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인생의 몸살기'와 전쟁 중이다.
나이에 대한 느낌은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가보다. 나는 스스로 젊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이미 지나버렸다. 그래서 30대 중반밖에 안된 지금도 이렇게 '나이감'을 느끼는 것일지도. 그 시절은 가끔 되돌아가고 싶지만 결코 다시 걷고 싶지 않은 순간이기도 하다. 이런 과거에 대한 애증은 나만의 특수한 것일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만한 것일까.
금요일 밤 10시. 카페를 정리하고 가족들과 함께 대구로 내려갔다. 오랜만에 어머님을 뵙기 위해서였다. 올초 코로나 사태가 대구 신천지교회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확대된 탓에 대구-경북 일대는 일종의 ‘오염된 대지’처럼 여겨져 왔다. 대구에 살고 있던 어머니와 동생 역시 코로나의 여파를 피해 가지 못했고, 나 또한 대구 쪽으로는 일체 오지 못하도록 선을 그으셨다. 이제 상황은 바뀌어 대구지역은 신규 확진자 0명의 청정지역이 되었고, 그 외 전국 곳곳을 비롯한 해외유입으로 인한 신규 확진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며칠 전에는 신규 확진자 수가 다시 세 자리를 웃돌며 사람들의 인식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지만 그것은 이라크에 근무하던 노동자들을 한국으로 이송하면서 발생한 확진자도 대거 포함된 수치여서 우리나라 내부적으로 다시 코로나 확산이 이루어진다고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사람들이 모이는 곳들을 중심으로 산발적인 집단 확진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어, 안전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듯하다.
코로나 사태가 국내적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는 대구지역은 정말 공포의 도가니였던 것 같다. 실제로 동생이 일하던 치과병원의 한 의사가 확진되기도 해서 동생 역시 14일간의 자가격리 기간을 경험하기도 했고, 함께 지내던 어머니 역시 불안에 떠는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이번 코로나 사망자의 주요 연령대 및 조건이 60대 이상의 고령자였고 기저질환자였다. 어머니는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걱정스러웠다. 부모가 아프면 자식들에게 짐만 지우는 것이라며 부지런히 운동도 하고 일을 하시던 어머니였지만 오십 대 후반으로 넘어가고, 이제 환갑을 지나치면서 한 해가 다르게 부쩍 늙어가시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점점 더 어릴 때 보아왔던 외할머니의 얼굴이 어머니에게서 나타난다고나 할까?
우리 할머니 세대는 정말 일을 손에 달고 사셨다. 외할머니도 마찬가지셨다. 연세가 70이 넘어 허리가 굽으셨는데도 어린 외손주가 오면 이미 일어나서 압력밥솥에 밥을 안치고 새하얗고 촉촉한 쌀밥을 내어주시곤 했다. 그땐 그런 외할머니가 좋았지만 지금 그 모습을 떠올리면 왠지 눈물이 핑 돈다. 이제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모두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모진 세월 살아오셨으니 이제는 좋은 곳에서 편히 지내시리라 온 마음으로 기대하고 바랄 뿐이다.
3시간여를 달려 대구 근교에 도착했을 때 즈음에는 새벽 2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밤길인 데다 비까지 쏟아져 운전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오랜만에 와본 탓에 길까지 잘못 들어 20분여를 돌아 집에 도착했는데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눈이 터질 듯 아팠다. 아내와 아이들을 집 앞에 내려주고 200여 미터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있는데 아내가 우산을 들고 마중 나왔다. 아내도 피곤할 텐데 참으로 고마웠다. 아내 역시 6시간의 강의를 마치고 바로 출발한 터라 몸이 몹시 고되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뜬 눈으로 기다리고 계시다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자 먼저 문을 열어주셨다. 이 밤길에 비도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뭐하러 이 먼길을 내려왔냐며 손사래를 치시면서도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신다. 부모의 마음이란 게 그런가 보다. 걱정되면서도 반가운 마음. 너희들이라도 재미있게 잘 살길 바라면서도 가끔 그리워지는 마음. 나 역시도 아이들을 보며 그런 마음을 가진다. 그래서 이제 조금씩 어머니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피곤했던 탓에 곧 자리를 펴고 누웠다. 스르륵 잠이 들고 깨어보니 아침 7시. 4시간 30분 정도 잠을 청한 것 치고는 개운한 느낌이었다. 어느새 어머니는 아침을 준비하고 계셨고, 아내는 그 옆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들도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어 셋 중 둘은 이미 일어나 있었다. 동생은 아직 제 방에서 자고 있는 듯했다.
