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중심성을 벗어나고 싶다면

하늘을 보렴

by 작가 전우형

달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면 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단다. 자, 봐. 지금은 달이 오른쪽을 가리키고 있지? 그럼 해는 저 쪽에 있다는 거야. 그런데 참 재미있지 않니? 사실 해는 가만히 있는데, 우리가 태양의 주위를 빙빙 돌고 있는 건데 우린 늘 태양이 이쪽에서 떠서 저쪽에서 진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단다.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서 생각하려면 연습이 필요하단다. 지금 네가 서 있는 자리에서 서서히 떠오른다고 상상해보렴. 네가 하나의 점이 되고 네가 살던 동네가 성냥갑처럼 작아지고 우리나라가 한눈에 보이기 시작할 거야. 파랗던 하늘은 점차 아무 빛도 없는 어둠이 되고, 평평한 줄 알았던 지구의 굴곡이 슬며시 드러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지구마저도 하나의 공처럼 둥글어질 거야. 그러고 나서 태양을 보렴. 태양은 처음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단다. 그건 그만큼 태양이 엄청나게 멀리 있어서야. 조금 더 가볼까?


이제 멈춰도 된단다. 이제 지구와 태양과 달을 다시 보렴. 지구가 빙글빙글 돌면서 태양의 주위를 돌고 그런 지구 주위를 달이 따라 도는 모습이 보일 거야. 지구가 태양을 1년에 한 바퀴씩 도는 거대한 타원형의 궤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궤도가 한눈에 들어올만한 거리에서 보면 그런 식으로 태양의 주위를 도는 게 지구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돼. 종종 들어봤지?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이 중 명왕성은 행성이 아닌 걸로 밝혀졌으니 '해'에서 끝나는 게 맞겠구나.


우린 '지구'라는 태양 주위를 빙빙 도는 8개 행성 중 3번째 행성의 얄팍한 껍데기 위에 가까스로 붙어 서 있는 거란다. 실제로는 태양을 비롯한 저 수많은 별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우리가 늘 움직이고 있는 거지. 하지만 이상하지 않니? 우린 우리가 스스로 움직일 때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실제로는 엄청난 속도로 우주라는 공간을 유영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단다. 이건 자기 혼자서는 자기가 정말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음을 알려준단다. 우리가 혼자 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해. 아무런 자각 없이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가 가진 자기 중심성 때문에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단다. 마치 나는, 지구는 가만히 있는데 하늘과 태양과 별과 달이 우리 주위를 빙빙 돈다고 믿었던 중세시대 사람들처럼 말이야.


한 번 무언가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나면 그걸 뒤집는 건 쉽지 않은 일이란다. 진실의 무게는 가볍지 않거든.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있던 걸 그대로 믿고 싶어 하는 성질이 있단다. 내가 믿던 진실이 실은 진실이 아니었다는 걸 쉽게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어. 하물며 그 진실이라고 믿어지던 것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던 많은 사람들이 공통되게 받아들이던, 당연시되던 그 무엇이었다면,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일에는 엄청난 저항이 뒤따른단다. 어쩌면 그는 미치광이 취급을 받거나 사회로부터 철저히 배제당하고 유리될지도 몰라.


