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개봉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어벤저스의 히어로 중 '닥터 스트레인지'로도 유명한 베네딕트 컴버비치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TVN 예능프로그램 '신서유기'에서 '도르마무 도르마무 거래를 하러 왔다'는 대사를 차용해서 그런지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리뷰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5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1. 나는 기계인가요? 사람인가요?
"기계도 생각할 수 있나요?"라고 묻는 경찰에게 앨런은 그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말한다. 적절한 질문은 "기계도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나요?"라는 말과 함께. 이 대목은 기계의 생각 방식에 대한 고민을 불러일으킨다. 기계의 생각 방식. 그것은 감정이 철저히 배제된 사고방식이며 무한한 2진법으로 구성된 디지털 세상에서 계산하고 또 계산하며 구성된 알고리즘과 논리를 따르는 방식이기도 하다. 주인공 '앨런 튜링'은 자신을 취조하는 형사에게 이렇게 묻는다. "나는 기계인가요? 사람인가요?" 기계에게 전쟁이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과 같고, 게임에서는 얼마든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른바 '살을 내어주고 뼈를 깎는 방식'을 집행함에 있어 '소'의 입장과 '살'의 입장에 대한 감정적인 고려나 연민은 배제되는 것이다. 이 부분은 효율적 사고가 가장 기계의 사고방식과 닮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2. 유일한 친구의 시한부 인생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던 앨런 튜링
그런 기계와 가장 닮은 사람은 주인공 앨런 튜링이었다. 그는 기계를 이해했고 그가 만든 튜링 머신은 훗날 컴퓨터의 전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인간으로서는 빵점이었다. 일단 그는 일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다.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사이의 행간과 맥락을 전혀 읽어 들이지 못하는 장면은 그가 얼마나 사회성이 결여된 인간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후반에 등장하는 교장선생님과의 대화 장면인데 그 장면에서 중학생 시절의 앨런 튜링은 왕따나 다름없었던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하고 보호해준 친구의 죽음을 믿지 못한다. 어쩌면 그가 믿지 못했던 것은 자신이 하나뿐인 친구가 시한부 인생이었다는 것조차 몰랐다는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앨런 튜링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공감이라는 측면에서 너무나 부족한 인간이었다. 어쩌면 그랬기에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2년 앞당기고 결과적으로는 1,400만 명의 희생자를 감소시킬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3. 2차 세계대전. 독일군의 암호장비 '에니그마'를 해석해낸 수학 천재들
매일 자정이면 회전자 설정이 변경되는 독일군 암호장비 '에니그마'. 영국은 독일군의 암호장비 한 대를 빼돌리는 데 성공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매일 입수되는 수천 개의 독일군 전보 역시 암호 패턴을 알아내지 못하는 한 쓸모없는 종이조각에 불과했다. 시시각각 늘어가는 연합군 희생자를 한 명이라도 줄이기 위해선 에니그마의 회전자 설정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경우의 수는 1590억의 10억 배(1/159,000,000,000,000,000,000)에 달했다. 매일 자정이면 패턴을 수정하기 때문에 이들은 대략 18시간 내에 이 수많은 조합을 확인해 독일군의 전보를 해독해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하지만 그들이 수학의 천재라고 해도 그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앨런은 다른 팀원들과 차별화된 독자 노선을 선택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일명 '튜링 머신'이었다. 유일한 친구이자 신념이었던 이 머신을 두고 앨런은 '크리스토퍼'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튜링 머신의 도움으로 불가능할 것만 같던 이 미션을 해결해내지만 이들은 곧 엄청난 딜레마에 빠진다. 그것은 에니그마의 패턴을 파악했다는 사실을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을 이용해 눈에 띌 정도로 전략적 변화를 일으켜서도 안됐다. 독일군이 자신의 암호장비가 무력화되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수년간의 노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것이 뻔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맵핵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짐작할 수 없게끔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것과 같았고, 결국 이것은 여전한 연합군의 희생을 필요로 했다. 죽음에 대한 무감각, 희생자에 대한 연민, 대를 위한 소의 희생에 대한 찬반. 그 수많은 목숨을 누가 감히 선택할 수 있을까? 기계의 사고방식과 인간의 사고방식 사이의 대립은 에니그마 해독법에 대한 처리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팀원들 간의 갈등 장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4. 생각지 못한 사람이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물건을 만들어낸다
"생각지 못한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법이지." 이 대사는 영화 곳곳에서 수 차례 등장하는 말이자, 어린 시절 앨런의 유일한 친구였던 '크리스토퍼 모컴'이 그를 격려하기 위해 해준 말이었다. 주인공 앨런 튜링은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튜링 머신에 '크리스토퍼'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도 유일한 친구였던 크리스토퍼 모컴을 잊지 못하는 앨런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작중 장면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는 기계처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기계가 갖지 못한 능력이 곧 앨런에게 부족했던 능력이었다. 그것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능력,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능력, 타인의 말에 숨은 의미를 알아차리는 능력,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는 능력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한 능력이 없었기에 앨런은 인간으로서 완전할 수 없었고 관계의 불안 속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에게는 인간보다 기계가 훨씬 더 친숙하고 정직한 존재였다.
