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까지 물러설 수 있는가?
남편들은 가족을 위해 직장에서 자신을 누르며, 아마도 가족이 없었다면 참지 않았을 순간들을 이 악물고 버텨낸다. 집에 와서 간혹 나쁜 직장상사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아내와 가족들에게 그저 동조를 바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달라는 것. 뭉그러진 자존심을 바로세워 달라는 것. 고생했다며 그 노력을 인정받는 것. 남편들이 집에 와서 바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런 남편에게 그정도도 못버티면 어떻하냐며, 옆집 아무개는 때 되면 승진도 척척 해낸다던데 당신은 매번 뭐가 그리 불만이냐며 비교질을 해댄다면 그 부부 사이의 답은 없다.
나는 완벽주의자였다. 부부간의 사랑에 있어서도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설사 내 부모에게 돌려드려야 했을 많은 것들을 포기하더라도 부부간의 불화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부모님의 안타까운 이별을 보며 나는 아내와 헤어지지 않겠다고 다짐했었고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내는 고집이 센 편이었다. 자신의 주장을 굽힐 줄 몰랐고 그런 그녀와 의견충돌이 발생했을 때 내가 양보하는 것 외에는 해답이 없다고 여길 정도였다.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옳다는 확신에 찬 그녀에게 다른 방식의 해법을 제시해도 소용은 없었다. 그녀의 생각이 맞다고 동조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직장에서도 내 생각이나 의견을 눌러야 할 때가 많았다. 나는 말주변이 좋은편이 아니었고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의지도 강하지 않았다.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상대방의 의견 또한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그렇다고 해서 내 생각이 틀렸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나와 생각이 다르구나. 그저 그렇게 체념하고 설득을 포기하곤 했었다. 솔직히 상대방의 의견보다 내 의견이 더 옳다는 확신도 근거도 없었다. 나름대로의 논리는 있었지만 상황은 언제나 변할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 가지 방법만이 최선이라는 단정적 사고도 하고싶지 않았다. 상대의 기분을 굳이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고 조용히 지금 상황을 해결하고 가급적 빠르게 일을 진행해서 끝내고 싶었다. 그렇게 형성된 자가최면이 하나 있었다. '나에게는 양보와 물러섬이 최선이다.' 그게 최선이라고 속으로 조용히, 끊임없이 되뇌었다. 분명 내 나름대로 결정을 내렸음에도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속의 갈증은 더해만 갔다.
나는 생각보다 자아가 강한 사람이었다. 상황에 빗대어 나를 누르는데 익숙해진 조직생활이었지만 솔직한 마음은 내가 제안한 대로 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상황이 유연하게 풀려갔을 거란 나름의 믿음이 있었다. 내가 하는대로 가만히 두면 알아서 잘 할텐데 괜히 건드려서 일을 그르친다는 불만이 있었다. 물론 그런 불만은 누구에게도 토로하진 않았다. 양보와 물러섬은 나의 선택이기 때문이었다. 답답해졌고 명치가 거북해질 때가 많았다. 그럴 때 집에 와서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아내는 오히려 나를 가르치려 들었다. 나는 그저 나의 힘듬을 말하고 싶었을 뿐인데 아내는 그럴 때마저 나에게 '그게 아니라며' '이렇게 해보라며' 조언을 늘어놓았다. 몇번의 그런 대화가 오간 후 나는 집에 와서도 그런 대화를 끊어버렸다. 결국 나는 누구와도 내면에 가득찬 불만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불편해진 관계를 오래 참지 못했던 나는 결국 먼저 가서 사과를 하곤 했다. 정말 미안한 마음에서 한 사과라기보다는 이렇게 불편한 상태로 누군가와 한 공간을 쓰는 괴로운 상황을 끝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 또한 나의 선택이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나를 속이고 속마음을 부정해왔다. 마음 속에 맴도는 불만과 답답함, 외로움 등은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그때는 혼자서 감정을 정리하는 방법도 몰랐다. 사소한 갈등이라 치부하며, 쉽게 털어내지 못하는 나를 소심하다며 자책했다. 그렇게 지쳐갔다.
