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아빠의 넋두리

부모는... 참으로... 어렵다.

by 작가 전우형

막내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에서 1박 2일 물놀이 캠프를 했다. 물놀이를 하면서도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이 웃프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물장구는 반가운 모양이다. 막내는 잠은 집에서 자겠다 하여 누나가 데리러 갔다. 그런데 막내는 누나가 자신을 데리러 온 것이 못마땅했는지 불퉁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은 엄빠가 데리러 왔다는 거였다. 아내와 나는 둘 다 그 시간에 일터에 있었다.


집에 돌아온 후 불퉁거리는 아이를 보며 나는 화가 치솟기 시작했다. 누가 자기 싫어서 집에 오라고 했냐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누나라도 데리러 갔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자식 뒤꽁무니 쫓아다니며 수발드는 사람은 아닌데. 저런 식의 불평이면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밤 시간이고 아직 어리니까... 그래 아직 어려서 그런 거야 하고 생각하며 조용히 넘겼다.


진짜 사단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다. 다른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1박을 했기 때문에 평소보다 시작 시간이 빨랐고, 집에서는 당연히 평소보다 빨리 출발해야 했다. 마침 2살 위인 형도 학교를 가는 금요일이라, 둘이 같이 손잡고 가다 유치원에 내려주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내가 둘째를 학교에 데려다주러 나섰고, 막내도 조금 이르긴 했지만 같이 가면서 유치원에 데려다주려고 했다. 그런데 막내 녀석이 자기는 지금 출발하기 싫다고 때를 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누가 너보고 어제 집에 오라고 했어? 1박 2일 캠프면 하루정도 거기서 자면 될 것을. 데리러 오는 것도 감사한 줄 알아야지, 누나가 데리러 왔다고 불퉁거리더니. 오늘은 또 지금 가기 싫다고 떼를 써? 그럼 엄마 아빠 형 누나는 네가 가고 싶다고 하면 쪼르르 따라나서서 유치원 데려다줘야 하는 사람이니? 이게 막내라고 응석받아줬더니 아주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네? 유치원 너 알아서 가! 지금 따라나서든지 아니면 가지 말든지! 유치원 네가 다니는 거지 다른 사람이 다니는거니?”


그때부터 갑자기 모든 것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를, 겨우 1주일에 한번 가는 학교를 굳이 데려다준다고 따라나서는 아내도 마뜩잖았고, 그 상황에서 막내 편들며 이따 누나가 데려다줄게 그냥 있어하는 첫째 아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부모가 따라가도 학교 정문에서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는데, 꼭 이런 때 따라나서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온갖 것들이 부정적으로 해석되기 시작하고 한번 치솟은 흥분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나는 빨리 집에서 나오고 말았다.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자 후회와 자책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꼭 그렇게 뭐라고 해야만 했을까? 울면서 엄마를 따라나선 막내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괜히 나한테 혼난 첫째 아이에게도 미안했다. 나는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게는 일종의 ‘막내 콤플렉스’가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계기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직장에서 나를 유독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상사들이 알고 보면 집안의 막내들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였다. 몇 번 그런 일을 겪으면서 막내 출신 상사들은 자기밖에 모른다는 일종의 편견이 자리 잡았다. 그들은 아집 덩어리에 자기 생각만을 강요했고, 어떻게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기 위해 사람들을 집요하게 들들 볶기 일쑤였다.


아랫사람의 고통이나 힘듦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듯했고, 필요한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런 행동에 대해 죄책감 따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그들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던 나에게는 일종의 편향이 생겼다. 그것은 막내들에 대한 약간은 고까운 시선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시선에서 막내아들도 비켜갈 수는 없었다.