두 명이서 사는 집에 도합 일곱 식구가 모였으니 널찍한 상도 좁아 보였다. 그릇도 모자라 오래간만에 묵혀두었던 식기들까지 꺼내야 할 정도였다. 아이들도 덩치가 제법 자라 한 자리씩 꾀차니, 모서리를 피해 앉기에도 부족할 정도였다. 올려진 식기들 중 낯익은 것들이 일부 보였다. 내가 어릴 때부터 써오던 식기들이었다. 나와 거진 나이가 비슷한 식기들. 왠지 그것들을 보고 있으니 내가 골동품처럼 여겨졌다. 저런 것들이 아직도 있다니. 요즘 십 년 쓰면 많이 쓴다고 하는데, 30년 가까이 된 것들을 보니, 나도 이렇게 오래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나이 드는 때는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고 스스로 느낄 때라고 하는데, 내가 딱 그렇구나 했다.
일요일은 다시 카페를 열어야 했기에 토요일 점심을 함께하고 오후를 보낸 후, 다시 바리바리 짐을 싸서 길을 나섰다. 토요일인 데다 요즘 비 소식이 잦아서 그런지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넉넉한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왔는데도 눈이 점점 아파왔다. 결국 도착까지 한 시간여를 남겨두고 아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보조석에 앉으니 막상 잠은 오지 않았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멀리 노을이 보였다. 예뻐서 몇 장 사진에 담았다. 구름 사이로 붉게 타오르는 노을. 그 날의 노을은 여느 때보다 훨씬 더 붉고 따가웠다.
청주에서 장모님이 올라오고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가 현관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장모님이 도착해 있으셨다. 장모님은 오실 때마다 항상 먹거리를 챙겨주신다. 이번에도 식탁 위에 온갖 식자재들이 올려져 있었다. 한동안 반찬 걱정은 없겠구나. 그런데 주위에서 말하는 것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나는 너무 피곤에 절어있었다. 아내가 먼저 방에 들어가 잠시 누워있으라 했고, 나는 잠깐만 쉬겠다며 털썩 침대에 쓰러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다음날 아침 10시경이었다. 장모님도 일요일에 장사를 해야 하는데 잠깐 오신 거라 이미 돌아가고 계시지 않았다. 죄송스러웠지만 고개는 들어지지 않았다. 점심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간신히 고개를 들어 밥을 먹었다. 그래도 카페는 열어야겠기에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오후부터 저녁시간까지 카페를 열었다. 손님은 제법 왔고 보람은 있었다. 씻고 곧 다시 뻗었다. 온몸에 몸살 기운으로 정신이 없었다. 결국 월요일은 하루 쉬고 말았다. 그렇게 화요일이 되었다. 뭔가 허망했다.
내가 요즘 나이 들었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가 이런 것이다. 나는 내가 욕심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챙겨서 하다 보면 꼭 이렇게 몸에 병이 난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새벽 1시에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한 달 내내 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어쩌다 피곤하면 하루정도 늘어지게 자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조금만 무리를 해도 그것이 잘 해소되지가 않는다. 크게 무리하지 않았는데도 리듬이 불규칙해지고 컨디션에 문제가 생긴다. 마음껏 무언가를 하기가 힘이 든다. 그렇게 자꾸만 몸살이 난다. 이것은 일시적인 몸살이 아니라 내 삶이 아파지고 에너지가 부족해지는 것. 그래서 나는 지금 '인생의 몸살기'를 경험하고 있다.
그저 하루를 충실히 살고 싶을 뿐인데. 몸이 쉽게 피로해지고 지치다 보면 마음처럼 살기가 쉽지 않게 된다. 일찍 일어나서 독서, 글쓰기, 카페 운영, 블로그, 브런치, 인스타그램, 일기, 체력단련, 산책 등 그저 꾸준히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싶은데 약해진 몸뚱이가 자꾸만 말을 듣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이번처럼 어딘가를 다녀온다거나 다른 무언가가 끼어들면 곧장 몸에 무리가 온다. 그래서 마음에 두거나 생각해온 무언가를 쉽사리 새로 시작하기가 두렵다. 도무지 그 일을 끝까지 해낼 자신이 없는 것이다. 핑계라면 핑계지만 자꾸 현실적으로 문제가 느껴지니 그저 핑계라 치부하고 밀어붙이기가 겁이 난다.
그래서 가끔, 아주 가끔 허망해진다. 막연한 불안이 물꼬를 트고 내 온몸을 칭칭 감아 매어 올 때는 바로 이런 때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같이 약해진다. 우울증의 시기에 마음과 함께 최저점에 도달했던 신체리듬이 아직 돌아오지 못한 것일까? 그렇게 나는 또 쓸데없는 걱정에 빠져 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 걱정도 많다더니 내가 꼭 그 모양이다. 그저 지금 겪고 있는 '인생의 몸살기'가 잘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