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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성의 위기 극복 방법

40대 중후반에 겪어내야 할 커다란 위기들

by 작가 전우형

여성이 아무래도 출산과 자식의 성장을 기준으로 삶의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면, 남성에게는 직장생활 사이클을 바탕으로 커다란 심적 변화가 일어난다. 시기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40대 중후반은 남성에게 많은 위기가 한꺼번에 찾아올 가능성이 높은 시기다. 그만큼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커다란 좌절을 맞이할 위험도 높다.


위기 1. 직장에서의 좌절

40대 후반이 되면 자신이 여기서 더 올라갈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느낌이 확실해진다. 몇 차례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동기로 입사했던 동료들과 직급격차가 심해지고 심지어 후배들이 더 높은 직급으로 승진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도 예사롭지가 않다.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 무력감을 느끼고, 그동안 직장에서의 성공을 위해 노력해 온 시간들에 대한 후회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위기 2. 부모님의 사망

40대 후반이 되면 부모님의 평균 나이가 70대 후반에서 80대에 접어든다. 사실상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마음적 대비가 필요한 시기다. 주위 사람들에게 경사보다도 조사가 자주 들려온다. 친구나 동료 부모님의 장례 소식을 들으면 남일 같지 않다. 실제로 이 시기에 부모님의 사망을 경험하기도 한다. 상실감과 외로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위기 3. 제2의 사춘기, 갱년기

갱년기는 여성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남성들 역시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까지 갱년기가 찾아온다. 다만 폐경과 함께 급격히 찾아오는 여성 갱년기와는 달리 남성들은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변화가 일어나기에 그것이 갱년기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이라 여길 수도 있다. 호르몬의 변화와 더불어 인생관, 가치관 등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하며 그동안의 삶에 대한 후회감이 들거나 작은 일에도 감정적이 되기도 한다.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부모의 이해와 절대적인 지지가 필요하듯, 이 시기의 부부에게도 미묘한 감정 변화를 알아봐 주고 서로 이해해줄 수 있는 신뢰와 유대가 대단히 중요하다.


위기 4. 급격한 신체 노화

30대에 접어들며 이미 신체적 노화는 시작되지만 4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그 정도가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심해진다. 그동안 당연하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버거워지며,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일을 해낼 수도 없다. 남성들은 젊은 나이에 자신의 신체능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기 때문에 신체적 능력 저하에 따른 스트레스는 여성의 외모 변화로 인한 자존감 저하와 비견될 정도로 커다란 상실감을 준다. 무거워지는 몸을 느끼며 나이가 들었다는 느낌의 현실감이 강해진다. 이 시기에 경험하는 주변인의 죽음은 자신의 신체적 노화와 더불어 '죽음'이란 단어가 나와 더 이상 관계없지 않음을 강하게 일깨워준다.




이런 이유로 40대 중후반 남성들은 커다란 위기상황에 놓이고, 이때 직무소진으로 인한 우울증이 찾아오기 쉽다. 성실한 사람일수록 약해진 자신을 더욱 인정하지 못한다. 힘든 순간을 꿋꿋이 버텨내던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겨우 이 정도도 버텨내지 못하는 초라해진'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현재의 모습을 수용하지 못할 때 가장 쉽게 나타나는 것이 '자책'이다. 자책은 스스로마저 자신을 외면하는 매우 나쁜 사고방식이다. 문제와 잘못을 반성하고 수정할 수는 있지만, 40대 후반의 자책은 어찌할 수 없는 상황과 신체변화를 일방적으로 책망하는 것이기에 대단히 나쁘다. 현재 상황의 불만족을 근거로 지금까지의 삶을 스스로 부정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과도한 자책은 더욱 위험하다. 나이가 들면서 여러 가지 능력의 저하가 찾아오는 것은 인생주기에 따른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아직 현역에서 물러날 때가 되지 않았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증명하려면 변화에 수긍해서는 안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자신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이미지는 현재의 약하고 좌절한 모습이 아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자책을 더욱 강화시킨다. 그동안의 수고는 알아주지 못한 채 지쳐있는 자신을 녹다운시키는 것은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일 수 있다. 자책 속에 나이와 시기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연륜과 지혜, 치우치지 않는 현명함과 균형 잡힌 시각 등 다른 가치 있는 것들을 얻어 자신을 더욱 성장시킬 기회마저 잃어버리게 한다.


