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상의 온기
내가 전역을 선택한 탓에 아내는 박사과정을 취소했다. 가타부타 말은 없었지만 많이 섭섭했을 것이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교수님 될 때까지는 버텨보겠다 약속했었는데 지키지 못했다. 우울증에서 겨우 벗어났다 싶어 복직했었지만, 1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나는 또다시 너덜너덜해졌고, 곧 다시 긴 터널 속으로 돌아갈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아내는 그저 내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전역을 미루며 조금 더 버텨보자고 했던 시절이 벌써 5년째였으니까. 아내도 달리 나를 더 붙잡을 수 있는 말은 없었을 것이다.
아내는 석사과정을 하면서도 간호장교 일을 계속 해왔다. 하지만 내가 불안정해진 탓에 아내는 다시 일자리를 알아봐야만 했다. 투석 병동 간호사, 간호학원 강사를 거쳐 지금은 대학 시간강사로 일을 하고 있다. 아내는 언변도 괜찮고 똑 부러지는 스타일이라, 대학에서도 반기며 정교수로 채용하겠다며 어서 박사학위만 마치라고 한다. 그런 아내를 보며,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지 못하는 것이 늘 미안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원격 강의로 진행하는 대학이 많았다. 아내는 시간강사를 시작하고서도 한동안은 재택근무를 했다. 얼마 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하향되면서 대면교육으로 전환된 대학이 있었고, 오늘은 처음으로 학생들을 대면하는 날이었다. 1시간 반 거리라 서둘러 집을 나서야 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새벽 5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었다. 아침을 차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그저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미역국에 불을 지폈다. 스크램블드 에그를 하고 귤을 까서 접시에 담아주었다. 밑반찬으로 김치와 매실장아찌를 꺼냈다. 그게 전부였다. 6시쯤 눈을 비비며 일어난 아내는 이게 뭐냐는 듯 신기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7시쯤 출발한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침을 먹고 왔더니 덜 추운 것 같아." "차려준 것도 없는데 뭘. 그래도 다행이네." "누가 아침 차려준 거 너무 오랜만이니까. 차려주지 않았다면 아마 그냥 안 먹고 왔을 거야." "앞으로 종종 차려줄게. 잘 다녀와." 아내는 고맙다는 말을 그렇게 돌려서 말했다. 아내는 늘 내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었다. 출항시간 때문에 새벽 4시에 나설 때도, 야근으로 새벽 1시에 집에 돌아올 때도 아내는 늘 나를 기다려주었고 함께 해 주었다. 하지만 과연 나는 아내에게 따뜻한 밥상 한 번 차려준 적이 있었을까? 아내를 그렇게 기다려본 적이 있었을까? 아내는 요리 솜씨가 좋았고, 요리를 즐겨하는 편이었다. 으레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은 아내였고, 이것은 하나의 공식처럼 우리 집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라고 해서 꼭 그것이 즐겁기만 했을까? 세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과 대학원 공부까지 하며 지치고 힘들 때가 더 많지 않았을까? 직접 차리지 않아도 차려져 있는 밥상을 은근히 기대한 적도 많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사람과 관계에 대해 공부하며 알게 된 것은, '당연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가족 간에도 당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사랑과 배려, 그리고 노력이 뒷받침될 때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가족의 모습이 유지될 수 있다. 당연해지면 소중함을 잃어버리며,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가족관계는 안전하고 편안한 관계일 수는 있지만, 당연한 관계일 수는 없다. 지금 내 곁을 지켜주는 이들을 가만히 떠올려보기 바란다. 그들을 너무 당연하게 여겨오지는 않았던가? 그들의 노력과 호의를 함부로 대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받기만 해오지는 않았던가?
누군가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랑의 반증이다. 사랑으로 시작한 가족관계이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관심의 정도이며, 그 관심은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우리는 소중한 존재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하지만 '적응'이라는 인간에게 주어진 뛰어난 능력은 소중함을 곧 당연함으로 변화시켜버린다. 아침밥상의 온기, 아이들의 웃음소리, 비 오는 날 우산을 챙겨 나온 아내, 무심하게 건넨 생일 케이크, 식탁에 놓인 꽃 한 송이, 언제 도착하냐는 문자, 반겨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한 때는 소중하다 여겼던 모든 것들이 어느새 당연한 것으로 바뀌어버린다.
당연함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감사하는 마음을 일깨워야 한다. 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지 않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 어떤 것들은 돈으로 가늠할 수 없기에 가격이 매겨져있지 않다. 가격을 정할 수 없는 것들은 0원이 아니라 무한대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내게 주어지는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스스로의 눈을 통해 찾아내고 인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당연함의 늪을 벗어나 삶을 바라보면 감사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받기만 하는 사람은 결코 알지 못한다. 그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당연하지 않은 '노력'과 '관심'이었다는 것을. 서로의 역할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아내는 남편의 입장에서, 남편은 아내의 입장에서, 그리고 아이들은 부모의 입장에서 내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무언가를 해볼 때, 가족의 노력과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