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춰나갈 수 있는 사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결혼을 인생의 재앙처럼 여기는 이들이 있다. 결혼은 손해 보는 것이며, 결혼 때문에 인생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필요성을 인정받지 못한 것들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사라져 간 수많은 것을 통해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결혼'시스템은 여전히 존재한다. 결혼이 가진 긍정적 기능이 역사를 통해 인정받아왔음을 보여준다.
1. 세상에 하나뿐인 '내' 편('남'편 아님...)을 만드는 과정
결혼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소중한 내 편을 만드는 과정이다. 힘들고 아플 때 기댈 수 있는 단 한 사람조차 없다면, 극심한 외로움에 몸서리치다 지쳐버리게 된다. 평소에 나의 고민과 아픔을 보듬어주고 나눠가져 주는 단 한 명의 정서적 지지자만 존재해도 인생은 훨씬 더 살만한 곳이 되며, 힘든 시기를 이겨낼 힘이 생긴다. 물론 이것이 모든 부부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부는 서로 함께하는 시간이 괴롭기만 한 경우도 있다. 부부가 서로에게 '남'편이 아니라 내편으로 자리 잡으려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가 내편이 되어주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자신을 되돌아보기 바란다. 과연 나는 상대방을 얼마나 지지해주었는가?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쌍방과실'이며, 부부관계에서도 그 원칙은 똑같이 적용된다.
2. 결혼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 확장되는 삶의 스펙트럼
결혼과 육아는 부부만의 독특한 경험으로써 삶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더 성숙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결혼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부부관계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일들에 대해 알지 못하며, 그들의 고민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어렵다. 그걸 꼭 알아야만 하냐고 되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우리 주변에는 많은 수의 기혼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은 원만한 인간관계 형성에 꼭 필요한 역량이 될 것이다.
육아의 경험은 더욱 특별하다. 부모는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진짜' 부모로 성장한다. 육아휴직을 권장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남성들의 육아참여 기회도 늘어났다. 육아경험이 없는 사람은 육아가 어떤 것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개인차는 존재하지만, 육아는 어렵지만 보람된 일이고, 부모 역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무수히 배우고 깨닫게 된다. 육아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3. 소통능력의 개발과 다음 세대로의 연결
부부관계는 남성과 여성이 상호 보완적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장이다. 태생적으로 다른 두 존재가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갈 수 있게 된다. 다른 사고방식, 태도, 가치관을 가진 사람, 다른분야에 종사하는 사람과 교류할 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와 다른생각이나 의견, 혹은 전문분야, 기술, 식견 등을 가진 사람과 발전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는 흔치 않다. 여행에 있어서도 우리가 흔히 접하지 못한, 다른 문화권의 국가를 여행할 때 많은 것을 배우고 느껴 '개안'에 가까울 정도로 각성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생소한만큼 그런 여행은 불편하거나 즐겁지 못한 경우도 많다.
결혼을 통한 밀접하고 깊은 생활이 아니고서는 이성 간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부부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과정은 사실 갈등의 연속이다. 모든 것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었기에, 그 수십 년간 쌓여온 수많은 차이점은 어떤 한순간에 해결되지 않는다. 그 수많은 갈등을 합의하고 해결해 나가는 동안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원활히 살아나가기 위한 중요한 소통능력이 발전된다. 더불어 육아의 과정에서도 언어장벽이 존재하는 한 생명을 무사히 키워내기 위한 노력을 통해 비언어적 신호를 감지하는 능력과 공감능력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부부가 소통능력을 보여줄 때, 아이들은 그것을 체험적으로 배운다. 이것은 또한 다음 세대로 소통능력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소설 '멋진 신세계'에 등장한 세계관처럼, 결혼과 가정이 사라진 세상은 회색빛이며 비극적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나 홀로 자유롭게 즐기면서 살면서도 인류의 개체수를 유지할 방법을 개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사회는 싸늘하며 인간미가 흐르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사회의 기본 요소로써 '가족'이 유지되어 온 배경에는 그것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동맥으로 기능해왔기 때문일 거라 생각하며, 우리는 결혼이 가진 현실적 한계를 직시함과 동시에 그것이 가진 순기능에도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남녀 간의 양적 평등을 이루려는 경향이 가정에까지 영향을 미쳐 결혼의 부정적인 면을 심화시키고 있다. 가계를 꾸리면서 벌어지는 모든 부담을 정량적으로 나누려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으며, 최근 이슈가 되는 '반반'결혼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임신기간까지 시급으로 계산하는 상황을 다룬 사연을 본 적이 있다. 최저시급이 결혼생활이나 임신기간에까지 적용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극단적 사례일 것이나, 인간이 누려야 할 모든 의미 있는 행위들을 돈으로 환산하려는 태도는 지양하는 편이 좋다.
