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쉬고 있는 나를 용서하기

'충전'

by 작가 전우형

언제쯤 마음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압박에 시달리는 나를 사랑할 수 있다면. 늘 불안에 떠는 나를 안심시킬 수 있다면. 잘하지 못할까, 실패할까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약하고 어리숙한 나를 인정할 수 있다면. 별볼일 없는 나를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진정한 휴식에 이를 수 있을까? 진정한 휴식이란 뭘까?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그저 푹 쉴 수 있다면 혹시 그건 죽어버린 건 아닐런지...


머리는 쉬어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쉬어야 일의 능률도 오르고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는 것을 이해했다. 하지만 감정적 불안을 이성으로 누르는 것은 어렵다. 달리는 것보다 쉬는게 더 중요하다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어쩌다 잠에 취해 쓰러지지 않는 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왜 하는걸까?' 라는 물음에는 사실 답이 없다. 그냥,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기에. 머릿속이 무언가로 가득차지 않으면 불현듯 어떤 생각이 침습해오는 것을 느낀다.


'너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지금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겠어?' '지금 다른 사람들은 훨씬 더 바쁘게 더 많은 노력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걸?' '이러다간 결국 실패자로 남을지 몰라' '가족들 먹여살리려면 지금보다 더 바쁘게 살아야지'


짤막한 메아리와 같은 이 울림들은 끊임없이 내면을 흔들고 불안을 자극한다. 쉬고 있는 내가 잘못된 것 같은 회색빛 이미지를 영사하기 시작한다. 내장이 뒤틀리고 머리가 아파온다. 더이상 가만히 있기 어려워진다. 일이라는 건 최소 수년 이상 쌓아나가야 하는 것을 알지만 불과 몇달만에 성과에 조급해하는 나를 만난다.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고 자기확신은 모래성처럼 흐트러진다. 무너져내린 모래성을 끊임없이 다시 쌓아야 한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 같지만 뭔가 하고있는 것 같고 안심이 된다.




삶은 도미노와 같아서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것도 연달아 무너지기도 한다. 완전히 무너지지 않으려면 중간에 빈틈을 만들어두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휴식'이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어딘가를 비워두면 왠지 완성되지 않아보이고 허전해보인다. 뭔가 실수한 것 같고 바로잡고 싶어진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자신의 삶을 빈틈없이 가득 채운채 살아온 사람들은 의외의 돌부리에 걸려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휴식하는 법을 몰랐던 까닭이다.


쉬고싶은데는 이유가 있다. '나'를 잠시 돌보라는 것이다. 배터리를 충전하듯 몸과 마음도 충전이 필요하다. 한번 쓰고 버릴 삶이 아니라면 적절한 휴식은 필수다. 신체적 회복을 위해서는 잘 먹고 잘 자야한다. 정서적 회복을 위해서는 감정을 돌보고 정서적 환기와 산책, 여행 등이 필요하다. 새로운 공간은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를 촉발시키고 케케묵은 감정을 씻어주기도 한다. 되도록 수시로 걷고 선호하는 음악을 들으며 불현듯 치밀어오르는 감정에 눈물을 맡겨보는 것도 좋다.


사회 안에서 자신을 억눌러야 할 때가 많다. 터트리지 못하는 감정은 마음 곳곳에 남아 우리를 괴롭힌다.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마음과의 대화가 가능하다. 들어주지 못했던 목소리는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을 만날 때 그동안 풀지못했던 수다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휴식은 잠시 쉬어감을 의미한다.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어렵다면 일 외적인 다른 무언가를 해보는 것도 좋다. 족쇄를 잠시 풀고 막혀있던 숨구멍을 열어주면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던 내면의 문제들이 가볍게 정리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다시 보이기도 한다. 골몰하고 고민하다가도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볼 때 의외의 해결방법이 떠오른다.


중요한 것은 계속 가려면 반드시 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쉬고 있는 나를 용서하자.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에 '집중'해보면 어떻게 쉬는 것이 제대로 쉬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의무감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것도 좋다. 뭔가를 해야만 나를 사랑할 수 있다면, 그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는 순간 자책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능력은 나를 구성하는 여러가지 요소 중 하나이지만, 능력 그 자체가 나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소중했다. 삶의 의미는 각자에게 다르고, 위대해지기 이전에 이미 소중한 사람이었다.


예전에는 정차 시간이 길면 기차에서 잠시 내려 가락국수를 먹기도 했었다. 휴식은 그저 잠깐의 여유. 딴 짓. 딴청피우기. 뭐 이런 것들이다. 그동안 바라보던 곳으로부터 잠시 눈을 돌리는 것. 하지만 이 사소해보이는 잠깐의 틈이 우리를 살린다. 숨쉴 구멍을 찾는 것은 참 중요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소한 사랑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