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참 그렇지?

by 작가 전우형

곰곰이 생각해보면 말이야. 내 삶에 꼭 그렇게 나쁜 일들만 있었던 건 같진 않거든?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울분에 차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늘 불안했고, 쫓기듯 살았고, 세탁기 빨래 돌아가듯 쉴 틈이 없었던 것 같아. 사는 게 참 그렇지? 뭐 그렇게 대단한 걸 바랬던 건 아닌데. 사소한 것들에 실망하고 상처 입고하는 게. 이까짓 거 상처입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지나고 보면 내내 그날만 떠올리고 있었던 거야. 살아남아보겠다고 아등바등 숨이 턱 끝에 차오를 때까지 달려도 늘 누군가의 등 뒤고. 주목받는 건 늘 저쪽인 것 같고. 관심받으려는 건 아니었는데. 그런데 왜 입이 쓸까. 입맛이 없을까.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이 쓰릴까...


아파트 창문에서 도로를 내려다보면 말이야. 차들이 쌩쌩 잘도 달리거든? 다들 그렇게 앞다투어 달려가는데 난 쳐다보고만 있는 거야. 나도 차만 있으면 저렇게 달릴 수 있거든? 근데 항상 나한테만 뭔가가 없는 거야. 내가 차를 사려고 대리점에 갔거든? 근데 딜러 눈에도 내가 차를 사러 온 것처럼 보이진 않았나 봐. 날 이렇게 보더라고. 내가 차를 그렇게 보고 있었거든. 얜 얼마 짜릴까. 더럽게 비싸네. 몇 년 동안 받는 용돈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어림도 없는 금액이네... 딜러도 날 보면서 비슷한 마음이었겠지? 얜 몇 살일까? 돈도 없어 보이는데. 60개월 무이자로 해준다고 해도 할부금도 못 갚을 상인데... 오른쪽 구석, 그러니까 입구에서 멀면서도 바깥에서 유리창으로는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제일 비싼 차가 서 있더라고. 8 뒤에 0이 7개쯤 붙어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문을 탁 닫고 앉아보는데 딜러가 내 쪽을 슬쩍 노려보더라고. 아주 잠깐이었지만 난 분명히 느낄 수 있었어. 내가 모를 줄 알았겠지?


뭐랄까? 앞 좌석은 매력적이진 않았어. 뒷 좌석에 옮겨 타 봤지. 우와... 정말 넓고 푹신하더라고. 다리를 앞으로 쭉 뻗어도 등받이에 안 닿는 거 있지? 대박! 구경을 마치고 대리점을 나서는데 딜러가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재빨리 내가 탔던 차로 가서 세정제며 탈취제를 마구 뿌려대고 손걸레로 빡빡 닦더라고. 아마, 그 사람 자기 집 마룻바닥은 그렇게 열심히 닦지 않을걸?


나한테서 옮으면 안 될 세균이라도 묻은 줄 아나 봐. 허탈하다거나 화가 나거나 하진 않았어. 진짜야.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니까? 근데 그냥... 배가 좀 고프더라고. 근처 식당으로 갔지. 백반집인데 김치찌개가 아주 죽이거든. 식당 이모랑도 아주 베프야. 엄마보다는 조금 못생겼는데 그래도 한 인물 해. 나만 오면 이미 김치찌개를 준비하는 게 눈치도 일품이야. 알지? 장사는 눈치로 하는 거? 적당히 넓고 낮은 냄비에 묵은지와 적당히 익은 김치, 앞다리살, 파, 양파가 빨갛고 말간 국물과 함께 지글지글 끓는 모습이란... 솟아오르다 터지는 그 기포를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침이 꼴깍 넘어가더라니까?


어, 이모? 안타깝게도 이번 건 내 것이 아니었어. 다른 테이블로 가는 걸 물끄러미 바라봤지. 하지만 난 참을 수 있어. 기다리는 건 또 내 전공 아니겠어? 내가 대학은 못 나왔지만 인내심 하난 끝내준다고. 어린이집, 유치원 시절부터 잘 달련된 내공이지. 엄마는 항상 제일 마지막에 날 데리러 왔거든. 친구들이 한 사람씩 엄마로 보이는 사람 손에 이끌려(가끔 아닌 것 같은 사람도 있었거든. 예를 들면 머리가 심하게 하얗다던가...) 사라지는 걸 바라보는 기분은 썩 나쁘진 않았어. 장난감이 풍족하지 않았거든. 코찔찔이처럼 엄마가 언제 오나 만 기다리던 녀석들은 욕심만 득실득실해 가지고는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법을 몰랐어. 그래도 난 그런 것쯤은 대승적 차원에서 참아주기로 했어. 기다리면 됐거든. 그 녀석들이 모두 집에 가면 널브러진 장난감들은 모두 내 차지였으니까. 뭐, 뒤통수가 좀 따갑긴 했지만 다른 애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시간은 나쁘지 않았어. 금붕어처럼 입이 툭 튀어나온 선생은 내가 언제 갈지만 기다리고 있었겠지만. 근데 이상하지. 그 물고기처럼 생긴 여자 말은 내가 제일 잘 들어줬거든? 가지고 논거 제 자리에 정리하라는 것도, 소리 지르지 않고 조용조용히 노는 것도. 그런데도 여전히 뒤통수가 따갑더라고. 그러니까 선생님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던 거지. 엄마한테 뭐라 구시렁댈 수가 없으니까 나한테 했던 것 같아. 하지만 울 엄마도 얼마나 공사다망한데. 난 다 이해할 수 있었어.


아무튼 난 김치찌개가 다른 테이블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어. 이모가 드디어 나에게로 왔어. 기대에 부풀어 뚜껑을 열었지. 엥? 계란찜이잖아? 이모! 또 날 어린애 취급하는 거야? 이제 며칠 있으면 학교 간다고요. 엄연한 학생이에요. 학. 생. 앞에 '예비'라는 말이 붙긴 하지만 이제 계란찜은 졸업할 나이가 되었단 말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계란찜 냄새는 너무 황홀했어. 그 아름다운 빛깔과 부드러운 목 넘김이란. 난 나도 모르게 포크 스푼으로 크게 떠먹었지. 너무 뜨거웠지만 꾹 참고 삼켰지. 엄마가 잠깐 와서 삶은 계란을 하나 까주고 갔어. 바쁠까 봐 일부러 안 불렀는데. 난 참 존재감이 너무 크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