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와 성공에 대하여 생각하다.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 텃밭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 어떤 씨앗을 뿌리는가에 따라 열매도 달라진다. 그래서 올바른 목표 설정은 대단히 중요하다. 자신이 원하는 열매를 거둘 때 즐거움은 가장 극대화된다. 처음부터 열매가 열리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씨앗을 심은 곳에서 싹이 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껴야 하며, 싹에서 줄기가 올라오며 잎이 자라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그 후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며 매 순간 잘게 쪼갠 목표들이 달성되는 것을 단계적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매 순간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며 얻은 에너지로 줄기가 돋아나는 과정을 견딜 에너지와 인내심을 충전할 수 있고, 또 다른 도전으로 이어질 흥미와 관심을 북돋워 줄 수 있다.
급격한 변화는 언제나 부메랑 효과를 불러오며 목표했던 변화의 결과물은 보지 못한 채 시들해지고 만다. 가장 완벽한 변화는 자신이 변하는 것을 모른 채 시간이 지난 후 뒤돌아보았을 때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든, 아니면 그 반대편이든 급격한 변화는 부작용을 낫는다.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인간에게 파충류식의 체온 변화는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균형’을 유지해야만 한다. 한쪽으로 심하게 기우는 것은 발걸음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하며, 1도의 벗어남이 시작점에서 멀어질수록 완전히 다른 곳에 도착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에는 ‘기준선’이 있어야 한다. 내가 바라보는 방향, 큰 목표, 궁극적 목적으로 연결된 선이 있어야 한다. 눈을 감은 채 걸음을 옮겼을 때 우리는 종종 자신이 가고자 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곳으로 가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내가 가고자 하는 곳과 연결된 줄이 있으면 그 줄을 따라 원하는 곳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다.
우리의 미래는 안갯속이며 모든 것은 불투명하다. 내가 계획한 것과 다른 결과를 불러오기도 하며 수많은 변수들이 작용한다. 새벽안개로 휩싸인 숲에서 자신의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산꼭대기로 올라가 안개 위를 보아야 한다. 안개 위에 솟아난 또 다른 봉우리를 향해 줄이 달린 화살을 쏘아 고정시켜야 한다. 그 후에 다시 내려와 그 줄에 의지해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가끔 흔들리고 벗어날지언정 방향 자체는 목표한 지점을 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수많은 안갯속에 파묻혀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인생의 안갯속에서도 자신의 목표를 유지하고 원하는 변화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준선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탐구를 통해 가능해진다. 높은 곳에 올라 안개 너머의 것을 보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장점과 단점, 개성과 특이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등을 성찰하고 분석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을 통해 자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때 다음 목표가 명확히 보이기 시작한다. 비로소 안개에 휩싸이지 않고 안개를 헤쳐나갈 수 있게 된다.
인생은 쉼 없는 드라마다. 매회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고 언제나 그 주인공은 나다. 이 드라마에는 정해진 각본이 없다. 감독도 연기자도 편집도 모두 자신이 한다. 그래서 지치기 쉽다. 이 모든 것을 자신이 하려면 인생은 잠시도 쉴틈이 없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잠시 쉬어가는 것을 ‘낭비’로 여기지 않고 ‘재충전’하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쉼표를 찍어가는 것이 문장을 완성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때로 힘들어하는 자신을 볼 때 의지가 약하다며 채찍질을 더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 상태를 살펴볼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 테이프를 끊어버리지 않는 한 인생 드라마는 무한히 촬영된다. 우리의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은 스스로 그만둘 때뿐이다.
매회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콘셉트는 바뀌지만 큰 줄기가 되는 스토리는 이어져야 한다. 매 회의 이야기는 중심이 되는 스토리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한다. 중심에 단단히 자리 잡은 이야기의 맥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며, 자신의 인생 과업이다. 이번 생을 살아가는 의미는 계속해서 바뀌는 단기적인 것이 아니다. 찾아가는 과정에서 작은 목표들은 끊임없이 수정되어야겠지만, 그 과정은 연속적이어야 하며, 이전의 경험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수정하고 개선되는 작업이어야 한다.