그럼 이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달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면 태양이 어느 쪽에 있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어. 지금 달의 볼록한 부분은 저쪽을 향해 있구나. 그럼 태양은 지금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저쪽 지평선 너머 어딘가에 있겠구나. 하지만 이젠 알 수 있겠지? 태양이 저쪽에 있는 게 아니란다. 단지 우리의 위치가 태양을 그렇게밖에 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지. 태양은 늘 거기에 있었단다. 바꿔 말하면 세상은 늘 거기에 있어.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보던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야. 세상은 우릴 향해 다가와주지 않아. 우리가 스스로 돌아서야 해. 그리고 다가가야 하지. 그 대상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아니면 어떤 현상이건 마찬가지란다. 어떤 사람은 늘 네 곁에 있었을지도 몰라. 네가 그를 보지 못한 건 그가 네 곁에 없어서가 아냐. 네가 그 사람을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네가 보는 모습이 세상의 진실이라고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처럼 네가 아는 현재의 그의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단다. 진실에는 시간이 필요해. 우리의 시간은 생각보다 짧단다. 어떤 진실은 평생을 걸쳐 살펴봐도 제대로 알 수 없어. 우리가 80년을 살아도 계절의 변화를 160번에서 320번밖에 못 봐. 우리가 무언가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란 그만큼 제한적이란다. 그 얼마 안 되는 기회 속에서 계절의 변화라는 것이 타원형으로 이루어진 지구의 태양 공전궤도와 23.5도 정도 기울어진 지구의 자전축, 그리고 위도에 따라 태양광을 받는 시간이 변화됨에 따라 이루어지는 부산물에 불과하단 걸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우린 그저 날이 좀 따뜻해졌네. 잎이 나고 꽃이 피었네. 나무가 파래지고 잎이 풍성해졌네. 비가 많이 오네. 날이 무덥네. 열매가 무르익었네. 낙엽이 졌네. 날이 서늘하네. 서리가 내렸네. 첫눈이 내렸네. 와 같이 그 속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현상 중 일부를 볼 수 있을 뿐이지.


그러니까, 우린 참 모르는 게 많단다. 설사, 그동안 사람들이 연구를 통해 증명하고 축적해 온 수많은 지식들을 노력만 하면 배울 수 있는 좋은 환경이라고 해도, 우린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단다. 이건 어떻게 보면 현실이라기보다도 '태도'라고 할 수 있어. 내가 아는 건 세상의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태도. 그리고 그 마저도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태도.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려면 가장 먼저 겸손해져야 해. 겸손하다는 건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걸 겸허하게 인정하는 거란다. 그런데 이걸 인정하려면 고집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단다. 내가 최고라는, 내가 아는 게 전부라는, 내 의견만이 참이고 선이라는 그런 고집들 말이야. 그런 고집들이 자기 중심성 속에서 내 안에 갇히면 '아집'이 된단다.


고집스러워질 때면 하늘을 보렴. 하늘을 보면 저절로 겸손해지게 돼. 우린 도저히 우주의 끝을 알 수 없거든. 세간에 떠도는 몇 가지 이야기들만 종합해봐도 우주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별들. 그중 하나일 뿐인 태양. 별들의 입장에서 우리와 아주 '조금' 가까울 뿐인 태양이 있는 동안에는 우린 별을 볼 수 없어. 지금 보는 태양은 8시간 전의 모습이래. 그리고 우주의 모습은 헤아릴 수 없는 과거의 별빛들이 혼재되어 있다고도 하고. 그중 일부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과거에 쏘아 올린 빛이 이제야 우리가 있는 곳에 도달했을 뿐이래. 그럼 대체 뭐가 현재고 뭐가 미래고 뭐가 과거일까? 우린 과거의 우주 속에 살고 있는 건가? 그러니까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벗어나 입이 떡 벌이지게 하는 우주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들에 조금만 귀를 기울이다 보면, 도무지 내가 아는 것들이 세상의 전부라는 생각 따위 할 수도 주장할 수도 없는 거야.


세상엔 참 용감한 사람들이 많단다. 대체 무얼 믿고, 무얼 근거로 그토록 자기 말이 맞다고 떠들어대는지 듣다 보면 아득해질 때가 있어. 물론 그런 자신감이 소중할 때도 있어. 어떤 때는 하나의 생각만이 옳다고 믿고 밀어붙여야 하는 순간들도 필요할 거야.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잊지 말았으면 해. 우린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일부란 걸. 우린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단 걸. 우린 우리 스스로도 거울 없이는 전부를 보지 못한다는 걸. 우리가 보는 건 순 껍데기뿐이라는 걸. 말하다 보니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구나. 이걸 두 글자로 합치면 '겸손', 그래 겸손이야. 우린 조금 더 겸손할 필요가 있단다. 그러니 종종 하늘을 보렴. 태양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내가 태양을 그렇게밖에 볼 수 없는 위치로 바뀌고 있다는 걸 늘 자각하렴. 그럼 넌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