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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작은 안식처가 되기를

오래가는 부부를 위한 사소한 성공방정식

by 작가 전우형

'사랑'이 변한 걸까, '사람'이 변한 걸까?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이지만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적응해가는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 사람에게는 수많은 면이 존재하고 자신조차도 어떤 모습이 진짜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때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쓴다. 인생은 노련한 연기자가 되어가는 것과 같다. 그 연기가 가장 일관성 없이 전개되는 무대가 바로 '부부'관계일 것이다. 삶의 많은 부분을 서로 공유하며 그동안 잘 감춰왔던 제2의 인격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된다. 든든하고 남자다웠던 모습 대신 힘들고 지치고 스트레스에 가득 찬 모습을 드러내게 되며, 아름답게 치장했던 모습 대신 맨얼굴의 털털한 모습을 내비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삶에 관한 한 누구나 치장을 하고 자신을 꾸민다. 사회 안에서 자신의 꾸미지 않은 모습을 스스럼없이 내비칠 수 있는 관계는 많지 않다. 감추는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집은 휴식을 취하기 위한 공간이었지만 결혼 초기의 집은 그런 공간이 아니다. 결혼하고 부부가 되었지만 신혼은 과도기적 시점이라 여전히 연인 같은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인간의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집 밖에서 연애하던 시간에 몇 시간씩 보던 것과 결혼 후 한 집에서 24시간을 함께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연애는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한 하나의 장기 프로젝트였다면, 결혼 이후의 부부관계는 휴식을 공유하는 일상생활의 영역으로 자리 잡는다. 당연히 서로에게 느껴지는 사랑의 온도는 달라진다. 결혼 전처럼 상대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기에는 걸리는 것도 많고 신경 쓰이는 것도 많아진다. 결혼 전에 했던 달콤한 약속들이 거짓말처럼 어겨지기 시작할 때 이것이 결혼의 '현실'인가 한다. 시간이 흐르며 사랑했던 사람의 밑바닥을 보기도 하며, 상상할 수 없었던 거친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나는 결혼상대를 잘못 선택한 것일까? 두려움, 후회, 불안이 눈앞을 맴돌고 때때로 그런 불안은 실제적인 결혼생활의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제 괜찮아지겠지 할 때 즈음이면 새로운 위기와 갈등이 찾아온다. 이것을 반복하고도 여전히 부부의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면 아마도 우리의 결혼생활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름'으로 인한 갈등


부부간의 갈등은 일상이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된 두 남녀는 어쩌다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을 제외하고는 공통점이 없던 사이였다. 결혼 이전까지 수십 년의 시간을 서로 완전히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살아왔다. 그런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생활을 공유하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은 결코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부부싸움은 당연하다. 갈등이 없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갈등이 없는 부부관계는 오히려 어느 한쪽으로 중심이 쏠려 있는 관계일 수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맞추거나 양보하고자 노력할 때 갈등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백조의 우아함과 달리 양 발은 물속에서 바삐 움직여야 하듯, 평온함에는 그만한 노력이 든다. 이러한 노력이 어느 한쪽에만 강요된다면 결코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라고 볼 수 없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다. 물은 칼질 한 번으로 잘리지 않는다. 어떤 모양의 용기에도 담을 수 있다. 고집으로 버티기보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해결책을 찾는 까닭이다. 부부싸움으로 부부관계가 끊어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분명히 어떤 부부관계는 부부싸움으로 파탄이 난다. 관계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부관계는 물과 같아야 한다. 물은 흐름이 멈추거나 정체될 때 가장 위험해진다다. 부부 사이의 단절은 갈등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통이 사라질 때 발생한다. 부부 사이에 소통의 벽이 생기면 관계는 정체되고, 정체된 부부관계는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한다. 소통이 사라질 때 남 탓이 시작된다. 서로를 이해하기 이전에 공격한다. 예전의 과오를 끄집어내며 나는 잘못이 없다고 문제를 키운다. 부부관계는 결국 계속해서 일어날 삶의 난제들을 감당할 힘을 잃어버린다. 결국 '성격'차이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게 된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선택


부부는 사소한 인연으로 시작해 긴 시간을 함께해야 하는 관계다. 결혼은 그만큼 많은 고민과 책임이 뒤따른다. 결혼은 인생의 중요한 결정 중 하나이며, 이혼 역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아니다. 이혼과 같은 커다란 사건은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칠 큰 상처를 남긴다.


양육에 대한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자녀 양육을 위한 부모의 희생적 노력이 더 큰 부담으로 여겨지는 시대상이 존재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시대도 있었지만 자녀양육에 대한 인식은 시대를 거듭하며 변화되고 있다. 부모의 삶을 부담스러운 것으로 여기며, 양육을 포기했을 때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와 자유로운 생활에 더 큰 가중치를 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인식은 출산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나, 결혼계획에 아이를 배제한 DINK족이 증가하는 추세다.