인간에게는 자기중심적인 편향이 존재한다. 내 아이를 키우는 일은 힘들고 오래 걸리는 반면에, 남의 아이는 임신했다더니 어느새 출산을 마쳤고, 곧 돌잔치를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바로 '내가 하는 일'이다. 인간은 받은 것보다 준 것에 더 민감하며, 보상보다는 피해를 더 잘 기억한다. 모든 것을 정량적으로 구분하려는 사고방식은 끊임없는 갈등의 원인이 된다. 누가 더 희생했는지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더 많은 양보와 희생적인 노력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답이 없는 질문과 비난을 하며 서로를 깎아내리는 상황은 부부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결혼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진다. 결혼상대는 사람 자체를 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 연애 단계를 잘 활용해야 한다. 연애에서 살필 것은, 기념일을 잘 챙기는지, 근사한 식사 장소를 예약하는지, 고가의 선물을 사주는지와 같은 것들이 아니다. 결혼을 전제로 두고 연애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이 '비혼주의자'가 아니고, 결혼에 대한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연애 과정에서 상대의 내면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화가 통하는지, 상대의 말을 경청할 수 있는지, 변화에 유연한 사람인지, 결점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인지, 어떤 가치관과 인생관을 가졌는지 등 스펙이 나열된 결혼정보 사이트나 짧은 맞선 자리만 가지고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는 귀중한 정보들을 연애를 통해 파악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 함께 할 때, 진가를 알 수 있다. 연애 초기단계는 콩깍지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건전한 판단이 어렵다. 초기연애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99%가 가면이다. 시간이 흐르고 관계가 지속되다보면 더 이상 가면을 쓰지 못하는 시점이 온다. 편안함이 경계심을 허물어트릴 때, 문득 드러나는 모습이 상대의 진짜 모습이다. 그것을 확인할 때까지 섣부른 판단이나 결정은 유보해두는 것이 좋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박사는 '스무 살이 지나면 성격은 상수다.'라고 했다. 성격은 이미 고정값이라는 의미다. 이혼사유로 '성격차이'는 단골메뉴다. 하지만 '성격'은 어차피 변하지 않기 때문에 결혼 이전에 충분히 확인하지 않는 한 결혼생활동안 상대에게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하거나, 성격적으로 전혀 맞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나와 찰떡궁합이 될 거라는 환상은 접어두는 것이 좋다. 그러니, 성격차이로 이혼한다는 말은 무언가를 덮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성격차이는 이미 결혼하기 전부터 고정상수였다.
성격차이는 언제나 존재한다. 다만 상황에 따라 성격차이로 인한 갈등을 수용할 수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결국 우리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성격차이를 극복할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소통과 공감능력이다. 배움과 소통을 통해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은,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결혼의 모든 부정적 측면은 결국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공통적으로 겪는 일들이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맞는 사람을 찾기보다, 맞춰나갈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수십 년에 달하는 긴 시간을 자신과 결이 맞지 않는 사람과 마찰을 빚으며 사는 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결혼을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결혼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남들 따라 마지못해 하는 결혼보다는 그냥 '비혼 주의자'로 남는 것을 추천한다. 결혼은 든든한 내 편을 한 명 만드는 것이지만 이것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애초에 내 편이 되어줄 만한 상대를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군이 되려면 같은 방향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공동의 목표가 설정될 수 있어야 한다. 결혼생활은 단지 '사랑'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의 모습은 시기에 따라 변화하며, 그것을 지탱해주는 바탕에는 신뢰가 존재한다. 신뢰는 소통의 흔적이 누적되고, 갈등 상황을 해결해온 경험들이 쌓여 만들어진다.
13년 차 중견 부부이며 세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로서, 결혼은 분명 쉽지 않은 선택이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 기회비용이 결혼생활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나 아이를 낳았을 경우에는 양육의 부담과 어려움이 될 수 있다. 분명 이것은 가볍지 않고, 때때로 삶의 무게로 지쳐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한 명의 개인이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은 가족을 형성한다는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다른 관계에서는 결코 얻지 못하는 경이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이 경험 또한 인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재산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랑과 지지를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가족과 함께하는 삶은, 막연히 두려움 속에 상상하는 모습보다 훨씬 더 인간다운 삶이다. 기혼자들이 늘어놓는 푸념에 등장하는 장면처럼, 결혼생활이 늘 팍팍하고 괴로운 일들로 도배된 것은 아니다. 모든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고 잔소리만 늘어놓는 것도 아니고, 모든 남편이 술 먹고 늦게 들어와 술주정을 부리거나, 주말이면 쳐 자빠져 자다가 집안일은 내팽개치고 조기축구나 하러 나가버리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결혼생활을 하는가, 배우자를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는가의 문제다. 물건을 살 때 가격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결혼은 꽤나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보석일지도 모른다. 결혼을 고민하고 있다면, 선택과 결정의 과정에서 결혼의 기회비용과 결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고르게 판단해보고 후회 없는 자신만의 선택을 내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