평균적으로 30대 초중반에 결혼하고 아이를 가졌다면 40대 후반은 아직 일을 그만두고 쉴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적당한 수준의 일을 지속하는 것이 좋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것과,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많은 사람이 추천하는 여행 역시 억지로 끌려가는 형태가 되면 스트레스로 남는 것처럼, 자발적인 동기에 의한 것인 아닌 의무감이 뒤섞인 행위들은 부담과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아이는 이제 막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일 것이고, 심하게는 초등학생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독립까지는 여전히 10년~15년이 더 필요하다. 버텨야 한다는 부담감이 사라질 수 없는 시기다. 하지만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직장에서는 자칫하면 퇴물 취급당하기 쉽다. 때때로 이 시기에 실직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만약 가정을 돌보기보다 직장생활에 더 매진해온 경우라면 상대적 박탈감과 허무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지 못한 만큼 아이와의 유대로 깊지 않을 것이고, 아내와의 사이마저 좋지 않다면 40대 후반의 이 시기는 더 큰 위기로 다가온다. 직장에서 쫓겨나듯 퇴직한 자신을 가족들이 싸늘한 눈으로 맞이하는 상황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심지어 마지막 보루였던 자신의 무한한 지지자, 부모님마저 이 시기에 이별하는 경우가 많다. 인생에서 이처럼 많은 위기가 한꺼번에 찾아올 시기도 흔치 않다.


갑작스럽게 큰 위기가 연이어 겹치면, 강직하고 성실해 무엇이든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던 사람도 심지가 다 타버린 양초처럼 한 순간에 불이 꺼져버리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번아웃'이다. 자신은 나름대로 가족을 위해 전력투구해온 직장생활이었지만, 정작 아내나 자식들에게 그저 돈만 벌어다 주는 아버지로 여겨지고 있었다는 걸 느끼는 순간 더 이상 삶을 지탱할 동력은 사라진다.


일과 가정을 동시에 돌보는 것이 참 중요하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히 할 필요가 있다. 직장생활이 영원할 것 같지만 의외로 허무하게, 그리고 갑작스럽게 끝나는 경우도 많다. 직장동료들은 직장을 떠나는 순간 남이 되고 자신의 곁을 지켜줄 사람은 가족밖에 없다. 자녀들의 성장과정에서 자주 등장하지 못했던 아빠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요즘은 남성들의 육아휴직도 많이 권장되는데,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아빠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아이들과 유대를 형성하기가 쉽지 않다. 엄마는 최소한으로 잡아도 뱃속에 머물던 10개월의 기간 동안 24시간을 함께했기에 태어나면서부터 유대가 형성되지만, 아빠는 육아휴직이라도 해서 아이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하지 않는 한, 저녁때 잠깐 보는 것 정도로는 끈끈한 유대가 형성되지 못한다. 나이가 들고 아이들에게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 돈밖에 더 벌어줬어?" 이런 말을 듣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이는 일이 생기고 만다. 너무나 슬픈 일이다.


부부간의 진솔한 대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한다. 사랑의 모습도 시기에 따라 변한다. 초기의 불같은 사랑은 금세 꺼지기 마련이다. 사랑에 불타게 만드는 호르몬은 채 6개월을 가지 못한다. 하지만 부부는 최소 수십 년을 함께 해야 한다. 단순한 초기의 사랑을 오래 끌고 가는 방법만으로는 부족하다. 30년 가까이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갑자기 모든 것이 맞추어져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것이라는 상상은 '오산'이다. 결혼생활은 갈등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갈등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일어난 갈등을 봉합할 방법을 찾지 못할 때 문제가 된다. 생활양식, 사고방식, 가치관, 인생관, 부모관, 훈육관 등 수많은 난제들을 대화로 풀어나가지 못하면 부부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멀어진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 감정 등을 아내에게 잘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대화가 통하는 상대를 만나는 것이 참 중요하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맞는 상대를 고르려 하기보다, 맞춰나갈 여지가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런 사람과 15년에서 20년의 시간을 함께 했다면, 40대 후반에 찾아오는 남편의 위기를 함께 이겨내 줄 든든한 배우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단 한 명의 소중한 지지자만 있어도 극단적인 위기로 치닫지는 않는다.


최후의 순간에 옆에 있어주는 존재는 결국 가족이다. 가족이 당연히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줄 것이란 착각은 위험하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가족 간에도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할 상황은 차고 넘친다. 관계는 노력한 만큼 깊어진다.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길 바란다면 나부터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가족의 소중함을 일찍부터 깨달은 사람은 중년의 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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