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라는 이름은 선명이 지어준 것이었다. 선명이 후를 만난 건 7년 전. 후는 집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집을 가득 채운 악의가 가슴을 답답하게 했고 귀를 막아도 싸늘한 언어가 고막을 두드렸다. 후는 '우리 집'이 아니라 '그 집'이라고 했다. 집과 가족은 '우리'라는 말의 쓰임새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후는 살기 위해 도망쳤다. 그러나 '다섯'이라는 숫자는 홀로서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여름밤은 차라리 견딜만한 편이었다. 하지만 5살의 걸음은 너무나도 보잘것없었다. 한참을 달려온 노력이 무색할만큼 목소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익숙해서 더 듣기싫은 목소리. '엄마'의 목소리였다.
"승원아! 어디 있니? 승원아!"
나는전리품이었고 돈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부터 '나'라는 존재에는 어떤 액수의 몸값이 매겨졌다. 입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는 아빠를 왜 그렇게 싫어해?"
"그런것도 묻고, 다컸네 우리아기. 엄마랑 아빠는 싸우는 게 아니고 서로 의견이 조금 다른 것뿐이야."
"근데 왜 아빠만 보면 욕해? 좀 전에도 그랬잖아. 미친놈 술독에 빠져 죽어버리라고."
엄마는 손을 내저으며 부인했다.
"승원아,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가 언제?"
"했잖아 좀전에도. 어제도 그랬고. 매일 매일 아빠한테 욕했잖아."
그때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동자를 기억한다.
엄마는 수시로 내게 묻고 확인했다.
"승원아, 좀전에 엄마가 한 말 들었어?"
처음엔 내게 들리는 그 말들이 아직 입 밖으로 내뱉어지지 않았다는걸 몰랐다. 하지만 엄마의 그런 행위가 반복되자어린 나도 비로소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정도 확신이 선 엄마는 아빠에게도 나에 관한 걸 털어놓았다. 두 사람은 흥분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더니 인터넷을 검색하고 전화를 돌렸다. '연구소', '박사' 등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오갔고 등 너머로 웃음소리도 들렸다.
엄마아빠는 늘 다퉜다. 나를 미루기 바빴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서로 나를 맡겠다며 싸웠다. 미친 현실이 나를병들게 했다.
"세상에, 지금도 듣고 있는 거 아냐?"
"괜찮아, 애가 무슨 말인지나 알겠어?"
물론 나는 엄마아빠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갓 태어난 아이도 선명한 악의는 알아본다. 독사 같은 언어가 경종을 울릴 때마다 날카로운 쇳소리 같은 것이 머리를 할퀴고 지나갔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짜릿한 전류가 흘렀다. 아이들은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우는데 나는 피하기 위해 울었다. 내게 다가오는 그들이 싫어서 울었다. 유일한 기댈 곳인 엄마가 혐오스러운 기분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무작정 목소리가 작아지는 방향으로 달렸다.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골목을 심장이 허락하는 만큼 달리고 또 달렸다. 어스름이 내리고 밤이 찾아왔다. 벽의 그림자에 주저앉아 등을 기댔다. 무엇인가 등 뒤로 쑤욱하고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늘을 올려보았다. 별이 가득했다. 그 별들은 나처럼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집이 그리워서가 아니었다. 밤이 무서워서도 아니었다. 그때 멀리서 한 쌍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 눈동자에서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눈동자가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도망치지 않았다. 다만 궁금했다. 첫 번째 질문은 "아줌마는 왜 아무 말도 안 해?"였다. 그녀는 경악에 물든 얼굴로 이렇게 되받아쳤다. "아줌마?"
그녀는 특별히 내게만 주는 것이라고 했다. 종이컵에는 반으로 접힌 호떡이 들어있었다. 나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녀는 호떡을 내민 채로 내게 말했다. 똑 부러지는 음성이었다.
"누난 '이선명'이라는 사람이야. 아줌마가 아니고. 너는?"
"나는... 대체 뭘까?"
