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은 그저 생각해볼 수 있는 하나의 '옵션'일까? 아니면 가급적 피해야 할 치명적 사건일까? 이혼에 대한 심리적 장벽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혼을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는 옵션 정도로 여기는 태도는 결혼생활 중 대면하게 될 갈등과 도전적 상황들을 버티게 도와줄 마음가짐을 약화시킨다. 이혼이라는 선택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결혼이라는 '약속'에 대한 책임과 권위는 떨어진다. 결혼생활은 결코 쉽지 않아서 배수의 진을 친 절박함으로 버티지 않으면 이겨내지 못하고 주저앉을 가능성이 높다. 두 사람이 한 가닥의 밧줄로 이어진 채 높은 산을 올라가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밧줄이 결코 끊어내거나 풀어질 수 없다는 강한 인식이 있다면 두 사람은 어떻게든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함께 산을 넘어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줄이 언제든 끊어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힘든 순간이 닥치거나 한 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다른 한 사람은 밧줄을 끊어버리고 떠나버리고 말 것이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 각자도생의 길을 찾을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결혼'이라는 서약에 얼마만큼의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부부가 함께 버틸 수 있는 시련과 어려움의 총량도 증가한다.
결혼생활을 버텨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런 반문이 들 수 있다. 결혼이 그토록 버텨야만 하는 시련이나 족쇄여야만 하는가? 결혼은 행복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서로 맞지 않는 사람과 굳이 버티며 힘든 결혼생활을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 과연 최선인가? 버텨야만 하는 결혼생활이라면 차라리 빨리 청산하고 자유로운 개인으로 돌아가 스트레스 없이 사는 게 더 현명한 것 아닐까? 이런 의문을 하나씩 짚어보고자 한다.
1. 결혼은 버텨야만 하는 시련이나 족쇄여야만 하나?
당연하게도, 결혼생활이 시련이나 족쇄처럼 여겨지는 것을 환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현실'이며 버텨야 할 시기가 반드시 나타난다. 사실, 이런 의문은 결혼생활이 마냥 행복하고 편안하고 만족스러울 것이라는 순진한 예측과 과도한 환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결혼은 기본적으로 장기 레이스다. 마라톤 풀코스를 뛰어보면 고비가 되는 순간들이 반드시 나타난다. 폐부가 찢어질 듯 고통스럽고 다리는 후들거리며 허리는 끊어질 것 같아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놓인다. 그 순간 선택을 해야만 한다. 계속 달릴 것인가, 아니면 그만둘 것인가. 이처럼 긴 시간을 두고 이루어지는 수많은 일에는 필연적으로 위기가 찾아오며 종착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순간을 버텨야만 한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어지간한 의지와 인내심 없이는 한 사람과 수십 년에 달하는 긴 세월 동안 벌어질 일들을 견뎌낼 재간이 없다. 결혼에는 분명 시련이나 족쇄와 같은 측면도 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호 간의 이해와 노력이 필요한 것과 같다.
2. 결혼은 행복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당연하게도 우리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서로의 손에 반지를 끼워준다. 실제로 결혼생활 중에는 행복한 순간도 많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그렇듯, 부부간에도 100% 행복과 100% 만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혼의 최종 목표가 행복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은 많지만, 좋은 목적을 실현해가는 과정 중에는 결코 행복하지 못한 순간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추구하는 것이 그 사이사이에 벌어질 갈등이나 시련들을 죄악시하거나 기피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진다면, 그 행복은 신기루 속 오아시스가 될 뿐이다.
3. 맞지 않는 사람과 결혼생활을 이어나가야만 할까?
이 물음에는 먼저 '맞는 사람'에 대한 스스로의 정의부터 내려볼 필요가 있다. 과연 어느 정도가 맞으면 서로에게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애초에 서로 모든 것이 맞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이 이 질문에는 부정적 결론을 내릴 것이다. 심지어 유전적으로 모든 것이 유사한 가족관계에서도 갈등은 반드시 존재한다. 모든 것이 맞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야 한다. 과연 어느 정도까지의 갈등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어떤 사람이라면 수용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우리는 일정 범위의 불협화음을 견디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4. 차라리 빨리 이혼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있다. 모든 결혼생활은 버텨야만 하는 요소가 있다. 갈등을 버티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이혼을 선택한다면, 결혼생활의 끝은 시작부터 이미 정해져 있다. 결혼의 끝은 사실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상대가 바람을 피운다거나, 가정폭력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버티라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결혼생활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중요하다. 결혼생활을 유지함에 있어, 즉 부부의 인연을 계속 가져감에 있어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어디까지인가? 이러한 기준에 대한 내면의 합의, 그리고 부부간의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실질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기준들에 대해 서로 대화하고 풀어나가는 것은 결혼생활을 이어나가는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결혼에 대한 의미부여
커다란 갈등과 위기는 결혼생활에 있어 필연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런 어려움이 도래했을 때 결혼은 족쇄여야만 할까? 그런 어려움을 버티며 지켜내야 할 가치와 의미가 과연 결혼에 존재할까? 아마도 여기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나는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부는 시련을 함께 견뎌내며 더 단단해진다. 20년 이상 결혼을 유지한 장년층 부부들에게 이혼도장을 찍을만한 위기가 3번 이상은 있었다고 한다. 나 역시 13년의 결혼생활 동안 2~3번의 큰 위기를 경험했고, 그중 한 번은 이혼에 대한 결심을 굳힐 정도로 심각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련이 그렇듯 당시에는 숨이 멎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힘든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하나의 추억으로 남을 뿐 아니라, 당시를 회상하며 어지간한 문제는 문제같이 여겨지지도 않을 정도로 단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부부 사이에 위기로 다가올만한 요소는 상당히 많다. 개인적 성향이나 생활양식의 차이, 주말을 보내는 방법, 양가와 관련된 문제, 실직이나 사업실패 등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 출산, 양육, 자녀교육에 대한 이슈들까지 가정이라는 하나의 기업을 가꾸고 운영해나가는 것의 이면에는 관리가 필요한 수많은 위험요소들이 존재한다. 처음 얼마간은 삐그덕거리면서도 돌아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크고 작은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그 문제들이 어느 시점이 되면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격화된다. 갈등이 큰 만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시기를 겪어낸 기억은 부부 사이의 유대와 신뢰를 더욱 끈끈하게 해 주며 사람과 인생,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들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긴 결혼생활을 버텨보지 않고서는 관용, 인내, 갈등관리, 책임감, 사랑, 신뢰와 같은 한 사람이 완성되어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질들 중 많은 것을 놓쳐버리기 쉽다.
