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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의 미학

설득과 세뇌, 그 미묘한 차이를 생각하다.

by 작가 전우형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공간에는 인간의 온기가 사라진다.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다. 세상에 냉담해지고 물질만을 추구하게 된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잃어버린, 사회성이 퇴화된 사람은 설득이 아니라 세뇌를 추구한다. 그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그렇다. 솔직하고 정당한 접근법으로 상대방을 설득해가는 과정은 지난하고 많은 노력이 필요한 반면 결과는 보장하지 못한다. 하지만 적절히 정보의 공개를 은폐하고 자신이 가진 패를 숨기며, 마치 도박을 하듯 상대방을 흔들고, 그 사람의 숨은 욕망을 공략하는 방법은 조금 더 쉽게 자신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줄 것처럼 여겨진다.




‘세뇌(洗腦)’

세뇌란 개인의 사상이나 가치관 등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게 하거나, 새로운 사상, 주의, 교리 등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체계적인 노력을 말한다. ‘세뇌’는 1950년대 중국 공산당이 지배체제를 굳히는 과정에서 체계적인 세뇌 방법을 활용함으로써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출처 : 두산백과)


세뇌의 영어 표기는 'brainwashing'이며, 한자로는 '씻을 세(洗)'와 '골, 뇌수 뇌(腦)'자를 쓰고 있다. 이것을 원음 그대로 해석하면 ‘뇌를 씻어내다’로 해석된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다. 뇌를 씻어내는 것. 기존에 갖고 있던 사상 등을 깨끗이 씻어내고 새로운 것으로 뇌를 채우는 작업, 그것이 곧 세뇌다. 당연하게도 새롭게 채우는 것들은 세뇌를 주도하는 자들이 원하는 어떤 사상이나 주의, 교리 등이 될 것이다.


과연 뇌를 씻어낸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기존에 갖고 있던 신념체계나 사상, 가치관 등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새로운 것을 심어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인셉션 넘어지지 않는 팽이.jpg


영화 ‘인셉션’에서는 이와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그 사람의 깊은 꿈속으로 들어가 생각과 사고의 전환을 이끌어내는 것. 그 과정을 영상으로 풀어낸 모습은 꾀나 신비롭고 관심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인셉션이란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뿌리 깊은 전제를 인위적으로 조작함으로써(예를 들면 아버지의 유지와 같은) 생각의 방향을 비틀어내는 것으로 세뇌가 지닌 원뜻에 비유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지만 현실적인 세뇌의 방법으로는 상당히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 누군가를 설득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대단히 매력적인 작업이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본능이 아니라 사고 작용을 통해 움직인다. 따라서 생각의 뿌리가 되는 사고방식이나 가치관, 신념 등이 바뀌면 이후의 인생이 달라질 정도로 큰 변화가 일어난다. 그렇기에 설득은 대단히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며 많은 시도와 여러 가지 방법이 요구된다. 결과도 보장하기 힘들다. 애써 설득에 성공했지만 마음이 변하기도 한다.


세뇌는 다소 다른 접근방식을 쓴다. 세뇌는 인간이 가진 여러 가지 약점을 노림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룬다. 그리하여 세뇌는 공산주의 독재체제 하에서 가장 힘을 발휘했다.




세뇌의 메커니즘


세뇌는 대단히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행해졌다.


첫 번째는 반복(세뇌교육)이다. 자신들이 주입시키고자 하는 내용을 끊임없이 반복 교육하고 암송시킨다. 종래에는 생각하지 않고도 능숙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아직 완전히 자라나지 않은 아이들에게 특이 유용한 방법이다. 북한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공산주의와 김일성 일가에 대한 신격화 교육을 받는다.


두 번째는 엄격한 '정보통제' 다. 자신들이 심어주려는 내용과 관련된 내용만을 공개하고, 거기에 배타적인 어떠한 내용도 경험하거나 보고 들을 수 없는 환경을 만든다. 과거 종교에는 ‘금서’로 불리는 많은 책들이 있었다. 그 책들은 기존의 종교관을 뒤흔들거나 의심에 가까운 의문을 품게 만드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인간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유추하고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의심의 뿌리를 심어줄 수 있는 정보들은 세뇌 과정에서 엄격하게 통제되어야만 한다.


세 번째는 공포와 고통이다. 자신들의 생각과 사상, 방식 등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은 고문을 받거나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다. 인간의 3대 욕구는 식욕, 수면욕, 그리고 성욕이다. 단 이틀에서 삼일만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초주검에 이른다. 세뇌교육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공포심은 극대화된다. 대체로 마지막에 체벌당하는 사람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처럼 누군가의 고통이 곧 나에게도 다가올 것이라는 상상은 굉장한 정신적 고통을 가져다준다.


