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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휴업 Dec 12. 2022

2022/12/12

연애 엽편

  고작 아침 한 번 같이 보낸 주제에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말하는 건 상대에게 충분히 부담이 갈만한 의미론적 우둔함일 것이다. 그녀와 나는 지난밤 내내 많은 대화를 나누었음에도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우리는 밤새 '나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어야만 합니까?'에 대한 답을 알아내기 위해 전전긍긍했고 우리가 맞이 한 아침은 얼추 맞아떨어진 서로의 답에 조금씩 수긍한 결과였다.

  눈을 찌르는 듯한 점심의 햇살 아래에서 그녀는 자꾸만 자신의 얼굴을 가려댔고 나는 부어버린 나의 얼굴이 어떻게 보일지 전전긍긍했다. 먼저 도착한 건 내가 부른 택시였다. 그녀는 조심히 들어가라는 말로 나를 마중하고는 곧장 뒤돌아섰다. 출발한 차 안에서 돌아보니 그녀는 택시를 기다리지 않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그녀에게서 바로 연락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반나절이 지나도록 스쳐 지나간 감정들은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것은 감히 낭만적 미망이라고 부를 만했다. 나는 지난밤 나눴던 그녀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다시 떠올려봤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렇기에 며칠 후 그녀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을 때 나는 그녀에게 다시 만날 수 있는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뭐야. 내가 그렇게 좋아요?"

  그녀는 지난번의 밤보다 조금 더 솔직해져 있었다. 긴 시간 그녀의 연락을 기다렸던 나로서 기쁜 속내를 숨기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까요. 아직 그쪽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는데."

  "원래 다들 그런 거 아니겠어요? 좋아하게 된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는 거."

  그녀는 나의 두 번째 데이트 신청에 흔쾌히 응하고는 이내 다시 밤을 보내자고 말했다. 지난 며칠 사이에 그녀는 '나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부담을 덜어낸 듯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진짜 너는 누군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준비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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