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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휴업 Dec 03. 2022

2022/12/03

옥탑방 재즈

  "잠깐 들려줄 게 있어."

  이삿짐 포장을 마무리하기 전이었다. 성호는 내게 의자 하나를 내주고는 자신의 야마하 5현 베이스를 앰프에 연결했다. 조금 고되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가 스트랩을 어깨에 걸었다. 병규형은 꽉 다문 입으로 옆에 앉아 기타를 멘 채 성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호는 오른손을 베이스의 바디에 걸쳐 올리고는 병규형에게 손짓을 보냈다. 3평짜리 옥탑방 안으로 낮게 깔리는 그들의 숨소리가 평소보다 더욱 먹먹하게 들렸던 것은 듬성하게 뜯긴 흡음재 때문이었을까. 이내 그들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고갯짓을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째 고개가 동시에 떨어지는 순간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서로 8마디를 주고받았다. 성호가 저음으로 아래를 받쳐주자 병규형이 그 위에 멜로디를 입혔다. 한 번 시작이 된 연주는 수 분이 남게 이어졌다. 성호가 눈을 감고 병규형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들은 오랜 기간 자신들의 삶을 지배해 온 무언가를 내 버리는 중이었다. 그들이 괴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연주는 이내 막바지에 들어섰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멜로디에서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던 그들이 크게 고갯짓을 했다. 마지막 음이 연주되었고 옥탑방 안으로는 이내 다시 먹먹함이 감돌았다. 길게 늘어지던 잔음마저 금세 그 자취를 감추었다. 성호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베이스 끝의 스트랩을 풀어냈다. 내가 작게 박수를 치자 병규형은 무대를 향해 인사하는 듯 시늉을 하고는 성호에게 악수를 청했다. 병규형이 장비를 챙기는 사이 성호는 몸을 돌려 나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 끝에는 두껍게 자리 잡은 굳은살들이 새하얗게 갈라져 있었다.

  "멋있었어."

  나의 말에 성호는 부끄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옥탑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날 이후로 그들의 듀오는 해체되었다. 성호는 가끔씩 병규형의 원두 장사가 나름대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는 말을 전해왔다. 얼마 전 놀러 간 그의 집에 더 이상은 악기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성호는 어느덧 부드러워진 손으로 딸아이를 안아주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팔지 않았던 콘트라베이스와 야마하를 결국 처분한 것이 지난달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언젠가 옥탑방에서 들었던 마지막 연주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곡이었으니 분명 그들의 자작곡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사라질 어떤 것을,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절대 그들과 같아질 수는 없었던 나에게 남기기로 한 것이었다. 그 듀오가 작은 방에서 들려준 마지막 연주가 아니었으면 절대로 알지 못했을 어떤 것이 나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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