세 아이를 양육하는 아빠의 입장에서 자녀양육이 결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굉장히 긴 시간을 지속해야 할 큰 책임과 의무를 지는 것과 같다. 하지만 부모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부부로서도 완성형에 이르기 어렵다는 것 또한 분명히 체감했다. 양육 경험은 그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상을 보는 스펙트럼을 넓혀준다. 부모는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다. 아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해가듯, 아이를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부모 역시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부부 두 사람만으로 만들어갈 수 없는 관계의 함수를 아이들과 함께 해결해간다. 또 다른 수많은 갈등을 겪으며 사람은 성장한다. 부양해야 할 자식이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굴레가 되기도 하지만 의무감과 책임감을 알려준다. 가족과 아이들이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시간들을 인내할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려움과 좌절을 경험하지만 뜨거운 햇볕을 견디며 사과는 영글어간다.


아이를 양육하는 데 있어 이혼이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엄마와 아빠는 아이에게 전해줄 수 있는 유산이 서로 다르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를 뿐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에도 용이하다. 아이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에도 편부 편모보다 양성이 함께하는 가정환경이 더 유용하다. 아이는 부모의 관계를 바라보며 최초의 사회를 체험한다.


아이가 한 사람의 성인으로 성장하는데 최소 20년에서 2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처럼 긴 시간을 서로 싸우지 않고, 얼굴만 보면 행복하고, 눈에서 꿀물이 흐르는 이상적인 부부생활을 꿈꾸는 것처럼 허황되고 자신을 괴롭히는 바람도 없다. 사람 사이의 갈등은 당연하다. 부부관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부부는 모든 것이 완벽히 맞아 갈등 없이 지낼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부부생활은 필연적으로 장기 레이스다. 갈등 속에서도 맞춰갈 수 있고, 신뢰와 유대를 통해 오랜 시간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친구와도 같은 관계다. 물과 같은 부부관계는 잠시 끊어졌다가도 곧 다시 흘러 하나가 될 수 있다. 서로 멀어졌다가도 가까워지는 관계가 함께 오래도록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는 관계다.


그래서 부부관계는 결코 쉽지 않다. 부부는 자신의 모든 정체성을 대변하지 못한다. 한 사람의 직장인이자 누군가의 배우자이며, 또한 부모님의 자식이고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한다. 역할 사이의 줄다리기는 끝이 없다.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포기할 수도 없다. 모든 것은 연결되고 영향을 미친다. 에너지의 적절한 분배가 필수적이다.




부부관계에 필요한 적절한 삶의 온도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내야만 공격받지 않을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강박이 존재한다. 도움이 되지 않는 나의 존재가 거절당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부부는 서로에게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다. 모든 관계에는 나름대로 독특한 생존 기관이 존재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관계에서 어느 한쪽이 위축되거나 고개 숙인 채 살 이유는 없다. 경험의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을 다양한 시각에서 편협한 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공감은 자신의 경험이 상대의 아픔을 이해할 만큼 풍부할 때 가장 극대화된다.


서로에게 '괜찮다'라고 말해줄 수 있었으면 한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당신의 삶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라고. 아픔은 누구에게나 있다. 타인의 시선과 인정은 중요하기도 하지만, 의미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인생에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가족을 비롯한 몇 명의 친구, 또는 지지자만 있어도 삶은 충분히 살아볼 만한 곳이 된다. 방향을 돌려 세상을 바라보자. 등 뒤를 따뜻하게 지켜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순간이라도 돌아서서 팔을 뻗어보면 좋겠다.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관계로 힘들어하면서도 관계를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고독이 두렵기 때문이다. 홀로 남은 사람은 약하다. 우리는 그것을 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된다. 아이 역시 부부관계를 지켜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다. 협력과 연대, 사랑을 통해 생존해왔다.


가끔 외로움이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는, 관계 속에서 자신을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계를 떠나 자신을 돌보려 하기보다 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 사랑의 밀어를 나누던 뜨겁고 격정적인 시기는 짧다. 삶의 평범성을 지탱해주는 것은 오히려 은은한 달빛이다. 작은 행복과 따뜻한 언어들을 곳곳에 배치해보자. 적절한 삶의 온도를 유지해줄 따뜻한 관계가 필요하다. 부부는 서로에게 그런 촛불이 되어줄 수 있다.


뜨거운 열정은 침착한 이성을 만날 때 시너지를 발휘한다. 화상 입을 만큼 뜨겁지도, 얼어붙을 만큼 차갑지도 않을 적절한 거리가 중요하다. 호수를 비추는 달처럼 자신을 은은하게 비춰줄 사람과 함께하자. 스스로 알아차릴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상대가 알아차려준다면 참 든든하지 않을까. 참았던 눈물을 더 이상은 터트리지 않고 버틸 수 없을 때, 그 사소한 눈물방울 속에 담긴 사연을 함께 나눌 인생의 동반자가 곁에 있다면 삶은 생각보다 팍팍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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