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지난 며칠은 따뜻했다. 지금은 비가 내리고 있지만 어쩌면 눈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멀어졌던 겨울과 다시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투명하고 속이 비치는 겨울을 마주 보고 있으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나를 바라보던 한 쌍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모든 것을 드러내 보였지만 속을 전혀 알 수 없었던 계절을 걷던 영주가. 멀리서 바라보는 겨울은 지금처럼 따뜻해 보였다. 겨울을 알기 위해선 겨울의 한가운데로 가야 한다던 영주의 말이 떠올랐다.
바람을 맞으며 걷는데 살짝 소름이 돋았다. 영주의 손이 소스라치듯 놀라는 게 느껴졌다. 어떤 충격이 강하게 심장을 두드렸고 나는 걸음을 멈췄다. 왼쪽 볼에 눈이 날아와 맺혔다. 나는 무심히 그것을 훔쳤다. 그것들은 종잡을 수 없이 흔들리다가 하늘로 솟구쳤고 한 곳에서 소용돌이쳤다. 영주는 눈송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눈을 실은 바람은 그의 손을 지나 어깨를 스쳤다. 나는 그런 영주를 바라보았다. 영주가 선곳을 가로등이 비췄고 그는 마치 겨울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이별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헤어지기로 작정하자 영주가 아플 정도로 예쁘게 보였다.
이별은 무겁지 않았다. 이별은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함께 있는 동안은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더는 슬프지 않았다. 어쩌면 그동안 수많은 슬퍼할 기회를 놓쳤던 게 아닐까. 마음의 수도꼭지가 잠겼고 영주를 바라보던 초점이 흐려졌다.
내가 영주를 무생물처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문득 깨달았을 때, 자로 재듯 영주와의 거리가 분명해졌다. 무심함이 불안을 채찍질했다. 그럴수록 우리는 서로를 원했다. 떼쓰는 아이처럼 탐구하고 갈망했다. 여전히 가깝다는 걸 증명하려 애썼다. 급격히 방전되어 가는 사랑을 인내심으로 채우려 하자 그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미워졌다.
영주는 헤어진 다음 날 호주로 떠났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출국하는 영주를 인천공항에 데려다준 게 바로 나였으니까. 이별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였다. 영주가 부탁했고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이 미뤄졌다는 것에 안도했다. 동시에 언제까지고 미룰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이별은 시시각각 가까워졌다. 몇 개의 후회가 마음을 무겁게 했다. 겨울이 덜 마른 이불처럼 착잡했다. 눅눅한 공기는 곰팡이가 핀 식빵처럼 뿌옜다. 지금은 영주를 보내고 있지만 어쩌면 그가 돌아설지도 모른다. 멀어졌던 영주와 다시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영주는 예전처럼 따뜻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