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출산, 육아
잘 되던 떡집이 갑자기 며칠째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언제까지 쉰다는 안내문구도 없다. 나이 지긋한 두 내외가 동업하던 가게였다. 형제간에도 칼부림 난다는 동업을 십수 년째 해온 떡집이었는데, 충격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며칠 쉬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떡집 손님들이 하나둘씩 나에게 떡집 사정을 묻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 집 무슨 일 있나요? 왜 안 여는지 아세요? 언제까지 쉰다던가요?" 단골손님들도 무언가 이상한 기운을 느낀 듯했다.
인근 가게 아주머니와 우연히 만나 떡집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며칠 전 가게에서 큰 소리가 좀 나더라고. 그러고 나서 갑자기 다음날부터 문을 안 열더라고. 저 집도 아마 꽤 힘들긴 했을 거야. 여름이야 원래 떡 장사가 잘 안 되는 시기라지만, 올해는 2월부터 계속 불경기였으니까. 자영업자들끼리 서로 사주고 먹어주고 하던 것도 있었는데, 요즘은 서로 힘드니 그럴 여유도 없어지긴 했지."
빈 카페에 우두커니 앉아 떡집 손님들을 바라보고 있던 때가 많았다. '그래도 이 동네에선 제일 오래된 떡집이라더니. 이 시기에도 떡 손님들은 줄을 잇는구나. 역시 장사는 한 자리에서 꾸준히 해야 되나 봐' 이런 생각을 하며 부러워하곤 했었다. 하지만 내부 사정은 별로 좋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주머니는 재차 말을 이어나갔다.
"저렇게 손님 몇 사람 와서 이천 원, 삼천 원짜리 떡 사가는 걸로는 장사가 안돼. 떡집은 단체주문이 들어와야 먹고살아. 그런데 코로나 터지면서 돌잔치를 해, 칠순잔치를 해, 결혼을 해, 아니면 단체로 산악회를 가. 체육대회도 없어졌지. 이러니 단체주문 들어올 데가 없는 거야. 저 집이 이 동네에서 오래 하고 장사도 꽤 잘되니까 건물주인도 배짱이었던 모양이야. 새로 계약할 때마다 가겟세를 계속 올렸나 보더라고. 싫으면 나가라 이거지. 그런데 다른 자리로 옮기려면 또 설비도 새로 해야 되고, 가게 위치가 바뀌면 오던 손님도 어떻게 끊길지 모르니 그저 울고 겨자 먹기로 버텨왔던 거지. 저 작은 가게가 세가 이백은 되니, 사람 4명에 월세까지 그만큼 빠지면, 어지간히 팔아서는 무조건 적자였을 거야. 지금껏 버텨온 것도 용하지." 듣고 보니 그럴 것 같았다. 최근에는 배수관 공사도 하느라 며칠 문을 닫았었다. 그동안 곪아왔던 문제들이 코로나 불경기를 거치며 하나씩 터지는 모양이었다.
모든 것이 물 흐르듯 풀릴 때는 사실 다툴 일도 없다. 서로 간에 갈등이 벌어지는 이유는 두 사람 사이가 갑자기 틀어졌기 때문이라기보다, 상황 자체가 어려워져서일 때가 많다. 힘든 상황에 놓이면,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을 일들이 '문제'시 된다. 온갖 스트레스로 인해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상태에서는 바늘만 갖다 대도 펑하고 터져버리는 탓이다. 힘든 시기에는 이처럼 '안 그래도 힘든데' 나를 괴롭히는 일들이 더 많이, 더 심각하게, 더 자주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져 더욱 힘들어진다. 과도한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상대방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만나게 되고, 경악, 분노, 배신감을 느낄 순간들이 많아진다. 오랜 시간 지속되어온 관계라고 해도 커다란 위기를 맞거나, 실제로 이별하기도 한다.