네 번째는 복종을 '미덕화' 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내세우는 ‘대의’에 따르는 것이 올바른 것이며, 모두에게 이로운 것으로 포장하고 선동한다. 그들의 행동과 사상은 ‘당연히’ 수용해야만 하는 진리와 같은 것이 된다.




세뇌의 과정에는 통제와 억압, 은폐, 왜곡, 공포심 조장과 같은 비인간적인 수단이 개입되지만, 세뇌의 결과는 이러한 강제성에서 벗어난 상태가 된다. 진실로 그들의 사상이 옳다고 믿게 되고, 스스로의 의지로 그들을 따르게 된다.


이것은 무력이나 협박, 강요 등에 못 이겨 억지로 따르는 것과는 다르다. 힘, 권력, 또는 집단에 강제당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끌려가는 것은 결국 힘이 소멸되거나, 권력에 저항할 수 있게 되고, 집단에 소속될 필요가 없는 상황에 이르면 더 이상 따르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직장에 취업했을 때는 상사의 지시에 따라야 하지만 직장을 그만두면 더 이상 종속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것과 같다.


세뇌당한 사람은 다르다. 세뇌의 과정은 인위적이고 강압적이었을지 모르나 사람의 생각이 뿌리에서부터 바뀌면, 그리고 그 시간이 길어지면 그것을 내면화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는 그들의 생각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뇌된 사람은 마치 이단 종교에 빠진 것처럼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열렬한 신자가 된다.




협의의 세뇌는 공산당이나 독재자나 할 수 있을법한 비인간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문이나 끊임없는 반복(세뇌교육)과 극단적인 요소가 제외된, 곱게 '포장'된 세뇌는 사회 전반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정보는 쉽게 은폐되거나 왜곡되기 쉽다. 그래서 중립적인 정보를 스스로 찾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정보제공자들의 의도대로 쉽게 휘둘린다. 절대 사기당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사기를 당하고, 이단에 빠지기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 이단종교에 물들어 가정을 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이것은 그들이 인간의 약점을 교묘하게 공략하기 때문이다.




사기꾼의 세뇌 전략

사기의 흔한 방법은 좋은 사례를 연거푸 보여주는 것이다. 그동안의 실적을 보여주면서 앞으로도 이와 같은 매출이나 호황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실제로 그 자료들은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에 기반한 정보라고 해서 반드시 유용한 정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성공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건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그래프가 꾸준히 직선을 그리며 상승궤도를 그려줄 것이라 예측하지만, 그것은 허황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성장곡선은 언제나 시간이 지날수록 완만하게 꺾인다. ‘고점’에 도달하기 이전의 급격한 성장이 가장 화려해 보인다. 그 이후를 등한시해서는 안되지만 지금까지 보아왔던 주변인들의 성공신화에 목말라있던 사람들은 어긋난 진실을 믿고 싶어 한다. 자신에게 드디어 찾아온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확신하게 된다. 종래에 사기꾼들은 이런 식으로 투자를 받아 어느 순간 갑자기 종적을 감춘다.


이단 종교의 세뇌 전략

이단 종교는 특별함을 내세운다. 그들은 주로 소외되고 외로운 계층을 노린다. 누구도 그들을 인정해주지 않지만 자신들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곳에 가면 구원을 찾을 수 있다고 구슬린다. 실제로 그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기도 한다.

“누구도 보여주지 않던 ‘관심’을 그들은 보여준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호의에 이들은 감격한다. 여전히 미심쩍지만 그들의 성의를 무시하기 힘들어 한 번 따라가 본다. 너무나 친절하고 호의적이다. 세상에 천사들은 모두 이곳에 모인 것만 같다. 모두 서로를 보며 웃고 격려해준다. 자신들의 테두리 안으로만 들어오면 그동안 겪어왔던 외로움과 고난은 끝이 난다고 말한다. 몇 안 되는 구원의 좌석을 배정받을 수 있다고 부추긴다. 그들의 반복되고 일상적인 세뇌에 조금씩 젖어든다. 그들의 속삭임이 자신의 헐벗은 마음을 채워준다고 느낀다.


시간이 지나고 그곳에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들의 논리는 모순되어 있고 이성은 수시로 경종을 울려댄다. 지나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참신함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대개 그렇듯 들어갈 때는 마음대로 들어가도, 나올 때는 마음대로 나오지 못한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처럼, 그들을 따라야만 한다. 다른 해결책은 없어 보인다.




‘설득’과 ‘세뇌’의 차이


과연 설득과 세뇌의 차이는 무엇일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것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물론, 그들이 처할 미래에는 큰 차이가 있겠지만 설득당하고 세뇌당할 당시로써는 그저 상대방의 말과 생각에 동의하게 될 뿐이다. 하지만 설득과 세뇌를 시행하는 주체는 큰 차이가 있다. 바로 태도와 윤리성의 차이다.