"잠자리에 오줌 싸서 쫓겨 나왔을 아이가 하기에는 너무 심오한 질문이네? 배 안 고파?"
"고파."
그녀는 그런데 왜 호떡 안 받아가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역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좀 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이답지 않는구나, 넌. 여자 눈을 그렇게 빤히 보는 건 실례야. 집에 데려다줄까?"
나는 고개만 저었다.
"그럼 잘 곳은 정했어?"
나는 또 고개만 저었다.
"그럼 오늘 밤만 누나 집에서 잘래?"
"그래도 돼?"
"아줌마 대신 누나라고 부르면 허락해줄게."
빤히 올려다보는 나를 보며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널 뭐라고 부르면 될까?"
그녀를 따라 걸었다. 내가 있던 곳은 아무런 빛도 없는 벽의 저편이었다. 그녀는 나를 어떻게 본 걸까? 그때 그녀가 말했다.
"울음소리가 들렸어."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나는 울지 않았다.
"아니, 너는 울고 있었어. 아주 펑펑, 골목이 쩌렁쩌렁할 정도로 들렸지."
돌아선 그녀가 양팔을 벌렸다. 다가가지 못했다. 그녀가 다가와 나를 안아줬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이 세상에 널 이해할 사람은 나밖에 없을걸? 넌 운이 좋은 거야."
내가 운이 좋다고? 이런 내가?
"그럼. 날 만났으니까. 오늘부터는 이 '누나'가 널 지켜줄게."
끈질긴 누나였다. 그녀를 따라 걸었다. 이상하게도 그녀 옆에 있으면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정했어."
"뭘?"
"네 이름 말이야..."
그녀는 잠시 뜸을 들였다. 숨이 멎어버릴 것 같은 몇 초가 영원처럼 맴돌았다.
"'후'가 어떨까? 성은 누나 걸 따서 '이후', 어때?"
"뭐든 좋아. 무슨 뜻이야?"
"나중에 알려줄게. 마음에 들어?"
"응"
그게 무엇이든지.
후는 명이 이모를 누나라고 불렀다. 그녀는 그 호칭을 꽤나 기꺼워하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명이 이모는 후의 새로운 보호자가 되었다. 후는 명이 이모를 만난 후로 더 이상 타인의 마음이 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후는 나를 만났을 때 내뱉지 않은 나의 비명을 다시 듣고 말았다. 그가 겁이 난 것도 당연했다. 타인의 마음을 듣는 것은 지옥이었으니까.
후가 명이 이모를 만난 7월 8일은 후의 새로운 생일이 되었다. 후를 데려온 날 맨 김에 따뜻한 밥을 싸서 간장에 찍어 주었는데 허겁지겁 먹던 후가 급체하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그리고 첫 번째 생일날 명이 이모는 후에게 이름의 의미를 말해주었다고 한다.
"대단한 뜻은 없었어. 후가 그날 그랬잖아. 나는 대체 누구냐고. 그래서 후(who)라고 지었지."
"에이, 뭐야 그게. 너무 대충 지은 거 아냐?"
"대충은... 딱 좋기만 한걸. 너도 마음에 들어 했잖아."
"그야 그러긴 했지. 그럼 여전히 나는 제대로 된 이름이 없는 거네?"
그녀는 양손을 허리춤에 얹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후'라는 멋진 이름이 있잖아."
어쩐지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아끼던 이름을 도둑맞은 것 같았다. 그녀가 입을 삐죽이는 나를 안아주며 귀에 속삭였다.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 이름은, 다른 사람이 너를 부를 때만 필요한 거야. 너는 그냥 너야. 어떤 이름도 널 구속하지 않는단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천천히 생각해보렴. 네가 어떤 결론에 다다랐을 때, 그때도 지금의 이름이 마음에 서운하게 느껴진다면 누나가 새 이름을 지어줄게. 어때?"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심술에는 자기도 모를 이유밖에 없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녀가 케이크를 크게 한입 떠서 넣어주었다. 달콤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