잠깐의 흔들림으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볼 수 있을 만큼 해보는 끈덕진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나에 대해 하루 10분도 생각해보지 않는 드림 킬러와 같은 사람들의 의심과 시기 어린 말들에 휘둘려 ‘역시 나는 안되나 봐’와 같은 부정적 자기 확신에 젖어들어서는 안 된다. 시작도 내가 하고, 끝도 내가 맺는 것이다. 스스로 막을 내리기 전까지는 관객은 언제나 존재한다. 내가 만든 드라마를 가장 깊이 있게 관람해줄 관객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다.
과정의 지루함은 목표 달성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흐르는 물에 진흙이 쌓이듯 물길은 점차 좁아지고 샘솟던 에너지는 기운을 잃어간다. 성공에 대한 확신은 줄어들고 힘을 비축해온 불안이 고개를 쳐든다. 주위 사람들의 생각 없는 비판에 휩쓸리고 의심과 의구심이 점차 수맥을 가로막는다. 마음의 자양분이 갈 곳을 잃고, 텃밭은 메말라간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계속해서 작은 성취감을 맛보는 것뿐이다.
하지만 계속해보면 해볼수록 온 마음이 거부하는 것 같고 지쳐만 간다면 자신의 목표를 재평가해보는 것이 현명하다. 자신에 대한 분석을 해보았다면 자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지, 어떤 환경에서 스트레스가 극대화되는지에 대한 정보들이 누적되었을 것이다. 성공할 수 있는 일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이어야 하며, 다소의 지루함과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성취를 극복하면서도 계속할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 성공은 시간이 만든다. 모든 성취에는 나름의 시간이 필요하다. 짧은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런 성공은 오히려 독이 된다.
약간의 노력만으로 성공을 이룬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쉽다. 그 성공에 수많은 운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력들이 개입했다는 것을 모른다. 다음에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이것은 현실감각을 상실한 것과 같다. 마치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자신이 다음에도 80만 분의 1이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을 뒤엎고 또다시 1등에 당첨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과 같다. 살면서 벼락은 두 번 맞을 수 있지만 로또 1등에 두 번 당첨되는 사람은 없다.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그 엄청난 운을 자신이 목표로 한 것에 쏟거나 사업에 쓴다면 훨씬 더 의미 있고 안정적인 성공가도를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토록 낭만적인 유토피아는 없다.
성공이란 자신의 힘으로 서서히 쌓아 올릴 때 의미가 있다. 적은 노력으로 큰 성공을 바라는 것은 씨도 뿌리지 않고 열매를 얻으려는 것과 같다. 불가능에 대한 기대는 인간을 허공에 뜨게 하며 추락은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 어떻게 성공에 다다랐는지 스스로도 모르기 때문에 다시 그곳에 도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자신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면 그 과정을 차분히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존재하지 않듯이 모든 결과에는 직간접적인 요인들이 있기 마련이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면 그것은 단순한 운이 아니라 자신이 그동안 수없이 생각해온 그 어떤 것에 대한 답이 생각지 못한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결코 지나가다 어느 날 우연히 갑자기 엄청난 성공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 모든 것은 기나긴 고민과 성찰의 결과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 연구와 성찰, 공부, 성공과 실패와 같은 것들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서로 다른 영역의 기술도 각각의 쓰임새가 있다. 자신과 다른 생각과 관점, 가치관을 가진 사람의 생각도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이 차이를 받아들일 때 개방성을 유지할 수 있다. 닫아버린 문틈으로는 빛이 새어 들어오지 못한다. 닫힌 창문으로는 바깥세상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마음의 창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다양성은 창의성의 씨앗이 된다. 잘못된 연구에서는 잘못된 부분을 배우며, 다른 사람의 지식은 그가 경험한 세상을 알게 해 준다.