설득은 상대방과 나의 공동이익을 추구한다. 나를 위해 그를 설득하기도 하지만, 설득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공존한다. 허황된 것을 권유하지 않고 실질적인 행복을 권장한다. 현실적인 제안을 하고 그들의 의견과 생각에 대한 존중 하에서 변화를 이끌어낸다.


세뇌는 다르다. 세뇌는 오로지 상대방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데만 초점을 맞춘다. 그것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가의 문제는 고민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행복만을 추구한다. 세뇌의 대상은 자신의 이로움을 극대화해줄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떻게 될지는 논외의 문제다. 이단의 사상에 빠져 가정을 망가트리든, 평생 모아둔 돈을 잃어버리든 그런 것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래서 세뇌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도 배재하지 않는다. 은폐, 회유 등 그 어떤 비윤리적인 방법도 사용할 수 있다. 그 사람의 배경과 현재 처한 상황, 심리적 약점을 치밀하게 파고드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모든 수단은 사용자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 통상의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으면 빠르고 편안한 이동수단이 되어주지만, 음주운전자가 그 자리에 앉으면 사람을 죽이는 살인기계가 된다. 설득과 세뇌도 마찬가지다. 두 가지 모두 인간의 감정을 터치해야 하며, 그들이 가진 심리적 취약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든 공략하기 쉬운 포인트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결핍’과 ‘불안’ 같은 것들이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고, 그들이 불안을 덜어주고 친구가 되어주면 그들은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이것은 두 가지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다. 하나는 상대방을 이용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상대방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공감능력은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능력이다. 자신을 살필 줄 아는 것과 자신만 살피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것은 넓은 시야를 가진 상태에서 한쪽을 집중해서 보는 것과, 시야가 좁아진 탓에 한쪽밖에 볼 수 없게 된 것의 차이와 같다.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은 관심의 방향을 전환하면 다른 쪽을 볼 수 있지만 시야가 좁아져버린 사람은 자신이 볼 수 있는 좁다란 골목길 같은 세상에 갇힌다. 좁은 길은 나 혼자 걸어가기에도 비좁다. 그 안에 다른 사람에게 내어줄 공간 따위는 없다.




“내가 타인을 대할 때 ‘설득’을 하고 있는지, ‘세뇌’를 하고 있는지 차분히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부모들 역시 아이들을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알고 보면 세뇌와 가까운 교육이나 훈육을 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올바르게 자라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이 아이들을 위해 최선이라고 여긴다. 당연히 그 밑바탕에는 자식들에 대한 확고한 사랑이 깔려 있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설득은 세뇌로 변모하기 쉽다. 아이든 어른이든 하나의 인격체는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으며,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부모, 직책과 명패가 있기 이전에 자신의 고유한 이름이 있다.

아이들은 아직 만들어지는 중이기에 세뇌당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심지어 힘도 없고 약하며 독립할 수 없고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존재다. 이것은 공산주의 독재체제 하에서 이루어지던 강력한 세뇌 방법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확실한 세뇌 환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이들은 선택권이 없다. 부모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아이들의 깊은 불안을 자극하는 행동을 한다.

“너 계속 그러면 엄마 집 나가버릴 거야! 그렇게 짜증 나면 그냥 나가서 따로 살아!”


이와 같은 말들은 아이들에게는 재판관이 내리는 사형선고와도 같다. 아이들은 당장 부모로부터 독립할 능력이 없다. 이것은 절벽 끝에서 아이들을 몰아세우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공포와 고통은 세뇌의 주된 방법 중의 하나다. 직접적인 고통을 주지 않더라도 그것을 암시하는 말과 행동, 분위기 만으로도 무척 지독한 고통이 선사될 수 있다. 이처럼 무의식적인 세뇌 패턴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는 부모들의 많은 자기 성찰과 고민이 필요하다.


자신의 고민과 경험, 사고의 과정을 통해서 채운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각을 주입받아 그것이 자신의 생각으로 굳어지는 과정을 거치면, 스스로 자신의 신념체계를 완성해갈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 좋은 생각만을 곧바로 꽂아주는 것보다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합의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거치도록 시간을 주고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인간은 고등한 동물이지만, 여전히 불완전하고 휩쓸리기 쉬운 성향을 갖고 있다. 혹자는 이것이 인간이 감정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인간은 본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기 이전에 훨씬 더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존재였다. 뿌리는 부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덜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간은 감정적인 동물이지 않을 수 없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원인에서 배재시켜야 한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문제를 왜곡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해답은 문제를 정확히 발굴해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때로는 아이들의 순진하고 때 묻지 않은 생각이 훨씬 더 빛나고 가치 있는 것이 되기도 한다. 다른 것을 틀렸다고 매도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부모-자식 간이라고 해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누군가에게 주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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