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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사람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

브런치 북 "관계를 생각하다" 발행 소식

by 작가 전우형

우리에게는 거울이 하나씩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걸어둔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을 바라보면서 실제로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얼굴에 그려진 외로움, 분노, 상실감, 뿌듯함, 고독함, 아름다움, 고귀함, 날카로운 눈초리 등은 사실 자신의 그것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관계에는 어쩔 수 없는 '공간'이 존재한다. 나와 다르기에 '타인'이라 이름 붙였음에도 우리는, 타인이 내 마음처럼 움직여주길 바란다. 그들을 입맛대로 변화시키고 내 생각과 기준에 온전히 맞추려 노력한다. 내가 만들어둔 성냥갑 같은 틀에 맞지 않으면 "넌 틀렸어"라고 비판하기도 하고, 내 뜻대로 하려는 시도가 실패할 때면 자존심이 상해 분노하거나 상대방을 공개적으로 망신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사람이 원래부터 자기만 아는 악한 마음을 품고 태어났기 때문일까?


타인과 완벽히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은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때로 타인에게 큰 '기대'를 한다. 실현되기 어려운 바람을 내거는 것이다. 뛰어도 닿지 않는 철봉을 두고 허들 넘듯이 넘어가길 바라니 매 시도마다 다리가 걸려 넘어지고 무릎이 까져서 아프기만 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더 높이 뛰는 것이 아니라 허들의 높이를 낮추는 것이다. 그 방법은 그저 인간관계에 있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이다.


매우 쉽고 간단해 보인다. 관계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것. 그것은 내가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서 시작된다. 나의 노력만으로 관계가 발전되거나 깊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 관계의 어려움이 무자비한 '실패'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간단한 것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맞지 않는 상대와 어쩔 수 없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삶 속에 존재하는 고통스러운 순간들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만 맺을 수 있다면 인간관계에서의 고민이 1/10로 줄어들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 화사한 핑크빛 순간들만 존재하지 못한다. 관계에는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한다. 처음에는 좋아 보였던 사람이 만나다 보니 싫어지기도 한다. 자기 말만 하고 다른 사람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업무 파트너가 되어야 하는 순간도 있다. 사사건건 부딪히거나 나를 약 올리는 형제자매와 십수 년을 살아야 할 수도 있고, 기를 쓰고 지능적으로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품고 키워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언제나 상대방은 제멋대로 굴고, 수시로 변화하며, 내 의도나 기분 따위 신경 써주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형제와의 다툼에 지긋지긋함을 느꼈던 사람은 부모가 된 후 아이는 한 명만 낳기로 결심한다. 내 아이는 나와 같은 고통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매일같이 싸우던 부모님을 보며 자란 아이는 자신은 절대 결혼 따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나 또는 주위 사람을 통해 경험하는 관계에서의 상처는 관계를 어렵고, 골치 아프고, 걸리적거리는 것으로 여기게 한다. 관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있는 투자하기보다 가끔 부담 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쉽고 편하고 간단한 패스트푸드 같은 관계에 만족하게 된다. 그런 관계에 만족하고 살면 좋겠지만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에 떠는 또 다른 나를 만난다. 그런 나를 달래 줄 따뜻하고 안전한 관계가 없음에 절망하고 삶의 허무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관계를 포함해 모든 것 중에서 충분한 노력과 투자 없이 돌아오는 것은 없다. 결국 관계를 얻고 싶으면 그만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자석의 서로 같은 극처럼, 서로가 상극이어서 가까이 갈수록 밀어내는 힘이 강해진다면 그런 관계는 포기하는 것이 편하다. 열명 중 한 명은 조건 없이 나를 싫어한다고 한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미운 사람, 같은 공기에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사람. 그런 사람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인간은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혼자 남은 인간은 너무나 약하다. 관계는 인간에게 '공기'와도 같다. 관계 안에 머물 때 우리는 숨 쉴 수 있고 정서적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관계에는 분명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 거리란 '선'을 정하는 것이다. 숨쉴틈 없이 밀착된 관계는 답답증을 유발하고 다름으로 인한 차이를 보상할 공간을 남겨두지 못한다. 나와 상대가 모든 면에서 맞을 것이라는 허황되고 그릇된 바람이 관계를 힘들게 한다. 초기의 사랑이 이런 환상을 만든다. 안타깝지만 '소울메이트'는 환상이다. 마음이 통하는 상대,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우리 곁에 없다. 심지어 십수 년을 키워준 부모도 자식의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한다.


관계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려면,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때때로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다만 그런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타인의 생각을 읽거나 온전히 공감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든다. 상대의 표정, 말투, 옷차림 등 일거수일투족을 관심 있게 지켜봐야만 하며 수많은 퍼즐 조각을 맞추면서 상대방의 마음의 그림을 완성시켜야 한다.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으며 범인을 찾아내는듯한 이 과정을 일정기간은 즐기며, 그것을 사랑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관계에는 필연적으로 '권태기'가 찾아온다. 인간의 위대한 '적응'능력은 관계에서도 결코 비켜가지 않는다. 누군가가 당연하게 여겨지고 관성적으로 만남이 이어지는 시기가 반드시 찾아온다. 초창기의 관심이 줄어들고, 사랑의 온도가 미지근해지는 것은 '필연'이다. 이것을 두고 비난하거나 마음이 변했다고 여긴다면, 그 비난의 굴레를 뒤집어쓰지 않을 관계는 없다. "그럼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라는 말과 함께 떠나가는 상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뿐이다.


브런치 북, "관계를 '생각'하다"에서는 이와 같은 관계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담았다. 관계가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이유, 관계 속에 존재하는 '함수'들, 그리고 나름의 해결책과 조언을 담았다. 누구보다 인간관계를 어려워하던 나였기에, 사실은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들이기도 했다. 결국 관계의 함수에는 '나'와 '상대방'이라는 변수가 등장한다. 이것은 곧, 관계라는 'Z'값을 만들어내는 것은 '나'뿐만이 아님을 뜻한다. 내가 변함으로써 Z값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방인 'Y'값이 0이라면 관계는 어떤 값도 나올 수 없다. 즉, 짝사랑이나 일방적인 관계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오래가는 관계는 균형 잡힌 관계이며 관심은 쌍방향일 때 서로에게 통할 수 있다. 브런치 북, '관계를 생각하다'와 함께 여러분 주위에 존재하는 수많은 관계의 함수를 조금이나마 풀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https://brunch.co.kr/brunchbook/think-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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