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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수많은 '질문'

질문으로 시작해 질문으로 끝나는

by 작가 전우형
사랑 :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으로 인류에게 보편적이며, 인격적인 교제, 또는 인격 이외의 가치와의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힘


누군가 내게 물었다.


"사랑이 정말 존재한다고 생각해?"

"사랑은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럼 사랑한다는 말은 허구인 거야?"

"사랑한다는 말은 허구일 수도 있지만 사랑은 허구가 아닐 것 같은데?"

"그게 뭐야? 말장난 같아!"

"어쩔 수 없어. 사랑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한 가지뿐이야. 사랑에 대한 이해 없이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거. 그 이상에 대해서는 아직 전혀 모르겠어."




사랑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사랑한다는 말은 연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때 쓰인다. 어떤 마음이 들 때 상대방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좋아해'와 '사랑해'의 차이는 무엇일까? 함께 가을 하늘을 보고 싶은 것, 함께 오솔길을 걷고 싶은 것, 함께 식사를 하고 싶은 것, 함께 살고 싶은 것. 이 중 무엇이 좋아하는 것이고, 무엇이 사랑하는 것일까?


아름답거나 멋진 상대를 보았을 때 느끼는 설렘, 상대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 상대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멋진 물건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 어디까지가 '좋아'하는 것이고, 어디서부터가 '사랑'하는 것일까? 어디까지가 '우정'이고 어디서부터가 '사랑'일까?


충분한 시간을 만나면 '사랑'이 되는 걸까? 그렇다면 만난 지 100일이 지나면 '사랑하는 사이'라 부를 수 있는 걸까? 사랑과 성욕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사랑하는 사이라면 서로에게 몸을 맡겨도 괜찮은 걸까? 아니면 기꺼이 몸을 섞을 수 있는 사이면 사랑하는 사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결국 사랑은 '관심'의 다른 이름은 아닐까? 관심은 누군가에게 정신적 에너지를 쓰는 것을 말한다. 아픈 곳은 없는지, 집에는 잘 들어갔는지, 회사나 학교에서 동료, 친구들과 갈등은 없는지, 상대방의 사소한 것들에 대해 신경이 쓰인다면 이것이 혹시 사랑의 전조는 아닐까?


누구나 사랑을 할 수 있지만,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누가 먼저 명확한 애정표현을 하는가의 문제는 '선기'의 문제로 여겨져 밀당의 근거가 된다. 먼저 사랑하면 손해 보는 것일까? 사랑한다는 말을 먼저 하면 내가 조급한 것일까? 사랑은 표현하기 이전에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해'라는 말을 듣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받고 싶어서? 정말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걸까?


표현은 단지 언어화의 문제에 불과할 수도 있다. 감정은 오히려 가벼운 행동이나 말투, 눈빛, 약속에 대한 태도 등 비언어적 영역을 통해 드러난다. 정말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은 것일까? '사랑'에 대한 언어가 사랑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짝사랑이 성립되겠지만, 과연 사랑을 받아주는 사람 없이 그것이 성립될 수 있을까? 그것은 사랑일까, 아니면 집착일까?




사랑에 대한 심상은 아름답고 고혹적이지만 실제의 사랑은 아픔과 고통을 동반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만큼 '상처'받기도 쉬워진다. 가까이 갈수록 따끔거리고 쓰라린 말들이 마음에 쑤셔 박힌다. 마음을 열었던 만큼, 덜 방어적이 되었던 만큼, 더 기대했던 만큼 실망은 도드라지고 사랑에 대한 '회의'가 고개를 든다. 나만 사랑하는 것 같고, 내가 '더' 사랑하는 것 같고, 상대는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랑은 곧잘 증오로 변모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만큼 미워하기도 쉽다. 사랑과 증오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사랑하면서도 미운 감정을 흔히 경험하는 이유다.


존재하지만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 '사랑'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이건 분명 사랑이야 라고 느낄 수 있는 것. 하지만 과연 언제부터 나는 사랑에 빠진 걸까? 언제 어떻게 설렘과 호감이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명명될 수준에 이르게 되었을까?


사랑은 관계를 강력하게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사랑은 일종의 속박과도 같다. 사랑에 빠져있는 한 감정은 한쪽 방향으로 흐른다. 더 이상 예전처럼 모두에게 감정을 나누어줄 수 없게 된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 한 사람을 바라본다. 사랑에는 분명 그런 모습도 존재한다. 하지만 시기에 따라 사랑의 모습은 변한다. 그래서 사랑인지 우정인지 알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뜨거운 순간이 지나고 따뜻한 순간이 오며, 따뜻함이 지나면 편안한 순간이 온다. 사랑은 권태기를 맞이하고, 이것은 뛰어난 적응능력을 가진 우리 인간에게 있어 필연적 귀결이다. 두근거리던 심장이 더 이상 두근거리지 않을 때, 설레던 마음이 그저 반가움으로 느껴질 때 흔히 사랑이 식었다고 느낀다. 과연 사랑이 식은 것일까? 아니면 이제 진짜 사랑이 시작되는 것일까? 답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사랑이 그저 '하나의 패턴'으로 우리 앞에 존재하지 않을 것임은 짐작할 수 있다.


사랑에 대한 미스터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랑에 관해 정답은 없다. '사람'이란 단어에 받침 하나만 바뀌면 '사랑'이 된다. 사람이 먼저였을까, 사랑이 먼저였을까? 사람은 사랑을 통해 태어났지만, 사랑 역시 사람을 통해 꽃 피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간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다. 관계에는 수많은 감정이 교차되고, 사랑은 그중에서도 굵은 선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갈등과 분노, 증오, 불신, 배신과 같이 관계를 끝장낼 수 있는 많은 문제들을 보상하기 위해, 사랑의 존재가치는 강력하다. 사랑은 여전히 인간관계가 성립되고 유지되기 위한 중요한 감정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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