오래가는 부부를 위한 4가지 조언
1. 배우자를 '선물'로 여기는 마음
인연은 수많은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다. 결혼에는 '초심'이 존재한다. 호감, 연애, 사랑,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어떤 마음으로 배우자를 바라보았는지 차분히 떠올려보면 좋겠다. 인간에게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짝을 찾는 능력이 있다. 운명론적 성격을 띠는 이러한 능력에는 이성적 논리나, 합당한 근거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미동도 않던 감정에 '탁' 하고 스위치가 켜지며 '내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그 순간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팍팍하고 외로웠던 삶에 선물처럼 느껴졌던 배우자에 대한 초심이 새록새록 기억날 것이다. 초심을 통해 배우자를 선택했던 자신의 안목에 대한 확신을 상기시키면, 다가올 시련을 이겨낼 힘이 더해질 것이다.
2. 결혼에 대한 자신만의 의미부여
원론적인 질문일 수도 있지만 '나는 왜 결혼했는가?' 에서부터 시작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 것이다. '왜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했는가? 무엇을 위해, 무엇을 바라고 결혼을 했는가? 상대방을 사랑했기 때문에? 평생을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에? 한 사람의 내 편이 필요했기 때문에? 혹은 물질적 풍요와 자신의 안녕을 위해서?'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다소 고지식하고 고집스러운 나만의 기준이 있다. 조건에 맞춘 결혼중개사이트나 중매결혼에 대한 반대가 그것이다. 결혼은 단지 경제적 연합체 수준의 언약은 아니다. 조건은 언제나 변할 수 있는 유동적이고 한시적인 것이어서, 조건에 기반을 둔 결혼은 그것이 훼손되는 순간 계약을 유지할 동력을 잃는다. 함께 산을 올라가야 하는 순간에서 한 사람이 발목을 접질려 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조건에 의한 결혼은 한 사람을 버리고 혼자 떠나가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결혼상대를 판단할 때, 그런 눈에 보이는 조건들이 아니라면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답은 각자가 찾을 수밖에 없다. 진정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 하고자 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필요한가? 긴 세월을 서로 맞춰가며 살만한 사람에게는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 내가 결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배우자에 대한 시각과 기준도 달라질 것이다.
3.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
대화의 양이 소통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화 없이 이루어지는 소통은 없다. 부부간에 대화가 사라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신호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옛 광고의 캐치프레이즈는 허구에 가깝다.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가 정답에 가깝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 오랜 시간을 함께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아무런 갈등도 대화도 없는 사이보다, 다투더라도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하는 편이 낫다. 물론, 감정이 격해지거나 날 선 대립 상황에서 왜 말을 안 하냐며 쏘아붙이듯 대화를 요구하는 것은 역효과만 일으킨다. 부부간에 필요한 대화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갈등이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는 잠시 시간을 두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현명함도 갖추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대화를 통해 서로 간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4. 과도한 통제 욕구나 기대 내려놓기
사랑한다는 이유로, 혹은 부부라는 이유로 24시간 모든 것을 함께 하고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는 불가능한 기준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부는 '하나이되 둘인 관계'다.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삶의 영역도 있지만 여전히 개인적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이 자연스러운 영역도 있다. 공유 범위는 두 사람이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오래 함께하기 위해서는 숨 쉴 공간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투명해도 아무런 갈등이 없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1급수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 배우자가 완벽한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다. 당연하게도 그런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배우자에게 과도한 기준을 들이대는 것이 결혼생활을 숨 막히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엇이 두 사람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가로막고 있는지 곧 깨달을 수 있다.
사람은 생각보다 별로고, 약점도 결점도 많은 존재다. 어찌 보면 그래서 결혼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홀로 살아가기에 삶은 생각보다 버거울 경우도 많으므로. 길고 외로웠을 인생을 함께 걸어줄 '선물'같은 동반자가 여전히 곁에 존재하기를 바란다면, 상대가 내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