하고도 지루한 관계들 속에서 갈 곳 잃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야만 하는 어려움도 존재했다. 심지어 40명의 승조원들에게는 창문 하나 없는, 심할 정도로 단단하고 무겁고 둔중한 HY80강으로 둘러싸인 20평도 되지 않는 원통형 공간이 전부였다.


길이 56m, 만재톤수가 1400여 톤에 달하는 중형 잠수함이었지만, 대부분의 공간은 각종 무장과 음향센서, 엔진, 배터리, 추진 모터 등으로 채워져 있었고, 사람은 수많은 쇳덩이들 사이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았다. 개인 공간은 상상할 수 없었고(단 한 명에게만 개인 공간이 허락되었지만 그 공간은 양팔을 쭈욱 뻗고 스트레칭하기에도 비좁은 감옥의 독방 같은 답답한 공간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그 공간에서 벗어나 마음껏 바깥을 활보할 수도 없었다. 그냥 그 방에서 조용히 지내! 와 같은 무언의 압박이 담긴 눈빛과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깨너비를 조금 넘는 좁은 침대조차도 몇 명이서 돌아가며 써야 했던 가혹한 세상에서 그들은, 개인의 자유와 더불어 건강도 함께 잃어야만 했다. 불어나는 체중과 허리둘레는 180개들이 커피박스에 서비스로 붙어 있는, 덩치만 크고 마음에는 차지 않는 커피잔처럼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 없는 성가신 존재였다.


중소국가의 유일한 전략무기로 불리던 잠수함에 근무한다는 자부심이 아니었다면 결코 버틸 수 없었던 시간들이었지만, 몸 곳곳이 시름시름 아프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는 것은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 것들이 오랜 시간 햇볕을 보지 못할 때 생기는 증상들이었고, 북유럽의 일조량이 부족한 고위도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인 높은 자살률의 여러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도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었다. 누구도 그런 건강상의 문제에 주목하거나 심각하게 설명해주지 않았고(그런 것들을 심각하게 설명해주었다가는 그렇잖아도 부족한 잠수함 승조원들이 더 지원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들이 주로 강조했던 것은 타 직군에 비해 평균적으로 소득이 얼마나 더 높은지와 진급 가능한 계급과 평균 진급률, 근무평정의 등급 비율상 이점 같은 것이었다.), 나 역시 개인 건강이나 잠수함 생활의 환경적 문제점 따위를 따지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당장 해야 할 일들로도 숨통이 막히고 하루 24시간이 부족했기에.




우연찮게도 건강을 되찾아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 내가 반드시 챙기는 하루 일과가 있다. 그것은 바로 멍을 때리며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다. 걸을 때도 일부러 그늘진 곳을 피해 양지를 골라 다니기도 한다. 추운 겨울을 지나 뜨겁고도 찬란한 여름 햇살 아래서도 마찬가지다. 간혹 살갗이 검게 그을린다는 문제점이 있음에도 가급적 온몸으로 태양신을 접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눈부신 햇살과 함께 할 수 있는 하루가 충분히 감사할만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빛도 소리도 들리지 않는 긴 터널을 거쳐온 시간들이 있었기에.


'감사'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감사할만한 상황에 대한 조건을 규정해두고 그런 드라마틱한 일들이 생겼을 때만 기념일 축하송 부르듯 하는 것이라기보다, 그저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귀하고 소중한 일상임을 인식하는 것일지도.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는 것만으로 수많은 기능들을 누릴 수 있음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돈을 내면, 혹은 내지 않고도 필수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 무엇보다도 길거리에서 함부로 차에 치여 사망하거나, 길을 가다가 소매치기나 강도를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치안이 정비된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 우리가 평범하게 여기는 일상이 결코 평범하지 않는 노력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어쩌면 우리는 현재의 삶을 조금 더 감사할만한 것으로 여길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과 같은 엄혹한 코로나의 시기에도 여러분의 하루가 더 많은 '감사의 빛'으로 가득 찼으면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금전적인 빚'이나 '마음의 빛'보다는, 따뜻한 '감사의 빛' 속에 머물 수 있기를, 그런 따스함이 나의 일상에, 그리고 여러분의 일상에 채워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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