단것에 의존하다 체중이 급격히 불어났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잠자는 시간은 늦어졌다. 일은 했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반드시 해야하는 무언가를 제외하곤 다른 그 어떤 것도 하고싶지 않았다. 남는 시간엔 게임에 빠져들었다. 게임에 집중할때면 잡생각이 없어져서 좋았다.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과거의 잔상들이 그때만큼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생활리듬은 점점 엉망이 되어갔다. 정신의 피폐는 신체적 노화를 만나 급격한 성장을 거듭한다. 몸의 피로감이 정신적 피로감을 더 자극했고 이 둘은 상호 공존하며 내 정서를 메마르게 했다. 결국 내가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나를 바꿔보고자 했다. 내가 어떻게든 무언가 더 해보면 상황이 괜찮아질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바꿀 힘이 없었다. 의지로 변화시킬 수 있는 내면의 영역은 한계가 있었다. 나 혼자서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착각에 힘없이 노력했다. 절망은 그렇게 찾아왔다. 그런데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캄캄한 터널에 들어온지 오래인데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들어온 입구도, 빠져나갈 출구도, 어떤 방향으로도 빛은 보이지 않았다. 온통 캄캄한 어둠뿐인 내면의 현주소를 스스로 단정하며, 현재의 어려움이 일생을 지배할거란 망상적 불안에 사로잡혔다. 답답함이 분노가 되고 분노는 증오가 되었다. 빠져나갈 곳이 없는 증오는 방향을 나에게로 틀었다. 자책하는 나와 받아들이는 나. 최악의 조합 속에 자존감은 눈녹듯 사라졌고 나는 어느덧 우울증에 걸려 있었다.
당시 나를 죽여갔던 것은 누구였을까? 고집 센 아내였을까, 맞지 않는 직장이었을까, 섣부른 결혼생활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답을 정해두고 그것을 따를 것을 강요했다. 그것은 바로 양보와 물러섬이었다. 몇몇 상황을 뛰어넘어 이런 사고방식과 태도는 내 삶 전반을 지배했고 하나의 경향성을 만들었다. 나는 스스로를 '을'의 입장에 놓았고, 나를 누르는 선택을 했다. 그 선택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었고 만족했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하지 못했다. 투자할때마다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투자의 적합성에 대해 평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정도 불만에 찼을 시점에 나는 내가 가진 편향과 확증적 태도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에 들어갔어야 했다.
중요한 것은 가이드라인이다. 양보와 물러섬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일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처럼 내가 적절한 상황판단을 통해 무언가를 얻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의미가 있다. 다만 내가 어디까지 나를 누를 것인가에 대핸 마지노선은 존재한다. 한번이 두번이 되고 백번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 기준은 나를 해치지 않는 선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다. 필요하다면 다툼을 마다하지 않을 필요가 있었다. 무엇을 위해 나는 나를 누르는가. 나는 정말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해서 그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갈등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인가? 세상에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마음이 여린 사람은 타인의 기분을 헤칠것을 저어해 자신의 주장을 확실히 내세우지 못할 뿐이다. 마음이 여린 사람은 설사 자신의 적극적인 주장을 통해 그것을 관철시켰더라도 그로 인해 상대방과의 관계가 나빠졌다면 오히려 전전긍긍해하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하지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만 한다.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살면서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세상이 생각보다는 극단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반드시 내 의견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생각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내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도 아니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점이다. 만약 내 생각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단호하게 대응할 필요도 있다. 존중은 상호간에 동등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상대는 나도 존중할 필요가 없다. 그런 사람과는 관계를 깊이 가져갈 필요도 없다. 재밌는 것은 이런 단호함이 때때로 상대와의 역학관계를 바꿔놓기도 한다는 점이다. 어디서부터가 내가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인지 명확하게 표현한다면 그것은 상대방이 나를 대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갈등은 피하기보다 맞닥들여야 한다. 갈등이 있기 때문에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회피하다보면 관계는 끝이 난다. 상처가 봉합되는 과정에서 새살이 더욱 두터워지는 것처럼, 부딪힐 부분은 부딪힐 때 관계도 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