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영을 다시 본 건 공주 중동성당에서였다. 나는 희영에게 결혼식에 갔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 유달리 침대에 오래 누워 있었다. 천정에는 전주인이 붙여두었을 야광스티커가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극세사 이불 안에서 몸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발로 허공을 뻥 찼다. 희뿌연 무언가가 잔뜩 일어나며 잔기침이 새어 나왔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는데 눈 아래가 거뭇거뭇했다. 나는 눈을 비비며 집을 나섰다. 밤하늘은 생각보다 밝았다. 구름과 구름이 아닌 하늘이 구분되어 움직였다. 가슴쯤 오는 수풀 담장 뒤로 가끔 사람 소리가 들렸다. 연기보다 먼저 느껴지는 매캐한 담배 냄새도. 나는 편의점에서 담배를 하나 사서 테이블에 앉았다. 플라스틱 의자를 끄는 소리가 제법 시끄러웠다. 원형 테이블에는 재떨이가 있었다. 나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가 없었다. 웃음이 나왔다. 입술에 벌써 담배 냄새가 밴 것 같았다.
희영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메마른 미소였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희영의 미소를 따라 해 보았다. 입술이 벌어지며 이가 살짝 드러나고 오른쪽 입꼬리만 미세하게 올라가는 미소. 절반은 웃고 절반은 웃지 않는 얼굴. 내리깐 시선. 체념한 눈동자. 기다리다 보면 그리움은 옅어진다고. 잉크로 쓴 글씨가 마르면서 색이 변하듯 처음을 떠올릴 수 없게 된다고. 그러나 지워진 줄 알았던 선들은 이따금 되살아나며 개미 때처럼 움직였다. 입자들의 정돈된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늘 한 사람의 환영과 마주치게 된다.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건 영혼의 십 분의 일을 그 사람에게 떼어준다는 뜻이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난 장소와 시간에 남은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나 언제나 거기 머문다. 고도 이만 피트에서 내려다보는 히말라야 산맥처럼, 기억의 고도가 높아지면 저 아래 맴도는 기억들은 높낮이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나의 시선은 희영의 호흡에 머물러 있다. 가슴 답답한 그 숨소리 속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미소와 격려와 냉담함 속에.
나는 사소한 일이 힘든 사람이었다. 예컨대 어느 화분에 물을 줘야 할지 구분하는 일이나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 이전에 들은 노래나 함께 본 책의 제목을 떠올리는 일, 책장의 어느 부분을 빼서 어디로 옮겨 꽂으면 좋을지 결정하는 일 같은 사소한 것들. 희영은 그런 고민을 우습다 말하지 않던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래서 희영을 만나면 비 그친 날 가을 공기를 마신 것처럼 숨이 트였다. 그러면 어질러진 하루 같던 상처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솜씨 좋은 외과의사가 봉합한 것처럼 그 상처는 흉터가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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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희영을 본다. 표백된 A4 용지처럼 하얗고 투명한 낯빛. 고요하면서도 생기가 스며 나오는 눈. 힘주어 오므린 손끝과 발끝. 뿌리까지 드러나 곧 쓰러질 것 같은 나무. 그러나 아직 쓰러져 본 적이 없는 나무. 어떤 일에는 의무나 책임보다 권리가 필요했다. 비난으로부터 변호할 권리, 장바구니를 대신 들어줄 권리, 주머니에 손을 넣어줄 권리, 깻잎 장아찌를 떼어줄 권리 같은 것들이.
답을 확인하고 싶지 않은 질문들이 있었다. 그걸 확인하는 과정은 손바닥 너비 정도 되는 난간을 걷는 일과 같았다. 난간 오른쪽은 낭떠러지였다. 중요한 질문은 늘 거기 있었다. 나는 그쪽을 한참 쳐다보다가 난간 왼쪽으로 내려오곤 했다. 절망을 버텨내려면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바라는 마음과 포기하는 마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액세서리 고르듯 바람과 욕구의 무게를 재고 따져야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희영은 늘 누군가를 위해 그 작업에 매달리고 있었다.
희영의 노력은 더 지탱할 수 없을 만큼 파르르 떨릴 때까지 이어졌다. 그걸 지켜보는 나는 지친 마음뿐이었다. 희영은 가을 하늘에 높이 뜬 양털구름을 함께 보길 원했다. 그 너머의 푸른빛 우주에 대해 얘기하길 원했다. 눈을 맞추고 호흡과 발걸음을 교환하며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하지만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때처럼 심장이 덜컹거려도 성호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