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개기월식
붉은 달은 벨벳이 한 겹 덧씌워진 겨울 코트의 단추 같았다. 오랜 부패 끝에 피가 금속 질감의 어떤 물체로 변모한 듯도 했다. 개기 월식에는 붉은 달이 뜬다고 한다. 부분식이 인접했을 때 지구 대기를 통과한 빛이 일시적으로 달을 비추는 순간이 있다. 그때 달은 해 질 녘 서쪽 하늘처럼 붉게 물든다. 색채가 어둡고 붉은 데다 밤하늘 위에 동그란 달이 붉은 용액으로 가득 차 출렁이는 것처럼도 보였다.
30년 만의 개기월식이라고 했다.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완전히 덮인다는 것. 그 순간 달은 조금 더 추웠을까. 아니면 그림자라는 평소와 다른 방식의 연결고리 안에서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있었을까. 그러나 나를 사로잡은 건 달이 가리어졌을 때의 공허나 어둠, 혹은 신비로움이나 불길함이 아니라 '피'라는 단어였다. 달은 언제 피를 흘릴까. 그리고 인간은 언제 피를 흘릴까. 피를 흘릴 때 고통스러울까. 살갗에 선이 하나 그어지고 나면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점차 붉고 가는 선이 생긴다. 그리고 그 선은 조금씩 두터워지더니 선이 아닌 전혀 다른 무엇이 된다. 피가 나기 전과 피가 맺히기 시작할 때, 그리고 피가 흐르고 난 후. 이 중에서 고통은 언제 가장 두드러질까. 만남과 이별, 그리고 그 사이의 한때 중 어떤 순간으로 지금의 저 붉은 달은 기억하고 있을까. 개기월식은 절대 만날 일 없는 두 존재가 30년 만에 서로의 손을 맞잡는 것처럼 보였다. 달의 얼굴이 붉게 물드는 이유는 잠시나마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온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일시적인 접촉을 완전히 떠나보낸 후, 다시 서로의 어떤 모습을 바라보는 사이로 남았을 때, 달은 어떤 기분이 들까.
밤하늘이 상처를 입어 피를 흘렸고, 그것이 무한히 더 낮은 기압이 형성된 우주 쪽으로 뿜어져 나가는 광경을 떠올렸다. 높은 산에 오를 때 귀가 먹먹해지는 것처럼, 몸 안에 든 것들은 늘 탈출을 꿈꾼다. 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혈압이 높아지면 혈관 중 가장 연약한 부분이 터지고, 몸속에서 출혈이 일어난다. 피는 혈관을 따라 돌 때만 안전하다. 서로에게 안전한 영역을 벗어나고 나면 피는 스스로도 변화하고 그 순간 접촉한 것들도 변화시킨다. 크고 붉은 달은 단단하게 상처를 덮은 딱지처럼 더 이상 밤하늘 안에 든 것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주는지도 몰랐다.
아이는 고열에 시달렸고 핏빛 달처럼 붉은 눈을 가졌다. 해열제를 먹고 난 후에는 땀범벅이 되어 덮고 있던 이불이 축축하게 적셨다. 마른 입술에는 깊고 하얀 골이 생겼다. 아이는 종종 마른 혀로는 입술을 축이곤 했다. 건조한 혀로 더 건조한 입술을 축이는 방식으로 붉은 달은 더 어두운 하늘을 밝혔다. 문득 어제저녁 하늘이 떠올랐다. 잠깐동안 붉게 물들던 하늘은 이내 사라졌지만 오래 기억에 남았고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먹빛에 적신 목화솜처럼 달을 덮고 있던 구름 떼. 스스로의 모습을 선택할 수 없는 달이 아픈 속엣것들을 비추어주는 것 같던 밤. 멀리 있어도 너의 고통에 무감각하지 않다고 말하던 붉은 달. 때때로 소리는 밤이 깊을수록 멀리 퍼져서 머리를 들면 또 다른 소리가 들린다. 그러다 보면 고통으로부터 멀어지고 슬퍼할 시간 또한 나누어 쓰게 된다고. 밤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지구는 많은 꿈이 뒤엉킨 붉은 헝겊과 같다고. 고통으로부터 애써 고개 돌리지 않아도 한 달은 어느새 지나 있다고.
고통은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어렵다. 고통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다. 나의 고통은 타인에게 온전하지 않고, 그들을 설득하거나 설명할 이유도 없다. 다만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고통이어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법을 연습하면서 아이는 어른이 된다. 새벽하늘,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핏빛 달을 올려다보며 느꼈던 비릿한 고통은 양귀자의 '모순'을 떠올리게 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이의 고통은 타인에게 이해받기 어렵다. 그래서 드러낼 수 없는 곳에 상처를 낸다. 기품 있는 눈물이 대성통곡하는 슬픔보다 가볍다 여겨지듯 인간은 서로의 고통이나 슬픔을 저울질한다. 그 안에 헤아림의 오차가 있고, 삶은 모순 덩어리가 된다. 달에게 소원을 비는 것처럼 모순은 공허하면서도 현실적이다.
김애란 소설 '빗방울처럼'에는 '긴 언쟁 끝에 두 사람은 탈수 직전에 오염된 물을 마시는 기분으로 경매에 참여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전세 사기를 당한 뒤 주인이 잠적하고, 세 들어 살던 집은 경매에 넘어간다. 수호와 지수는 '긴 언쟁 끝에 두 사람은 탈수 직전에 오염된 물을 마시는 기분으로 경매에 참여'한다. 지수는 수호가 벗어둔 바지에 엉겨 붙은 영수증 조각을 떼내다 화를 낸다. '내게 이런 것 하나도 못 해줘?'라고 소리치며 운다. 수호는 지수에게 사과하고 늘 그랬듯 대출금을 갚기 위해 야간 대리운전을 뛰러 간다.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수호의 장례식 내내, 수호의 엄마는 지수의 손 한번 잡아주지 않는다. 수호가 떠난 집에 빗방울처럼 똑똑, 누수가 시작된다. 내버려 두려던 누수 공사를 마치고 부른 도배기사가 지수에게 '무슨 일 있었습니까?'라고 묻는다. 타갈로그어를 쓰는 필리핀 여자 도배기사였다. 지수는 자신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떤 고통은 스스로에게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은 아플 자격에 관해 논할 때가 있다. 내가 아파해도 괜찮은 사람인지 답을 얻기 위해 타당한 근거를 찾으려 든다.
붉은 벨벳 질감의 단추를 풀면 그 속에 감추어졌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신이 내린 선택과 결정을 수없이 후회하던 이의 독백과, 고통에 무감한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가늠하려 했던 한 우둔한 인간의 과거를 받아쓸 수 있을까. 그날의 달은 붉은 눈 같기도, 빨간 페인트로 덧칠된 문 같기도 했다. 오랜 부패 끝에 피가 금속 질감을 가진 무언가로 변모한 것처럼, 품고 있던 고통이 원래 있던 곳을 빠져나와 단단하고 거친 것이 되는 과정에 대하여 나는 한참 동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