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문 앞에 도착한 미래

시간을 종이 접듯 건너뛸 수 있다면

by 작가 전우형

오늘이 다시 내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다면 현재에 충실할 수 있었을까. 한 번 걸어온 길은 되돌아갈 수 없고 다만 되돌아볼 뿐이다. 어제가 된 오늘의 흔적이 남아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삶의 발자국 하나를 인생길에 온전히 남길 수 있는 것은 축복이기에. 하루하루에 충실하자고 다짐하면서도 먼 미래를 눈앞에 가져다 놓으려 애쓰는 나를 본다. 시간을 종이 접듯 건너뛰고픈 욕구에 사로잡힌다. 시작과 끝만 존재하고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면. 아니, 이루어진 미래를 미리 확인한 후에 과정을 걸을 수 있다면. 모래 속으로 푹푹 빠져드는 더딘 현재가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을까.


시간의 축약은 흐른 뒤에만 가능하다. 빨리 감기가 가능한 미래는 없다. 하지만 늘 나는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에 온몸을 꽁꽁 싸맨 채 하루를 신음한다. 뼈다귀밖에 남지 않은 과거에 골몰하고 불러도 오지 않는 미래에 낚싯줄을 던진다. 있는 힘껏 낚싯대를 휘둘러봐도 해는 걸리지 않는다. 바늘이 떨어지는 지점까지가 내가 낚을 수 있는 미래다. 터무니없이 짧고 보잘것없다. 낚싯줄의 길이와 던질 수 있는 힘이 거기까지일 뿐인 것을. 현실을 외면하고 눈앞에 보이는, 멀어 보이지 않는 해를 어째서 낚을 수 없는지 고민하고 푸념한다. 우스운 하루는 되풀이된다.


그럼에도 해를 바라보는 것은 가끔 따뜻하기 때문이다. 그 눈부심이 나를 기분 좋게 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어떤 순간을 상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찬란함이 비록 나와 수억 km 떨어져 있다고 해도 그 잠깐의 위안이 현재의 나를 보듬어줄 수 있다면. 그 잠깐의 온기가 현재의 냉기를 밀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가끔 상상에 빠진다. 미래의 상자를 상상의 문 앞에 가져다 두고 벨을 누른다. 뛸 듯이 기뻐하며 문을 벌컥 열고 미래를 꾸러미 꾸러미 풀어본다. 포장을 뜯고 맛보고 입어보고 사용해본다. 하지만 그뿐이다. 거기서 상상을 걷어차버린다.


기다림은 지루하지만 소중하다. 그 지루함이 별 것 아닌 미래를 가슴 뛰는 것으로 만든다. 막상 손에 들어오면 시들해지는 것들이 많다. 미래도 마찬가지다. 데이트 장소에 가는 길처럼,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릴 때처럼, 택배가 어디쯤 왔는지 찾아보는 것처럼, 답장을 기다리는 순간처럼, 미래도 기다리는 그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 미래를 잡아당길 수 없는 건 축복이다. 이미 뚜껑을 열어본 미래는 설렘이 없다. '어쩌면'이라는 희망이 참 소중하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는 끝나지 않은 삶을 의미한다. 영화 중반부처럼 아직 뒷 이야기가 남은 인생이고 싶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오래 보고 싶다. 기다려지는 드라마처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삶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충실한 오늘뿐. 그래서 또 이렇게 뒤통수를 긁적이며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마음의 비밀번호를 잃어버린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