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적응’능력은 많은 것을 당연하게 만든다. 당연한 세상은 행복과 감사는 줄어들고 불평과 불만이 솟구친다. 재화의 한계효용이 낮아질수록 귀중함은 무시되고, 관계가 깊어지면 사랑과 소중함은 풍화된다. 당연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좋겠다. 존중과 사랑, 소중함,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면 양날의 검인 적응능력의 사용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
소비자가 재화를 소비할 때 거기서 얻어지는 주관적인 욕망 충족의 정도를 효용이라 하고, 재화의 소비량을 변화시키고 있을 경우 추가 1 단위, 즉 한계 단위의 재화의 효용을 한계 효용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재화의 소비량이 증가함에 따라 필요도는 점차 작아지므로, 한계효용은 감소해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더운 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셨다면 굉장히 기분도 좋고 커피의 맛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두 잔, 세 잔 연거푸 마실 경우 똑같은 한 잔의 커피이지만 그것을 음용함으로써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은 줄어드는 것과 같다.
처음에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었다면 그다음에는 바닐라, 딸기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 먹거리에 질렸다면 영화를 보거나 원하는 물건을 살 때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 훨씬 더 클 것이다. 이처럼 각각의 소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 다를 때, 한계효용이 낮은 소비를 그만두고 한계효용이 높은 소비로 변경한다. 동일한 소비를 통해 더 많은 만족감을 얻을 수 있고, 우리는 조금 더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게 된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즉 같은 것을 더 많이 가지더라도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은 점점 더 줄어드는 것은 ‘적응’과 ‘필요성’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볼 점이 있다.
인간은 가진 것에 적응을 하고 한번 경험해본 것은 흔한 것이 된다. 새로움에 대한 가치가 떨어진다. 예를 들어, 처음 터치 스크린이 등장했을 때 이 화면을 손으로 누르는 것만으로 실행되는 엄청난 기능은 한계 효용이 대단히 높았다. 신기술에 열광하며 사람들은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터치스크린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폰을 구매했다. 하지만 이들은 곧 터치스크린 기능에 ‘적응’한다. 더 이상 터치스크린 기능은 새롭지 않고 흔한 것이 된다.
이때부터 터치스크린의 한계효용은 감소된다. 사람들은 더 이상 비싼 돈을 주고 터치스크린 기능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때 공급자들의 선택지는 두 가지가 된다. 하나는 터치스크린 기능의 가격을 떨어트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거나 더 향상된 기능이 탑재된 2세대 터치스크린, 예를 들면 감압식에서 정전기식 터치스크린으로 개선한 신제품을 시장에 내어놓는 것이다. 시장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이런 경향을 충분히 체감할 수 있다. 갤럭시 S10의 인기가 주춤할 때 즈음이면 갤럭시노트10이나 S20을 출시해 새로운 모델을 선보이고 이는 사람들의 이 출시되고, 갤럭시 S10의 가격은 인하되거나 지원금을 많이 책정해 꽤나 저렴하고 좋은 조건으로 변경된다. 사람들이 이제 철 지난 물건에 많은 돈을 지불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것은 적합한 판매전략이다. 이제 사람들은 유행은 조금 지났지만 사용에는 큰 불편이 없는 물건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는 것에 또 다른 만족감을 얻는다. 줄어든 한계효용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재화는 필요도가 높은 것이라도 소비자의 손에 들어오는 수량이 많으면 그 한계효용은 낮아지며, 대가를 적게 지급하려고 한다. 물은 인간의 몸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필수 물질이지만 우리는 물을 비싼 돈을 주고 사려고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흔하기 때문이다. 흔하기 때문에 비싼 금액을 지불하지 않고도 쉽게 구할 수 있고, 오백만 원을 내고 에어컨은 구입하지만 생수 한 병을 구입할 때는 십원 단위로 단가를 따진다. 한 달 동안 물을 펑펑 쓰고도 몇만 원의 수도세를 아까워한다. 이것은 물이 흔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물을 돈을 주고 산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은 그만큼 ‘당연한’ 것이었고 충분한 공급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물의 가치가 예전보다 올라갔다. 사막에서 물 한 모금이 소중한 것처럼 깨끗하고 먹을 수 있는 물은 빠른 속도로 한계효용이 올라가고 있다. 정수기가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것도 마찬가지의 현상이다. 사람들이 깨끗하게 정수된 물을 마시기 위해 충분히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집마다 정수기는 한 대면 충분하다. 그 이상으로 정수기는 필요 없다. 정수기의 한계효용은 1대일 경우에는 100이지만 2번째 정수기로 넘어가면 0이 된다. 2대의 정수기를 통해 추가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재화로부터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은 양이 많아질수록 점점 줄어든다. 더운 날 시원한 생수 한 병을 벌컥벌컥 마실 때의 만족감은 엄청나지만, 갈증이 어느 정도 해갈된 후에는 더 이상 물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때부터는 같은 생수 한 병이 추가로 주어지더라도 당장은 아무런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생수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지만 우리에게 그 생수는 전혀 필요하지 않기에 가치가 떨어진다. 이와 같은 것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법칙은 우리의 감정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대략 3개월에서 6개월이다. 사랑 또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따른다. 처음 만난 상대방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내게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 때는 나를 한번 쳐다봐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행복해진다. 문자에 짧은 답장이라도 보내주면 하늘을 날 듯이 기분이 좋으며, 영화관에서 몇 자리 떨어진 곳에만 앉아있어도 두근거린다. 시간은 지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관계가 된다. 매일같이 문자를 주고받고, 선물을 주고, 저녁이면 영상통화를 한다. 매일 만나 데이트를 하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식사를 한다. 영화를 함께 보는 것은 일상이 되었고 두 사람은 언제나 눈을 마주친다. 상대방은 나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모든 관심을 나에게 쏟는다. 시간이 지난다. 이제는 문자를 보내도 답이 늦는 것 같다. 영상 통화에서 나만을 바라보지 않고 틈틈이 딴짓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전처럼 두근거리지 않고, 분명 바라왔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데도 만족감은 덜하다. 왠지 사랑이 식어버린 것 같고, 상대방의 호의가 진실되지 않게 느껴진다.