인간은 아는 만큼만 상상할 수 있다. 알지 못하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한다. 지구 밖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지구가 온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다. 지구를 중심으로 밤하늘에 보이는 모든 별들이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결코 고정되어 있는 별들을 회전하는 지구 위에서 보고 있는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창의성이란 기존의 다양한 경험과 지식들이 융합되어 새롭게 엮어질 때 발휘된다. 백지에서 갑자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그려질 수는 없다. 매체는 백지이나 그곳에 그려지는 그림은 화가의 인생과 경험, 공부가 그의 붓끝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세상에 결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모든 성공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실패와 숨은 노력이 있다. 성공의 이면을 보지 못한 채 빛나는 영광만을 눈에 그릴 때 우리는 쉽게 좌절한다. 나와 그 사람이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우열을 가리는 것과는 다르다. 세상에는 수많은 해법과 접근 방식이 있다. 어떤 사람이 이 방법으로 걸어가 정상에 도달했지만 정작 나는 그 길을 따라가도 중간에 멈춰 설 수도 있다. 무작정 따라 하는 것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난제들이 우리 삶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어떤 방법이든 반드시 ‘자기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들을 보고 배우되,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끊임없는 시도와 실험을 통해 가능해진다. 어떤 사람은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이 좋은 반면, 어떤 사람은 두세 권의 책을 조금씩 읽어가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책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재미를 느끼고 나와 다른 세상을 간접 체험한다는 목표는 같지만 책을 탐독하는 방법은 서로 다르다. 누군가에게 독서에 대한 필요성을 배우는 것과 그가 책을 읽는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물론 처음에는 무작정 따라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내가 지속할 수 있고 질리지 않고 계속해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방법을 찾는 것이 필수적이다.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동기부여란 우리가 살아가면서 밥을 먹는 것과도 같다. 인간은 에너지가 없이는 움직이지 못한다. 그것은 육체적인 것도, 정신적인 것도 마찬가지다. 동기부여는 자동차에 기름을 채워주는 것과 같다. 기름이 떨어진 자동차는 멈춰 서고 만다.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계속해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해가는 것. 그리고 그 목표들을 하나의 거대한 인생의 목표와 의미로 이어가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은 모두 이런 과정의 연장선에 있다.
먼길을 가다 보면 가끔 휴게소나 졸음 쉼터에서 쉬어주어야 한다. 그런 휴식의 과정이 우리의 마음과 감정에게는 조용한 자기만의 시간이다. 내달려온 시간들을 뒤로한 채 잠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것은 우리 마음에 차분함을 주고 불안을 잠재워준다.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비어있는 곳간에 곡식을 채워주고 허기진 마음에 에너지를 공급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쉬엄쉬엄 계속 가야만 한다. 천천히 변화되어가야 한다. 사회적 지표에서 내가 어디쯤 왔는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가 얼마나 빠른지에 조바심을 내기보다는 어제의 나, 한 달 전의 나, 일 년 전의 나와 비교하고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 스스로 판단해보아야 한다. 마라톤에서는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것이 완주의 가장 핵심 포인트다. 나보다 빠른 사람을 바라보며 속도를 올렸다가는 42.195km라는 긴 레이스의 종지부를 찍을 수 없다.
무엇이든 끝을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우리 인생이 꼭 그런 것이다. 우리가 생의 마지막에 묘비명에 어떤 것을 새길지 현재로써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속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리 한계를 정하고 자신이 원래 뛸 수 있었던 높이까지 뛰지 못하게 된 벼룩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목줄을 풀어줘도 도망가지 않는 낙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묶여 있기보다는 뚜벅뚜벅 오늘의 한걸음을 내딛는 꾸준함만이 우리가 원하는 행복에 다다를 수 있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