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일어난 일은 아프지 않아

소설

by 작가 전우형

지난 며칠간 어둡고 긴 밤이 이어졌다. 밤은 원래 어둡고 길다. 길다는 것은 공간적으로는 여기서부터 더 먼 곳에 다다른다는 말이고 시간적 개념으로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말이다. 시간의 속도는 감정에 따라 변한다. 어딘가에 집중하면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고통은 시간을 박제하기도 해서 못 박은 지점으로부터 해시계처럼 맴돈다. 나는 그림자가 천천히 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을 보다가 지쳤다. 무엇에 지쳤는지도 모른 채 지쳐갔다. 나는 지치면 사소한 일들에 의욕이 떨어진다. 이를테면 물을 마시거나 고양이에게 밥을 주거나 창문을 여닫거나 운동화 끈을 묶거나 머리를 감거나 세수하는 일 같은 것들. 밤이 길다는 건 이런 뜻이다. 꿈이 고통스럽다는 것.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지고 이가 딱딱거리는 것. 이불을 덮지 못하는 것. 다른 것에 정신을 위임하지 못하는 것.


나는 원인불명의 질환을 앓고 있는 것 같다. 등이 서서히 굳어가고 무릎이 수액에 부푼 것처럼 뻑뻑하다. 플라스틱 컵을 쌓을 때처럼 감각과 감각이 겹쳐 무뎌지고 종이를 여러 겹 덧댄 것처럼 소리가 웅웅댄다. 어떤 소리는 지나치게 크고 어떤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예컨대 손바닥으로 식탁을 쓸 때, 손은 움직이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세상에 구멍이 뚫려서 중력의 누수가 일어나고 투명한 손을 잡은 것처럼 질감은 느껴지나 보이지 않는. 바람이 불어 모래먼지가 일고 입은 텁텁한데 볼륨을 완전히 죽인 것처럼 비질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가슴에 귀와 볼을 완전히 붙이면 뜨거운 열기와 관자놀이를 두드리는 진동이 느껴진다. 말랑하고 건조한 살갗에 비비며 고개를 돌리면 가슴 사이에 코와 입술이 닿는다. 살냄새보다 먼저 솜털의 감촉이 먼저 입술을 두근거리게 한다.


이런 것들이 밤을 지배하지 못하고 단지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완전하게 어둡거나 완전하게 환하기만 했다. 스케치가 지워진 시간 앞에서 밤은 지독하게 길고 뜨겁고 고통스러웠다. 나는 아주 긴 잠을 청했다. 바랄수록 멀어지는 꿈의 한 장면처럼.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끝이 어딜까 하는 생각 같은 건 잊어버리게 된다. 지금도 우주는 팽창하고 있고 은하와 은하 사이는 멀어지고 있다고, 천문학자들은 말한다. 마음에도 중심이 있어 나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게 붙든다고 해도 마음과 마음은 지금도 멀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타인을 이해하고 싶다면 내가 매 순간 그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부터 깨달아야 한다. 멀수록 평온하고 고요하고 덜 고통스럽고 희극일 테니까. 나는 소용돌이로부터 안전하길 원하고, 관객이고 주변인이고, 그래서 지구에서 하늘을 보듯 당신의 과거만을 받아 적을 테니까. 이미 일어난 일은 아프지 않아. 다만 씁쓸할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