해석하자면 이렇다. 상대방이 사랑을 무한정 공급해주지 않고, 자신에 대한 관심마저 없던 시절에는 그와 함께하는 잠깐의 순간에 대한 한계효용은 굉장히 높았다. 그가 어쩌다 보내주는 답문자 한 통에도 큰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고 이제는 자신의 주위에 상대방의 관심과 사랑이 충분해졌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고 바라왔던 상황이건만 이상하게도 처음의 마음과 달리 생각보다 만족감이 크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은 ‘당연’해지고 존재와 관계의 소중함은 무뎌진다. 이미 가진 것에 대한 한계효용이 뚝뚝 떨어져 간다. 계속해서 더 많은 사랑과 관심, 인정, 그리고 더 큰 무언가를 원하지만 그런 것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사랑에는 무감각해지고 관계에는 권태기가 온다. 충분한 사랑에 적응했고, 한 사람이 줄 수 있는 사랑은 한정적이다. 설상가상으로 사랑을 할 때 분비되는 도파민과 같은 호르몬마저 줄어든다. 대부분의 '인스턴트식' 사랑은 이처럼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끝이 난다.
인간은 과연 언제쯤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얼마나 가지면 만족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질문은 정말로 ‘답’이 없다. 행복에 대한 유일한 답이 있다면 현재를 행복한 순간으로 만드는 것뿐이다. 계속해서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 끊임없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새로운 요소를 발견하고 개발해야 한다. 행복과 만족에도 분명한 유효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결코 영원히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환상의 비약 같은 것은 없다.
인간은 뛰어난 적응력으로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 금세 질리는 것은 인간의 뿌리 깊은 성향이다. 로또 당첨자의 비극은 이런 성향을 잘 보여준다. 300만 원의 월급을 받는 샐러리맨이 버는 돈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을 모으면 3억 6천만 원을 모을 수 있다. 30년 정도를 꾸준히 일했을 때 대략 10억 정도를 번다. 물론 이것은 전혀 돈을 쓰지 않았을 때다.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은 퇴직할 즈음에도 퇴직금을 제외하면 수중에 1억 도 없다. 이에 반해, 로또 당첨자들은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의 당첨금을 받는다. 이 돈은 산술적으로만 따져봤을 때는 자신이 수십 년을 고생해도 절대 모을 수 없는 돈이기에 남은 인생은 당연히 행복감을 누리고 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돈이 주는 행복감도 유효기간이 있다. 로또 당첨자의 행복은 대략 9개월 정도 간다.
헤아릴 수 없는 돈이라고 해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행복감을 선사해주지는 못한다. 로또 당첨자들의 비극은 ‘ㄴ’이 ‘ㄱ’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일종의 역행이다. 돈이 주는 행복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지만 그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돈은 점차 ‘독’이 되어간다. 돈은 그 자체로는 위험하기만 할 뿐 우리 삶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돈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만 바라보며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은 올바르게 사용함으로써 그 소비를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추가적인 만족감을 생산해낼 때 수단으로써의 돈의 가치를 발현할 수 있다.
갑자기 많은 돈을 갖게 된 사람들은 그 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 주위 사람들에게 당첨 사실을 숨기고, 이것은 사회로부터의 단절을 부른다. 어떤 곳에 투자하고 어떻게 저축하고 그 돈을 굴려야 할지 막막하지만 불안함에 누구에게도 맡기거나 공개하지 못한다. 결국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 함부로 투자하거나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도박에 빠져 현실감각을 상실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은 돈이 ‘독’으로 변해가는 패턴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더불어 큰돈으로 인한 가정의 불화가 더해진다. 부부라는 공동체가 깨어지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돈이 큰 역할을 한다. 로또 당첨자가 가진 큰돈을 당사자가 자의로 충분히 분배하지 않는다면 그 돈을 합법적으로 받을 방법은 이혼을 통한 위자료 외에는 없다. 물론 다른 수많은 좋은 방법을 만들어갈 수 있겠지만 당장의 큰돈에 이성이 마비되고,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은 시야가 좁아지고 근시안적인 사고밖에 할 수 없게 된다. 수십 년을 동고동락해온 가족들이 돈 하나에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은 무척 가슴 아픈 사회의 단면을 절절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란 곧 ‘행복의 유효기간’을 말해주는 것과 같다. 결핍과 필요는 인간에게 대단히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한다. 부족하기에 노력하게 되고, 필요성을 느끼기에 무거운 엉덩이를 뗄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을 가진 상태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상태와 같다. 그런 상태에서는 삶이 정체된 것처럼 여겨진다. 스스로 새로운 목표를 정할 줄 모르고 수단을 지상목표로 살아온 경우에는 그 멍해짐이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수단은 활용해야 하는 것일 뿐, 그 자체로써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며 궁극적인 목표나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 비틀어진 목표는 현재를 불행하게 만들고, 행복의 유효기간을 더욱 짧게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