역설적으로 앨런에게 이런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기에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기계를 창조해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동성애자였다. 앨런이 살던 1900년대 중반의 영국에는 동성애 금지법이 존재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50년대 초, 캐임브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던 앨런은 스파이로 의심받고 경찰에 체포되지만 수사 끝에 밝혀진 그의 죄목은 스파이가 아니라 동성애자였다. 당시의 관행대로 앨런은 화학적 거세 또는 감옥행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크리스토퍼에 대한 연구를 포기할 수 없었던 앨런은 화학적 거세를 선택했고, 1년간 정부의 강제적 호르몬 요법을 받은 후 결국 1954년 6월 7일 자살했다. 그의 나이 41세였다. 시대를 잘못 선택한 천재의 비극적 결말이었다.
5. "나는 그와 친하지 않았어요"라는 주문 같은 말
앨런 튜링은 과거를 회상한다. 가장 친한 친구였던, 유일하게 자신을 지지하고 이해해주었던 친구의 사망 소식을 전해받던 날의 기억을. 앨런의 충격은 단순히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에 있지 않았다. 어지간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었던 친구의 결핵으로 인한 시한부 삶을 정작 자신은 알지 못했다는 것이 그가 느낀 가장 큰 충격이자 자책이었다. 앨런은 교장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그와 친하지 않았어요."라는 뉘앙스의 영혼 없는 말을 반복적으로 대답한다. 타인에게 무감각했던 자신을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앨런으로서는 그와의 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것 말고는 당시의 상황을 감당해낼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 일은 앨런에게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아 이후의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2차 세계대전 종식을 앞당긴 수학 천재들의 암호해독 과정을 담고 있지만, 나는 그보다도 앨런 튜링이라는 한 남자의 삶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주었던 그 친구의 가장 큰 아픔을 자신이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어쩌면 앨런은 그 일을 겪은 후 자신은 타인의 마음을 절대 알아차릴 수 없다고 스스로 단정 지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는 당시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도 엿볼 수 있었다. 수학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고, 에니그마 해독을 위해 새로운 팀원을 선발할 때 찾아온 여성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당시의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어쩌면 앨런은 그런 남녀차별적 시선에서 차라리 자유로웠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인간이란 남성이건 여성이건 똑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였을 테니까. 그래서 오히려 성별에 대한 관념에서 벗어나 순수한 능력을 기준으로 그녀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기꺼이 도움을 청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튜링 머신으로도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에니그마의 해독법에 대한 단서 역시 당시 전보를 수집하던 여성 요원의 농담과 같은 말을 주의 깊게 들었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여성에 대한 편견이 존재했던 당시의 사람들과 같이 여성의 말을 무시했다면 결코 그러한 단서는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사고는 감정을 배재할 수 없기에 휩쓸리기 쉽고, 많은 사람이 찬성하는 의견을 충분한 논리적 검토 없이 부지불식간에 따르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인간적인 사고방식'이 기계에 비해 현명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한 발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