가정에서도 몇 번의 이런 위기가 다가온다. 신혼부부에게 닥칠 첫 번째 위기는 임신, 출산, 육아의 시기다. 임신은 아내에게만 힘든 사건인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아내가 힘든 만큼 남편 역시 어려운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다. 임신이 되면 호르몬 변화와 함께 아내의 몸은 생명체를 잉태하기 최적의 상태로 변모한다. 이 과정에서 감각이 예민해지고, 입덧이 시작되며, 몸이 무거워진다. 끝을 알 수 없는 신체적 변화들은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느낌을 준다. 우울해지고, 불안해지고, 두려워지며, 자신을 믿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아내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함께하는 남편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퇴근 후에도 편히 휴식을 취하기보다 아내의 상태를 살피고 수시로 변하는 아내의 정서에 공감해주기 위해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몸은 힘들고 마음은 불편한 시기들이 이어진다. 아내는 아내대로 섭섭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억울한 그런 시기를 맞이한다. 아이를 갖기로 마음먹었던 시기의 행복한 상상은 대면한 현실과 괴리감을 부르고 자신을 이해하고 배려해주지 못하는 상대방에 대한 불만을 조금씩, 조금씩 쌓아간다.
만삭을 지나 출산의 시기가 되면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출산은 여성들에게 있어 일생일대의 사건이라 할 만큼 어렵고, 두렵고,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베일에 싸인 신비한 경험이다. 남편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아내의 출산 경험을 온전히 공감하기는 어렵다. 출산 시기를 거치며 대부분의 남편이 죄인이 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육아의 단계로 넘어가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아이는 예쁘지만 육아는 고통스럽다. 울고 떼쓰고 잠들지 않는 아이를 보며 엄마는 함께 울음을 터트리지만 대체 아이가 왜 우는지 이유조차 알지 못한다. 그 와중에 옆에서 '드르렁'하며 잘만 자는 남편을 보고 있으면 왠지 억울하고 울화가 치민다. 하지만 얼굴에 배게를 던져도 잠시 뒤척이다 곯아떨어지는 남편을 보며 그저 포기할 뿐이다. 모든 것이 처음인 첫 아이 육아는 그래더 더 어렵고 섭섭하고 외롭다. 심지어 엄마들은 없던 잠귀도 밝아진다. 아이가 칭얼거리는 소리는 엄마 귀에만 천둥소리처럼 들린다. 몸은 힘들고 잠은 부족해서 자연히 육아 시기의 엄마는 뾰족하고 날카로워진다. 그 스트레스가 향할 대상은 당연히 남편이다.
세부적인 사정은 모두 다를 것이다. 임신과 출산의 시기에 남편이 집에 매일같이 있을 수도, 육아휴직을 했을 수도, 또는 직업 특성상 한참을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출산의 순간에도 남편이 옆에서 손을 잡아주며 정서적 지지를 보내줄 수도, 그 자리에 없을 수도 있다. 육아 역시 아내가 직접 담당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세부적인 조건을 건너뛰더라도 임신, 출산, 육아의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이 험난한 시기는 부부에게 있어 커다란 도전이자 스트레스 상황이 될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다. 당연하게도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거나 갈등으로 발전하기 쉽다. 다른 때라면 남편이 일을 끝마치고 돌아와 그대로 잠자리에 뻗어버린 모습을 보며 그저 '오늘 많이 피곤했나 보네' 하고 이불을 덮어주고 말았을 상황도, 하루 온종일 입덧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거나, 온종일 우울과 불안에 떨며 누군가를 필요로 했거나, 보채는 아이를 감당하느라 진땀을 뺐던 상황이라면,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당연히 고울 수 없다. 당장 다음 날 아침이면, 볼멘 얼굴로 말없이 굳어있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소한 변화들이 모여 뭉게구름처럼 스트레스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이 삶에서 맞이하는 커다란 위기의 본질이다.
이 시기에 이별하는 부부는 많지 않다.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공동의 위기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 육아 시기에 섭섭했던 기억들은 긴 시간을 두고 서로를 괴롭힌다. 부부싸움의 해묵은 주제가 되기도 한다. 힘들었던 만큼 상처도 더 깊이 남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은 아이를 키워야 하니 많은 문제들을 덮고 넘어가지만 갈등의 뇌관은 이 시기를 지난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마치 전쟁 이후 곳곳에 남아있는 지뢰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들이 부부 사이에 심어진다. 과연 이 시기가 누구에게 더 힘들고 어려운 시기인가에 대한 문제는 답이 없다. 실질적으로는 아내가 부담해야 할 영역이 크지만 그 여파는 고스란히 남편에게도 미친다. 아프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며 옆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사람도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그 사람에게 애 키우는데 네가 한 게 뭐가 있냐고 따져 묻는 순간 부부 사이에는 깊은 골이 생기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