막내 아이가 자라나는 것을 보며 그 상사들이 왜 그토록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막내들은 얼굴에 이쁨을 타고난다. 아니, 타고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막내들에게는 기분 나쁜 것일 수 있겠다. 그것은 노력의 산물일 수도 있으니. 어쨌든 막내들은 애교와 귀여움 등으로 무장한다. 그들에게는 강력한 경쟁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경쟁이 되지 않는 형이나 누나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귀여움을 최대한 어필해서 부모의 사랑을 끌어오는 것뿐이었다. 이미 상대적으로 경쟁에서 뒤처져있는 막내들로써는 최대한 부모의 사랑에 의지하고, 닥치는 대로 떼를 쓰고 상대방을 들들 볶아서라도 '쟁취'해내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방법이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형제간의 이런 역학관계를 겪어내면서 얻은 자신만의 해답은 습관처럼 굳어져 자극에 대한 반응 패턴이 되어 있었다. 내가 그런 면면을 알아차리고 수정해주고 싶어도 이미 그럴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해군 생활을 하느라 집에 많이 붙어있지 못했던 나로서는 아이와 유대감이나 신뢰관계가 크게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적절한 행동수정 등을 시도할 수조차 없었다.


막내는 특히 두 살 위의 형에게 경쟁심을 많이 보였는데, 대표적인 행동 패턴이 형이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그 앞에 가서 자기도 하고 싶다고 계속 조르는 것이었다. 그러다 형이 양보해주지 않으면 떼를 쓰거나 엄마에게 와서 형이 어떤 것을 안 해준다며 응석을 부리고, 그러면 엄마가 해결을 해주는 방식. 그러고는 자신이 한 번 가지고 놀기 시작하면 형이 달라고 해도 주지 않고, 결국에는 싸움이 나고, 둘 다 혼나는 최종 상태였다. 나는 이런 광경을 지속적으로 목격하며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지만 막내들의 성격이 왜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집요해지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또 다른 부분에 있었다. 내가 막내의 그런 행동 패턴을 볼 때면 불같은 짜증이 솟구친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막내의 성격을 알면 알수록 더해졌는데, 상사를 보면서 느꼈던 분노와 절망, 과거의 상처 같은 것들이 막내의 행동을 보면서 자꾸만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이것은 무의식적인 작용이어서 내게 이런 상처와 스위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통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모습이 너무, 정말 너무너무 싫었다. 특히 내 자식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참기 힘들 정도로 분노가 치솟기도 했다. 이런 짜증과 분노, 불편한 마음은 종종 그 응석을 받아주는 사람에게로 흘러가기도 했다. 이것은 또 다른 갈등을 만들어내는 도화선이 되곤 했다.


문제는 이것이다. 나는 막내의 행동에 과민반응을 하고 있었다. 과거의 상사들에게 받았던 상처와 분노, 절망 같은 것들을 막내 아이의 행동에 투사하는 것. 막내 아이에게 막내들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그에 맞는 장면만 눈여겨보고 그런 상황에서만 자동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 이것이 내가 가진 진짜 문제였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절망과 무력감이었는데, 그것은 아이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성격 형태를 닮아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바로잡을 수 없는 느낌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사람은 종종 남을 입맛대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할 때가 있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부모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로서 적어도 내 자식은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깊은 바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요하고 분노함으로써 해결할 수 없음을 알지만, 그럼에도 가끔 뚜껑이 열리는 나를 보며 완전하지 못한 인간의 면면을 다시금 체감하게 된다.




울음을 터트리며 집을 나서던 막내 아이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막내에게 나는 이미 꼰대 그 이상의 무엇이 되어있지 않을까? 일곱 살배기 어린아이에게 나는 자꾸만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조급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벌써부터 이런데 앞으로는 더 심해지지 않을까 하는.


나는 과연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아니, 적어도 나쁜 아빠만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나도 좋은 부모가 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때는 이미 아이들이 더 이상 아빠를 필요로 하지 않을 나이가 되어 있지 않을까? 희미한 불안감에 휩싸이며, 아쉬우면서도 어쩔 수 없는 나쁜 아빠의 넋두리를 늘어놓게 된다. 나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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