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쓰는 밤

소란한 마음에 도망가버린 밤을 쫓아서

by 작가 전우형

실수로 잠이 달아나버렸다. 시곗바늘은 자정을 한참 지났지만, 새벽은 아직 멀기만 하다. 고요 속에서 숨소리만 밤공기를 두드린다. 삶의 어두운 면을 들여다보기에 지금의 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밝다. 캄캄한 밤에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자욱한 밤공기가 밤의 안갯속에서 공명하는 순간에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밤에도 밤이 없다. 밤을 만나려면 밤에도 밤을 찾아 헤매어야 하고, 밤을 기다려야 한다.


겨울은 그래도 밤이 풍부한 계절이었다. 하지만 동지를 불과 며칠 앞둔 지금까지도, 해는 퇴근을 앞당겼으나 수많은 인위적 발광체들이 아스팔트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하나의 구체로 내리쬐던 빛이 산산이 부서졌을 뿐, 밤은 본연의 어둠을 잃어버렸고 눈부심은 여전하다.


별도 달도 허물어진 밤의 간판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밤을 노래하는 것뿐. 보이던 것들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낮이건 밤이건 같은 풍경에 같은 사물들 뿐이다. 밤은 대체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걷어차이고 괄시받다가 지쳐버린 걸까.


밤을 싫어하던 때가 있었다. 밤이 무섭기만 하던 나이가 있었다. 밤을 기꺼워하게 된 건 혼자가 편하다고 느낀 어느 시점부터였다. 사람이 싫어진 건 아니었다. 다만, 많은 사람의 숨소리가, 크고 작은 언어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그 메아리치는 혼잣말들이 혼재된, 인구밀도가 너무 높은 순간들이 언제부터인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듣는 이 없이 각자의 입장과 주장만 반복되는 순간순간에 대한 염증이 커지고, 갈등의 봉합보다는 그저 사나운 감정의 소용돌이로부터 비켜서고픈 욕구만 간절해졌다.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독화살 같은 비난과 말의 사선으로부터 잠깐이라도 멀어질 수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이 잠들고 사라진 순간을 소망하고 상상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사람들에게서 세상이 잠깐이라도 피로감을 잊고 쉴 수 있는 순간. 그런 순간은 오로지 밤뿐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밤은 점점 더 자리를 잃어가는 것 같다.


그나저나 나는 어째서 이 밤에 있지도 않은 밤을 글에 담고 있는 걸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밤과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은 나일지도 모른다. 아우성치는 수많은 소리들 가운데 한 순간도 고요함을 찾지 못한 나는 적절한 서랍장 하나 마련하지 못한 채 흐트러진 마음을 그저 방치해두고 있다. 눈은 밤을 향해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대낮의 시내 한복판이다. 정작 정리하고 싶었던 것은, 조금이라도 조용했으면 하고 바랐던 것은 밤도, 세상도, 사람도 아닌 내 마음이었다는 걸. 결국 이렇게 마지막 줄에 와서야 슬며시 깨닫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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